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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석유·화학 시장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다. 미국의 셰일 혁명과 중국·중동 등 신흥국들의 자급률 상승, 국제유가 붕괴 등은 석유화학계의 지형을 마구 흔들면서 석유·화학 산업에 구조적인 위기가 찾아왔다. SK이노베이션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생존 가능한 사업 구조와 수익 수준을 낼 수 있도록 모든 구조를 혁신해 나가겠다."
최태원 회장 부재와 폭락한 석유시장, 중국과 중동지역의 신증설 등 위기 상황속에서 SK이노베이션의 구원투수로 나선 정철길 사장이 6가지 구조적 혁신 카드를 꺼내 들었다.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도록 '수익-사업-인적-조직-재무-지배' 구조에 대한 혁신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국제석유시장에 대한 예측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중국과 중동지역 산유국들이 최신설비를 확충하며 자급률을 높이고 수출에 나설 것으로 예측되는 상황 속에서 자칫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할 경우 일본과, 호주의 정유산업처럼 몰락의 길을 밟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정철길 사장은 지난 28일 서울 종로구 SK이노베이션 본사 사옥에서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를 열고 SK이노베이션의 모든 구조를 바꿔 어떤 상황에서도 수익을 내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37년만에 사상 첫 적자를 기록한 SK이노베이션을 구할 구원투수로 취임한 정 사장의 의지와 뚜렷한 목표를 제시하기 위해서다.
정 사장은 이날 30여분 동안 직접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하며 전세계 석유·화학계에 불어닥친 구조적 위기를 객관적이면서도 날카롭게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다.
먼저 석유산업의 구조적 위기를 설명하며 미국의 셰일혁명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미국이 셰일을 생산하기 시작한 것은 10년이 됐다"면서 "전세계가 미국의 셰일을 예의주시했지만 한 해 한 해 지켜보기만 할 뿐 이에 맞설 대비는 누구도 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정 사장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셰일오일 하루 생산량 400만 배럴을 돌파하면서 원유 기준으로 하루 생산량 1000만 배럴을 넘어서게 됐다. 그동안 미국은 중동에서 주로 원유를 수입하는 국가였지만 셰일 혁명 이후 수출국으로 변화하게 됐다.
정 사장은 "절대적으로 원유를 수입해 온 미국이 자국 자원을 생산하게 되면서 미국 내 원유 가격이 급격히 떨어지게 됐다"며 "정유공장에서는 원재료인 원유 가격이 떨어지자 공장 가동률을 높이기 시작했고,다 죽어가던 미국의 정유업계는 지난 5년간 완전히 부활하며 가장 파워풀한 에너지 대국으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자원대국으로 불리는 러시아와 중동은 세계 최대의 원유과 가스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피드(자원, feed)가 풍족하다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중국과 인도는 상대적으로 자원은 부족하지만 엄청난 인구를 바탕으로 한 막대한 시장이 있다. 인도와 중국은 원유를 생산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두 국가는 정유공장과 화학공장을 직접 지어서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데다 수입량 자체가 엄청나 바게닝 파워(가격 협상력)가 있어 강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유럽은 과거 자체 시장이 있었지만 현재 설비들이 모두 노후화 돼 스크랩하거나 효율화하기 바쁜 상황이다. 거기다 정부의 환경정책과 에너지 연비 규제 등으로 수요가 쪼그라들면서 유럽의 에너지 사업은 고스트 타운화 돼 가고 있다.
일본은 자국 내 대부분의 정유시설이 스크랩되는 등 하루 정제능력이 400만 배럴에도 미치지 못하며 클리프행어(cliffhanger) 상태로 곤두박질쳤다. 호주 또한 대부분의 정제공장이 운영을 멈춰 일본과 비슷한 상황이다.
정 사장은 "한국은 미국이나 러시아, 중동처럼 자원이 풍부하지도 않고 중국이나 인도처럼 어마어마한 시장을 갖고 있지도 않다"면서 "한국의 정유·화학 공장은 자체 시장용이 아니라 수출을 위한 것인 만큼 구조적으로 미국, 러시아, 중동 등과 차별화된 경쟁력을 만들어내지 못할 경우 호주나 일본처럼 클리프행어로 밀려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게 화학산업의 경우, 중국이 과거 자급률 30% 미만에서 대규모 투자와 증설을 통해 최근 70~80%까지 따라잡았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한국 화학업계에도 구조적 위기가 닥쳤다고 분석했다.
정 사장은 "지난해 첫 적자를 기록한 뒤 올해 1분기에 실적이 잘 나왔고 2분기에도 그리 나쁘지 않은 성적을 낼 것으로 기대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마치 아주 짧게 스쳐가는 '알래스카의 여름'과 같다"면서 "SK이노베이션의 이익 구조 평균을 보면 전체의 70%가 불확실성이 큰 석유·화학 사업이 차지하는 만큼 올 1·2분기 성적은 일시적으로 수급이 개선된 것일뿐 구조적으로는 여전히 취약한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분기 실적에 일희일비해서는 안되고 구조적으로 사업을 바꿔야 할 시기가 됐다"면서 "구조적 위기에 맞서기 위해 기존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구조적 대응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구조적 위기에 맞서는 SK이노베이션의 구조적 혁신 방안 -
이를 위해 정 사장은 수익구조, 사업구조, 인적구조, 조직구조, 재무구조, 지배구조 등 총 6가지 구조를 분해해 구조적으로 혁신하는 방법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사장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생존 가능한 사업구조와 수익 수준 △원료·시장 경쟁력 열위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 △저유가 상황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 △현재의 인적·조직구조로 당면한 상황 어떻게 극복하고 어떻게 안정적 재무구조를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지속 성장을 이뤄낼 것인가를 집중적으로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먼저 수익구조 혁신을 위해 고객이 느끼는 밸류(V)와 제품 가격(P), 원재료 가격(C) 간의 간격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쉽게 얘기해 원재료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싸게 들여올 것인지, 통합설비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불필요한 비용 구조를 없애 제품 가격을 낮출 것인지, 고객이 더 많은 돈을 주고 사더라도 프리미엄을 가질 수 있는 제품은 무엇인지 등을 고민해 차별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사업구조 혁신은 E&P(Exploration & Production, 석유개발) 부문의 경우 지난해 인수한 오클라호마, 텍사스 소재 셰일광구를 인근 지역으로 확장하는 등 북미 기반의 자원개발 전문회사로 진화한다는 'U.S. 인사이더(Insider)' 전략을 수립했다.
화학부문은 기존 중국 중심의 성장전략인 '차이나 인사이더(China Insider)' 전략을 강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중국 최대 국영석유회사 시노펙(SINOPEC)과 손잡고 설립한 중한석화(중국 우한 소재)처럼 성공적인 합작 모델을 계속 만들기로 하고 중국 내 파트너들과 협력방안을 협의 중이다. 중한석화가 지난해 1월 상업생산에 들어간 우한 나프타분해공장(NCC)은 올 1분기 836억원의 흑자를 내는 등 1년 만에 중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또 글로벌 파트너십 확보에 힘을 쏟아 장기적인 사업 구조를 만들어 어떠한 상황에서도 안정적으로 제품을 공급해 정유사업의 한계를 극복하고 경쟁에서 살아남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인적구조·조직구조 혁신은 정철길 사장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혁신으로, 정 사장은 좋은 인적구조와 조직구조를 갖추면 좋은 사업구조와 수익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SK이노베이션은 정철길 사장 취임 이후 약 6개월 동안 엔지니어들을 울산 현장으로 배치했으며 각사에 흩어져있는 전문가를 한 데 모아 교육한 뒤 다시 각사에 배분하는 등 전문가 인력 육성에도 힘을 쏟았다.
정 사장은 "지난 6개월 간 SK이노베이션의 가장 큰 변화는 '스피드'"라며 "분기에 한번씩 진행하던 미팅은 먼슬리(monthly)로, 먼슬리로 진행되던 일정은 위클리(weekly)로, 위클리는 데일리로 바뀌는 등 회사 내 업무 프로세스 속도가 상당히 빨라졌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프로세스와 스피드를 가지고 1년, 3년, 5년 꾸준히 하다보면 차별적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재무구조 혁신을 위해 SK이노베이션의 순차입금을 지난해 8조원에서 올해 6조 이하로 줄일 것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정철길 사장은 "이를 위해 비핵심자산 매각은 적극 추진하고, 그 돈으로 핵심자산을 강화하는 포트폴리오로 리밸런싱 할 것"이라면서 "필요하다가고 느낄 때에는 어느 누구보다 과감하게 빠른 속도로 과감한 투자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구조적 혁신을 통해 SK이노베이션은 오는 2018년까지 11조원대로 저평가 돼 있는 기업가치를 30조원대로 키우고 글로벌 톱 30위 에너지 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정 사장은 "석유·화학 산업이 위기인 것은 확실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위기야말로 새롭게 시작하고 근본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절호의 기회이기도 한 이 위기를 절대 낭비하지 않겠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