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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서울이 6.25 동족상잔의 아픔과 역경을 극복하고 재기를 꿈꾸던 당시, 서울 은평구 통일로 590번지에 작은 사찰이 지어졌다. 대한불교 조계종의 큰집인 통도사 스님들이 당시 빈민촌이 자리 잡고 있던 이 지역에 포교당을 개설한 것이다.
보현사 주지를 맡은 명신(明信) 스님은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희망을 찾기 위해 온 그들에게 보현사가 마음의 안식처 역할을 해왔다"고 전했다.
실제 보현사는 당시 어렵고 힘든 삶 속에서 희망을 키워나가는 이들을 위해 청년회를 결성, 야간에 한글과 검정고시 준비 등을 가르치는 야간학교를 개설해 교육을 지원한 바 있다.
이처럼 지역민과 함께 성장해 온 보현사에 최근 강제철거 통지서가 전해졌다. 조합 집행부가 보현사와 '합의' 없이 무단으로 사업을 진행한 결과다.
오랜 터전을 두고 쫓겨날 상황에 놓인 보현사 측은 그간 조합과 제대로 된 '협의'조차 이뤄진 적이 없음을 뉴데일리경제에 밝혀왔다. -
명신 스님이 전해온 사연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녹번 제1구역 1지구 재건축 추진위원회가 발족되고 임원이 선출되던 그해 보현사에도 재개발 소식이 날아왔다. 이듬해 주민 총회가 열리면서 발표된 조감도에는 현 위치 그대로 보현사가 포함돼 있었다.
명신 스님은 "당시 조합 측은 보현사의 종교활동을 보장해 줄 수 있도록 현 위치 그대로를 존치하면서 공원부지를 인접하게 조성해 주민과 보현사 모두 피해가 없도록 해 주기로 약속했다"고 말했다.
실제 당시 조감도에는 보현사가 표기돼 있었다.
이후 녹번1구역 재개발은 2003년 이후 주민분쟁 등으로 사업이 중단됐다가, 2007년 10월 서울시 도시건축 공동위원회 심의 통과 후 다시 조합이 설립됐다. 이때에도 초기와 마찬가지로 조감도에 보현사가 명시돼 있었다.
하지만 재개발 사업이 난항을 겪은 2008년부터 2010년, 보현사와 조합 간 문제가 발생했다. 보현사 측이 신도들의 주거환경 개선과 원활한 사업 추진을 위해 조합과 이전 협의를 진행한 것이다. 그 결과 2013년 정기총회 및 관리처분계획수립을 위한 총회에서 보현사가 빠진 조감도가 통과됐다.
명신 스님은 "조합 측과 큰 틀에서 이전에 대해 협의만 했을 뿐"이라며 "당시 조합에서 협의한 부분에 대해 날인을 요구해 서명했지만, 이전과 관련한 세부사항을 논의한 적도, 합의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조합에서 소개한 부동산중개사가 이전 부지로 인근 절개지를 보여줘 좋다고 말했는데 한참을 지난 후에 이전이 불가능하다고 전해왔다"고 말했다.
보현사 측은 조합이 이전 부지를 보여주며 시간을 끄는 사이 사업을 추진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조합은 보현사의 모든 재산을 위임받은 상황에서도 보현사가 조합원이 아니라며 어떠한 정보도 공개하지 않아 왔다. -
현재 보현사 일대는 재개발로 인한 철거가 진행된 상태다. 정상적인 종교활동에 큰 지장을 받는 상황에서 보현사는 이전도 못한 체 방치돼 있다. 조합측은 조합원의 5분의 4 이상이 동의해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며 보현사는 강제수용 대상임을 통지한 상태다. 실제로 오는 16일까지 강제철거하겠다는 통지서를 보현사에 전달한 바 있다.
보현사 측은 50년간 지켜온 사찰에 대한 조합 측의 일방적인 감정가에도 의구심을 품고 있다. 조합 측은 보현사 감정가로 3.3㎡당 700만원을 제시하고 이를 받아들일 것을 종용하고 있다. 건축물은 노후건물로 감정해 사실상 감정평가 대상에서 제외하다 싶이한 것이다.
보현사 측은 "지하철 3호선 녹번역을 도보권에 둔 토지에 대한 감정가치고는 터무니없는 가격"이라며 "종교시설에 대한 별도의 감정기준도 적용하지 않았다. 50년이 된 사찰을 어떻게 단순 노후건물로 판단하고 철거해 버리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조합의 감정평가에 의문을 품은 보현사 측은 별도의 감정평가를 따로 받은 결과 3배 가까운 차이가 나는 것을 확인했다. 조합은 총 감정평가액 42억원을 책정했지만, 별도 용역을 맡긴 감정에서는 125억원으로 나온 것이다.
또 보현사는 현 조합 집행부가 비리에 휘말려 있다는 사실을 전해왔다.
일부 조합원이 서울시장을 상대로 낸 진정서와 경찰 및 검찰에 고소한 소장에 따르면 녹번 1구역 1지구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의 전 총무이사(현 조합장)와 상근이사는 조합장 장모씨를 2014년 4월 10일 부당 해임했다.
이어 같은 해 7월 4일 조합원 정족수를 확보하지 않은 체 총회를 개최, 신임 조합 이사진을 선임했다. 여기에 은평구청 담당 공무원은 이런 사실을 인지한 상황에서 조합집행부를 승인했다. 시공사도 새로 선임된 조합장이 무단으로 재발급한 법인인감으로 결제한 460여억원의 자금 집행에 협력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일부 조합원들은 서울고등법원에 총회결의 무효확인소송과 정기총회 무효확인 소송을 진행 중이다.
보현사 측은 "이 같은 재판 중에도 조합 집행부는 조합변경신청을 했고, 은평구 주거재생과 담당 공무원은 이를 알면서도 승인을 내줬다"며 "결과적으로 조합원 448명에게 재산상 피해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조합 집행부가 3종주거지역을 2종주거지역으로 낮춰 조합원몫 땅값 하락과 감정평가 저가 적용 등으로 평가액을 3배 낮췄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은평구청 관계자는 "녹번제1구역 제1지구의 조합임원 해임총회 및 정기 총회 개최 금지 가처분은 서울지방법원 기각됐고 총회결의 무효 확인 소송 및 정기총회의 무효 확인 소송은 1심 기각 후 현재 원고 항소로 고등법원에 계류 중인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용도지역을 변경해 보상금을 낮췄다는 부분은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제23조 제2항에 따라 당해 공익사업의 시행을 직접 목적으로 용도지역 또는 용도지구 등이 변경된 토지에 대해 변경되기 전의 용도지역 또는 용도지구 등을 기준으로 평가한다"며 "3종에서 2종으로 변경됐더라도 보상금 책정은 3종으로 이뤄진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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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사는 조합과 시공사 측의 무분별한 개발에 반기를 들며 보현사 존치를 주장하고 나선 상태다. 이를 위해 향후 종단 차원의 시위와 원천무효소송 등을 불사할 계획이다.
명신 스님은 "이번 재개발을 겪으면서 힘없는 서민들이 어떻게 보금자리에서 쫓겨나는지 실상을 보게 됐다"며 "사찰도 이렇게 핍박 받으며 쫓겨날 위기에 처하는데 힘없는 서민들은 어떻겠냐. 이들이 보호받을 수 있도록 재개발 제도 자체를 다시 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