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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의 징슈필 '후궁으로부터의 도주'는 그리 자주 공연되는 작품은 아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상당히 낯선 작품이지만 '마술피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반드시 봐야할 징슈필이 바로 '후궁으로부터의 도주'(이하 후궁)이다. '마술피리'는 이 '후궁'에서 잉태됐다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마술피리'를 연상케 하는 음악적 구성과 극적 장치가 눈에 띄는 징슈필(독일어로 가사를 말하는 소박한 독일 민속악극형식)이다.
이번 국립오페라단의 '후궁'은 음악적 형식에서는 그 전형을 따르고 있으나 극의 구성면에서는 상당히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서곡이 연주되면 객석에서 등장하는 여섯 명의 요즘 젊은이들은 관객처럼 무대를 바라보고 등장인물을 관찰하다가 어느새 그들도 등장인물이 된다. 이들은 작품에 등장하는 네 명의 남성과 두 명의 여성과 같은 비율로 구성돼 등장인물의 내면을 표현하는 또 다른 자아 역할을 한다.
대사와 일반적인 장치들을 많은 부분 생략하고 마지막 등장인물의 관계까지도 수정하는 과감함을 보인 김요나의 연출을 두 가지 관점에서 얘기하고 싶다. 첫 번째 그녀는 이 작품에서 이국적 풍물과 모험이 갖는 판타지를 보여주는 대신 -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그다지 흥미롭지 않을 소재이기도 하기에 - 특정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때문에 군더더기 같은 장치는 모두 걷어버리고 인물의 심리와 표현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캐주얼한 의상을 입은 여섯 명의 내밀한 관찰자는 이러한 이유로 동원된 것으로 보이고 18세기 의상을 입고 먼 터키 땅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얘기하고 있지만 이것은 결국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보편적인 이야기라는 것을 길거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젊은이의 모습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한다.
두 번째는 '후궁'이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이 아닌 것을 감안하면 그녀의 거침없는 생략과 비틀기가 이 작품을 무대에서 처음 접하는 관객이라면 그 의미 찾기에 다소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겠다는 것이다. 특별한 무리 없이 구성되긴 했으나 원작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별로 없이 대하는 관객들에게는 어떤 식으로 읽혔을지 궁금하다.
연출은 신선함으로, 때로는 낯선 파격으로 우리를 이끌었지만 음악은 모차르트 음악이 지닌 특유의 매력을 그대로 짚어내며 무대와 상호보완적인 조화를 이뤘다. 안드레아스 호츠가 지휘한 군포 프라임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조금 빠른 속도를 유지하면서 생동감 있는 선율을 적절한 강약으로 이어갔다. 특히 페드릴로의 로망스 부분에서 울리던 부드러운 피치카토는 바로크적인 감성과 모차르트 풍 낭만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었다. -
이날 벨몬테 역할의 테너 김동원은 모차르트 징슈필을 노래하는 테너의 미덕을 잘 갖춰 노래했고 테크닉에서도 흠잡을 곳이 없었으나 연인에 대한 마음을 감미롭게 표현했던 첫 번째 아리아에서 좀 더 과감한 모습을 보였어도 좋았다는 생각이다. 또 콘스탄체 역을 맡은 이현은 초반 상당히 경직된 모습과 가창을 들려줬지만 후반으로 가면서 몸이 풀려 벨몬테와 콘스탄체의 마지막 이중창에 가서는 감정과 음악이 어우러진 좋은 호흡을 선보였다.
소프라노 강혜정도 밝고 생기 있는 블론데 역할을 재잘대듯 예쁘게 소화했고 오스민 역할의 오재석과 페드릴로 역할의 강신모도 제 몫을 다해주었지만 애초에 이들의 대립적이고 적대적인 구도는 좀 더 코믹하게 설정됐어도 좋았을 것 같다.
디어크 슈메딩은 자기감정에 솔직한 젤림 태수를 연기하면서 사랑을 갈구하는 권력자의 내면을 섬세하게 표현해 큰 갈채를 받았는데 특히 그의 감정이 묻어나는 독일어 대사는 징슈필을 맛보는 즐거움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태수가 벨몬테를 용서하며 사실 스페인 출신인 것이 밝혀지는 유명한 대목이 삭제 된 것은 성숙한 인격을 갖춘 인물을 끝까지 비 유럽인으로 남겨두고 싶은 연출자의 비틀기로 해석되었다.
이날 돋보인 또 하나의 출연진은 국립합창단이었다. 지난해 오페라 '오텔로'에서 수준미달의 연주로 실망감을 안겼던 국립합창단은 이번 작품에서 활기 넘치면서 조화로운 하모니를 들려주었고 솔리스트의 기량까지 엿볼 수 있어 모처럼 국립합창단의 역량을 다시금 확인한 무대였다. 이들은 또한 모차르트를 연상케 하는 의상을 입고나와 피날레를 장식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김요나는 장면의 구성과 인물 배치에 탁월한 연출가라고 하고 싶다. 할렘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깔끔한 무대에서 카펫이나 쿠션 같은 상징적인 소품만으로 극의 특징을 잘 살려냈고 무대로 천천히 진입하던 황금색 뱃머리 또한 단순했던 무대에 포인트 역할을 해 그리 크지 않은 CJ토월극장에 적절한 효과를 주었다. 부분적으로 생략된 탓에 이따금 어색한 공백이 느껴졌던 호흡은 마지막에 이르러 해소되었다. 젤림 태수를 중심에 둔 등장인물의 5중창은 빼어난 하모니를 선보여 모차르트 피날레의 진수를 보여줬다.
이번 국립오페라단의 무대는 레퍼토리의 다양성 추구와 공연장의 적절한 활용이라는 측면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모든 오페라단이 국립오페라단과 같은 시도를 하기는 어려운 일이나 긍정적인 사례로 삼으면 좋을 것이다. 보다 다채로운 오페라무대에 대한 갈증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해소될 수 있다.
손수연 오페라평론가 / yonu4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