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대표 대규모 손실 언급·분식회계 의혹 발생에도 국내증권사 여전히 '매수'기업 눈치보기 여전…투자자 "매수 일색 리포트 발행은 투자자 기망 행위"
  • 2분기 주요 상장기업들이 잇따라 '어닝쇼크'수준의 실적을 발표하고 있고, 일부 기업들은 분식회계 의혹까지 받고 있지만 국내 증권사들의 리포트는 여전히 '매수'라는 투자의견이 절대적이다.

     

    11일 금융투자협회 전자공시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기준 비교가능한 국내외 증권사 51곳이 작성한 리포트 중 투자의견 '매수' 비율은 75.1%를 기록했다. '중립'은 18.7%를 기록해 '매수'와 '중립'의견이 94%에 달했다.


    특히 '매도'리포트를 10% 이상 발행한 곳은 모두 외국계 증권사로 나타났다. 국내에서 활동 중인 외국계 증권사들의 매도리포트 비중은 17%를 기록한 반면 국내 증권사의 매도리포트 비중은 0.4%에 불과, 여전히 국내 증권사들은 기업들의 눈치보기에 급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계 증권사 가운데 씨티그룹글로벌마켓증권은 전체 리포트 가운데 매도리포트가 40.9%를 기록했고, 씨엘에스에이코리아증권은 39.0%를 기록했다. 메릴린치가 32.6%의 비중을 보였고, 모간스탠리(18.3%), 크레이트스위스(17.1%), 맥쿼리증권(16.0%), 다이와증권(14.5%) 등도 매도리포트 비중이 10%를 넘었다.


    매도의견 비중이 가장 높은 씨티그룹글로벌마켓 증권의 경우 현재 11명의 애널리스트가 근무 중이고, 두번째로 높은 씨엘에스에이코리아 증권은 외국인 연구원 4명을 포함해 13명의 애널리스트가 근무 중이다. 국내 대형 증권사의 10~20% 수준에 불과한 애널리스트들이 꾸준히 국내 기업들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고 있는 것이다.


    국내 증권사 중에서는 한화투자증권이 8.3%로 그나마 가장 높다. 한화투자증권은 주진형 사장이 지난해부터 직접 나서 매도 리포트를 내도록 한 영향이 큰 것으로 분석된다.


    한화투자증권을 제외한 나머지 국내 증권사들의 매도리포트 비율은 모두 3% 미만이다. 한국투자증권이 2.9%, 메리츠종금증권이 2.2%, NH투자증권이 1.6%를 기록했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는 대부분 매도 리포트 발행이 '제로'였다. 특히 부국증권, 바로투자증권, 유화증권은 '매수'리포트 비율이 100%를 기록했다.


    외국계 증권사와 비교해 국내 증권사는 상장사들 눈치를 보느라 쓴소리를 전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투자의견이 '중립'이면 '매도'로 해석하면 되기 때문에 실질적인 매도리포트 비율은 더 높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매도리포트 발행 이후 애널리스트가 해당 기업이나 주주들로부터 큰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쉬운 결정이 아니라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올 상반기 내츄럴엔도텍의 가짜 백수오사태로 업계가 한바탕 홍역을 치룬 상태에서 최근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빅3'의 대규모 영업적자로 사회전체가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이들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증권사에서 나오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조선 3사가 2분기 5조원에 이르는 손실을 냈고, 추가손실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 이후에야 이들에 대한 분석을 시작한 것을 두고 증권사 리포트에 대한 불신을 더욱 키우게 됐다는 것이다.


    특히 대우조선의 경우 지난 4월 이후 총 18곳의 증권사가 보고서를 냈고, 이 중 3분의 2가 '매수'의견을 냈다. 6월 25일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2분기 손실 가능성을 언급했을 때만해도 숨죽이던 증권가는 지난달 23일에서야 처음으로 매도리포트가 나왔다. 특히 분식회계 논란이 시작된 이후에도 대다수 증권사들이 매수의견을 유지했다.


    한 개인 투자자는 "회사의 대표이사가 직접 나서 손실을 언급했음에도 증권사들이 매수 일색의 리포트를 발행한 것은 투자자 기만행위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이같은 업계의 기형적인 관행에 대해 금융당국이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금감원은 매도 의견을 내더라도 불이익이 발생하지 않도록 상장사협의회와 코스닥협회 등에 협조를 요청하고, 증권사가 특정 기업을 분석 대상에서 제외할 경우 그 사실과 사유까지 구체적으로 기재토록 할 방침이다. 이는 최근 4년간 국내 증권사 리서치 보고서 중 매수 의견이 90.9%(9만146건), 중립이 9.1%(8978건)를 차지하지만, 매도 의견은 60건으로 0.1%에 불과해 기업분석 리포트가 사실상 투자가이드로서의 역할을 잃었다는 지적에 따른 조치다.


    업계 관계자는 "금감원의 방안이 실효성과 세부 내용이 부족해 아쉽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지만 그동안 애널리스트의 조사업무에 자율성과 독립성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라며 "객관적인 기업분석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제시된 점은 환영할 만 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심각하게 떨어진 투자자들의 애널리스트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증권사와 기업들의 환경조성 못지 않게 애널리스트들의 의식변화도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금 시점에서는 개인투자자들도 애널리스트가 투자자를 위한 리포트를 냈다고 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상황에서 증권사들 역시 고비용을 들이면서 애널리스트를 고용할 이유가 갈수록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