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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정도 예상은 한 결과였어요. 하지만 앞으로 저들을 어떻게 믿고 함께 일할 지 회의가 드네요”

    모뉴엘 사기대출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은행 관계자들이 공통적으로 내뱉은 푸념입니다.

    이 은행들은 모뉴엘 때문에 두 번 상처를 입었습니다. 잘 나가는 가전제품 회사라고 믿었던 모뉴엘에게 사기를 당해 한 번, 그리고 믿었던 무역보험공사에게 ‘배신’당해 또 한 번이지요.

    은행은 기본적으로 금융업을 영위하는 집단입니다. 금융업이란 쉽게 얘기하면 돈으로 장사하는 사업이죠. 상인들은 기본적으로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은행도 마찬가지여서 돌려받기 어렵다고 예상되는 돈은 빌려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래도 꼭 빌려줘야 하는 상황이라면 “당신이 잘못됐을 때 당신 대신 책임질 수 있는 누군가를 데려오시오”라고 요구하지요. 네. 그게 바로 보증입니다. 그런데 이 보증 서 줄 사람을 찾는다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보증보험’이라는 제도가 생겨나게 됐고, 특히 수출기업이 자금 조달을 할 때 이들 기업을 대상으로 보증보험을 판매하는, 즉 보증을 대신 서 주는 공기업인 무역보험공사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모뉴엘이 은행들을 찾아가서 “돈 좀 빌려줍쇼”라고 요청합니다. “내가 뭘 믿고 당신에게 돈을 빌려줘야 해?”라고 물으니 무역보험공사의 보증보험을 내밉니다. 그걸 믿고 돈을 빌려줬는데 알고 보니 모뉴엘은 은행에게 대출사기를 저질렀습니다. 돈을 돌려내야 할 모뉴엘은 이미 부도가 나 버렸고요.

    당연히 은행은 무보에게 “당신이 책임지쇼”라고 요청하겠죠. 그런데 무보는 못 주겠답니다. 이의를 제기했는데, 무보에서 꾸린 위원회는 똑같은 답변을 내놓습니다. 이제 소송전으로 갈 수밖에 없죠. 여기까지가 지금 상황입니다.

    채권은행들의 심정은 속된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한마디로 ‘멘붕’입니다. 무보의 보증보험을 믿고 기업들에게 대출을 해 왔는데, 이제 이마저도 믿지 못하게 됐습니다. “보증보험의 존재 이유가 채무자 대신 보증을 서는 것인데, 이걸 거부하면 은행더러 어쩌란 말이냐”는 비판이 터져나옵니다.

    무보가 내세운 지급 거절 이유는 서류 미비입니다. 무보 측은 “서류가 워낙 부실해 정상적인 거래가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였다”고 항변합니다.

    하지만 그 정도 항변으로 은행 측의 비판을 잠재우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그렇다면 애초에 보증은 왜 섰느냐”, “그럴 거면 차라리 우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심사하고, 당신을 믿지 않겠다”는 비판은 여전히 나오니까요.

    “전직 무보 사장이 모뉴엘로부터 뒷돈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지 않느냐”, “무보 역시 대출과 관련해 현장 방문까지 실시했다면 무보도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는 등의 반박도 제기됩니다.

    비판과 반박을 뛰어넘은 저주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한 채권은행의 부행장급 인사는 제게 “무역보험공사가 그런 식으로 굴어서 얼마나 잘 되는지 두고보겠다”고 말했습니다.

    무역보험공사의 고객은 수출기업과 은행이지요. 그런데 두 고객층 중 하나인 은행에게 ‘까칠하게’ 구는 무보의 행동이 너무나도 섭섭하다는 속내를 내비친 겁니다.

    결국 은행들은 무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것이고, 언젠가는 누구의 책임이 더 큰지 판결이 나오겠지요. 판결의 결과를 떠나, 고객에게 저주받는 회사가 앞으로 얼마나 잘 될지는… 글쎄요. 개인적으론 의문스럽습니다.

    이번 갈등으로 피해를 입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람들이 또 있습니다. 바로 수출기업들입니다. 은행들이 무역보험공사의 보증보험을 믿지 못하게 되니, 수출기업들에게 은행의 문턱은 더욱 높아지겠지요.

    은행과 수출기업 모두 이번 사태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상에 믿을 이 하나 없어라”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