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와 경영 분리 원칙 지켜온 삶 빛나
  • ▲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연합뉴스
    ▲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연합뉴스

    이준용 대림산업 명예회장(사진)의 전 재산 기부가 재계는 물론 사회에 놀라움을 안겼다. 최근 일부 재벌의 일탈로 재계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상황에서 재벌 변화의 단초를 남겼다는 평이 이어지고 있다.


    국내에서 거액의 개인 재산을 100% 자발적으로 사회에 기부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특히 외부 재단에 기부한 예는 찾기 힘들다.


    이준용 명예회장은 지난 17일 재단법인 '통일과 나눔'(이사장 안병훈)에 전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전 재산에는 대림그룹의 실질지주회사의 주식이 포함돼 최소 2000억원 이상의 액수가 예상된다.


    그가 기부한 통일과 나눔 재단은 지난 5월 설립된 정부의 공식 기부금품 모집단체다. 남북 교류 협력·대북 인도적 지원·남북 주민간 공동체 의식 함양 등을 위한 기금 조성을 통해 체계적인 통일 준비와 원활한 통일기반 조성을 목적으로 한다.


    뉴데일리미디어그룹(회장 인보길)은 지난 4일 통일과 나눔 재단과 업무협약을 맺고 관련 사업 공동추진 홍보에 동참하고 있다.


    이 명예회장은 지난해 12월 한경진 여사가 작고한 후 개인 재산 기부를 결심했다고 한다. 공익성이 강하고 대상을 특정 짓지 않은 자원봉사 단체에 기부하는 것을 검토했다고 한다.


    그의 통근 결단에 소유와 경영 분리 원칙을 강조하며 정도경영을 펼쳤던 과거사가 새삼 시선을 끈다.


    지금의 대림산업 기틀을 다진 것은 이준용 명예회장이었다.


    창업주인 고 이재준 회장은 1939년 부평에서 목재와 건자재상으로 부림상회를 이끌면서 원목을 개발, 사세를 키웠다. 1947년 건설업에 진출 후 대림산업으로 상호를 바꿨고 1949년부터 본격적으로 건설업 중심으로 회사를 성장시켰다.


    청계고가도로, 경부고속도로, 소양강댐 등 대규모 사회간접자본시설은 물론 국회의사당, 잠실주경기장 등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물을 대림이 지어왔다.


    이준용 명예회장이 대림에 출근하기 시작한 것은 1966년부터다. 아버지를 도와 해외로 사세 확장에 나선 그는 사장에 오르면서 건설업에 유화부문을 더해 지금의 대림산업을 만들었다. 건설과 석유화학을 중심으로 사업 안정성을 마련한 것이다.


    이처럼 국내외 경제 위기 속에서도 대림산업이 꾸준한 성장과 위기관리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기본과 원칙을 지켜온 내실 경영의 결과로 풀이된다.


    이준용 명예회장은 대림그룹의 지배구조를 단순명료화해 투명하게 만들었다. 또 문어발식 사업구조로 회사를 확장하지 않고 건설과 유화만을 공략하며 내실이 단단한 회사로 성장시켰다.

     

  • ▲ 서울 종로구 수송동 대림산업 전경.ⓒ대림산업
    ▲ 서울 종로구 수송동 대림산업 전경.ⓒ대림산업


    이 같은 이준용 명예회장의 경영방침에서는 부친인 이재준 회장의 모습이 보인다.


    총수를 중심으로 가족경영이 일반화된 국내 기업문화 속에서도 자식들의 경영 관여를 최소화한 모습, 소유와 경영 분리를 강조해 왔던 경영 철학, 근검절약을 몸소 실천하며 소탈한 삶을 추구했던 모습 등이 그러하다.

    생전 이재준 회장은 "기업주만이 꼭 책임을 질 수 있는 업무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며 "자본과 경영이 분리돼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또 "나는 현업에 있을 때 물자구매라든지 하청관계와 같은 부분에 대해 일체 관여하지 않았다. 그것은 직원들이 소신껏 일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눈치를 보고 업무를 처리하는 것은 경영자 된 입장에서 봤을 때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도경영을 주장했다.


    이준용 명예회장 역시 "대림은 대주주라고 무조건 경영에 참여하지 않는다. 본인의 의지와 그에 합당한 능력이 뒤따라야 경영에 참여할 수 있다"고 말해 가족경영에 선을 그은 바 있다.


    검소한 생활 실천도 유명하다. 이준용 명예회장은 대림산업을 이끌 당시 별도 비서실 없이 지냈다고 한다. 또 집무실이 있던 4층까지 전용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자주 이용했다고 전해진다. 지난해 부인이 별세했을 때도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러 주변을 놀라게 했다.


    부친인 이재준 회장이 남긴 어록에서도 검소한 생활을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어떻게 사는 것이 화사하게 사는 것인가. 실내에 요란한 장식과 필요도 없는 가구로 채우는 것이 화사한 삶이 아니다. 자기 일상생활에 불편하지 않을 정도면 된다. 요새로 말하면 TV 하나 냉장고 하나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라며 근검절약한 삶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