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실 없이 사기당했다'… 무과실 입증해내야양 측 모두 무과실이거나 불확실하면 은행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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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뉴엘 사기대출사건이 시중은행들과 무역보험공사(무보) 사이의 소송전으로 번지게 됐다.

    무역보험이의신청협의회가 모뉴엘의 수출채권을 갖고 있는 은행들의 보험금 지급 요청에 대해 부당하다는 판단을 각 은행에 통보했기 때문이다.

    협의회는 이 같은 내용을 지난 19일 밤 모뉴엘 채권은행들에 보냈다고 21일 밝혔다.

    무보는 지난 1월 6일, 모뉴엘 사기대출사 건과 관련, 기업·외환·산업·농협·국민·수협은행의 6개 시중은행이 청구한 보험금을 지급할 수 없다는 예비판정을 내린 바 있다. 은행들은 판정에 불복해 무역보험이의신청위원회에 이의제기를 신청했었다.

     

    통상 2~3개월 걸리는 이의신청은 이례적으로 5개월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이뤄졌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해당 은행들은 무보의 단기수출보험(수출채권유동화)를 담보로 모뉴엘에 돈을 빌려준 바 있다. 은행들이 빌려준 돈의 총 액수는 3265억원.

     

    은행별로는 △기업은행 1055억원 △외환은행 863억원 △산업은행 754억원 △농협은행 568억원 △국민은행 466억원이다. 수협은행은 신용대출만 1135억원 빌려준 것으로 조사됐다.

    무보는 서류 미비를 이유로 지급불가 판정을 내렸다는 입장이다.

     

    무보 관계자는 "300건 가까이 되는 대출건 가운데 정상적인 서류는 단 하나도 없었다. 정상적인 대출거래로 보기 어렵다는 의미다"며 "보험금을 지급하면 오히려 무보가 배임죄의 책임을 물 수 있을 것으로 염려될 정도"라고 말했다.

    이 같은 소식을 접한 해당 은행들은 소송전에 돌입하겠다며 입을 모았다. 이들은 법적 절차를 거쳐서라도 보험금을 받아내겠다는 입장이다.

    A 채권은행 부행장급 인사는 "이쯤 되면 무보의 존재 의미가 의심스러워진다"는 말로 강한 불만을 표했다. 이 같은 사고가 일어날 때, 보증을 서는 것이 무보의 역할인데, 이 역할을 거부하니 존재 의미가 없다는 주장이다.

    이 부행장은 "앞으로 어떤 은행이 무보의 보증서를 믿고 대출 거래를 하려 하겠느냐. 은행들이 외면하면 무보가 설 땅은 없어진다. 두고 보겠다"며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B 채권은행 관계자는 "전직 무보 사장이 뒷돈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소환되는 등, 무보 임직원들이 박홍석 모뉴엘 사장과 연루된 것이 밝혀졌다"며 "이런 상황에서도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겠다는 주장은 말도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C 채권은행 관계자는 "무보사가 모뉴엘 대출과 관련해 일곱 차례나 해외 수입업자 현장방문을 했다고 들었다. 그러고도 사기대출인지 못 밝혔으면서 은행에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내부적으로 검토한 결과 소송을 해도 (은행들에게) 승산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며 "보험금은 물론 손해배상까지 청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단, 소송 진행을 개별적으로 할 것인지 공동 대응할 것인지는 아직 불투명한 상태다.

    한 채권은행 관계자는 "공동 대응하면 좋겠지만, 각 은행마다 손해가 다르고 법적 쟁점도 다를 수 있다"며 "대화를 해 봐야 하겠지만, 개별적으로 대응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소송이 진행될 경우, 해당 은행들과 무보는 각자 과실이 없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전삼현 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이번 사안에서 은행들과 무보의 책임범위는 모두 과실책임이다. 사기를 당하는 과정에서 각 당사자들이 어느 정도의 주의 의무를 다했는지가 소송전의 승패를 가를 것"이라고 말했다.

    전삼현 교수는 "무보는 모뉴엘을 보증하는 과정에서 과실이 없었음을, 은행들은 모뉴엘에 돈을 빌려주는 과정에서 변제 가능성을 면밀히 확인하는 등 주의 의무를 다했음을 각각 입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소송이 시작될 경우, 각 은행과 무보는 각자 자신의 무과실을 입증하고, 상대방의 과실을 발견하기 위한 법적 공방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양 측 모두 무과실임을 입증했거나 과실 유무를 정확히 입증할 수 없을 땐 시중은행 측이 유리할 것으로 보인다.

    전삼현 교수는 "양 측의 과실 정도가 같거나 알 수 없을 땐 관련 법규상 무보 측이 보험금을 지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