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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뉴엘 사기대출 사건을 둘러싼 은행권과 한국무역보험공사(무보)의 책임공방이 장기화되고 있다. 무보에 대한 은행들의 이의신청 심의가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에서는 “이런 일이 발생한 상황에서 어떻게 무보를 믿고 일을 하겠느냐”는 불만이 팽배해 있다. 그러면서도 무보의 눈치를 보느라 대놓고 말도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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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무보는 모뉴엘 대출 사기사건의 책임이 은행들에게 있다며 수출보험금 지급을 거절한 바 있다. 은행들은 이에 불복, 지난 2월 이의를 신청했고 무보는 이의신청협의회를 2월 말에 꾸렸다.
이의신청협의회는 은행들의 이의신청에 따른 심사를 거쳐 기존 지급거절 결정에 대한 결론을 낸다. 지급거절 입장을 유지할 수도 있고, 은행권 요구를 전부 또는 일부 수용할 수도 있다. 협의회 구성은 통상 내·외부 금융전문가로 꾸려지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 공정성을 고려해 외부전문가로만 구성됐다.
문제는 이 협의회의 심사가 예상보다 늦어지고 있다는 점이다.심사결과는 통상 1개월 내에 신청자에게 통보된다. 2월에 협의회가 꾸려졌으니, 늦어도 3월 마지막 날인 31일까지는 심사 결과가 통보돼야 하는 것이다. 취재진이 지난 2월 은행권과 무보를 상대로 취재를 진행할 당시에도 양 측은 “3월 말 쯤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금융권에 따르면 31일 결과가 통보될 가능성은 없다.특히 외환·국민은행에 대한 이의신청 심사는 지난 20일에서야 시작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은행들은 모뉴엘 사기대출 사건과 연루된 수입업체 중 가장 많은 금액의 허위 수입확인서를 발급한 중국 ‘뉴에그’의 수출채권을 매입했다.
금융권에서는 5~6월은 돼야 결과 통보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A은행 관계자는 “원칙적으로는 협의회가 구성된 지 한 달 이내에 결과를 통보하는 것이 맞지만, 이번 모뉴엘 건의 경우 그 사안이 워낙 커서 연장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5월은 돼야 결과가 나올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이의신청 심의에서 자신들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을 경우 법정 소송절차를 밟겠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A은행 관계자는 “이의신청을 했는데도 똑같은 지급거절 결과가 나온다면, 결국 소송 밖에 답이 없지 않겠느냐”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무보 관계자는 “은행권에서 5월에 결론이 나올 것이라는 말이 도는데, 정확한 일정은 알 수 없다. 각 은행들이 제기한 개별 건에 대해 모두 협의하고 심사하려면 일정을 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5월이 될지, 6월이 될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A은행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결과 통보 일자는 무보가 알고 있을 것이다. 협의회 구성도, 결과 통보도 무보가 하기 때문이다. 결국 칼자루는 무보가 쥐고 있는 셈”이라며 “확정되진 않았더라도 대략적인 일정은 나와있을 수 있다. 그런데도 공개를 안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은행권에서는 무보에 대한 원성이 나오고 있다. 무보를 믿은 채 대출 업무를 진행해왔는데, 이번 일로 ‘뒷통수’를 맞았다는 것이다.
A은행의 한 부행장급 인사는 “앞으로 무보를 어떻게 믿고 일을 하란 말인가? 무역보험공사의 존재 이유가 바로 이번 모뉴엘 사건과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를 대비해 지급 보증을 하는 것 아닌가. 이를 생각한다면, 저런 식으로 나오면(지급거절 결정) 안된다”고 토로했다.
이 인사는 “무보의 고객이라 봐야 시중은행들 밖에 없는데, 이번 일로 은행들은 모두 무보에 등을 돌릴 것”이라고 여러 차례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처럼 원망의 목소리를 표출하기보다는, 속으로 삼킨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은행들이 많다.
B은행 관계자는 “소송이든 뭐든 다른 은행의 행보를 지켜보면서 결정해야 할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같은 은행의 다른 관계자는 “현재로선 우리의 입장을 밝히기가 조심스럽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무보 측에 밉보이기라도 하면 불리한 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라고 조심스럽게 분위기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