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기업 사회적·도의적 책임 방관"
  • ▲ 2011년 9월29일, 서울 서초구 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여성환경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주최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규명 기자회견.ⓒ연합뉴스 제공
    ▲ 2011년 9월29일, 서울 서초구 공정거래위원회 앞에서 여성환경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주최로 열린 가습기 살균제 피해규명 기자회견.ⓒ연합뉴스 제공

    SK케미칼이 사망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의 유해성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를 방치했다는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많은 피해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 원료 제공 업체면서도 이렇다할 해명 없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해 피해자들의 불안과 의혹을 더욱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2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환경보건시민센터와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은 이날 SK케미칼에 대한 수사를 재차 촉구하고 나섰다.

    시민단체는 앞서 지난 3월9일 최창원 SK케미칼 대표를 포함한 임원들을 과실치사가 아닌 살인죄로 고발한 바 있다. 유해성 원료를 기업에 제공하고도 해당 기업이 이 원료를 이용해 가습기 살균제로 만들어 판매하는 것을 묵인해 피해자를 양산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검찰 조사에서 이를 뒷받침할 정황이 포착됐다. SK케미칼은 1994년 PHMG가 주성분인 가습기 살균제 SKYBIO 1125를 개발했다. 문제는 SKYBIO 1125의 원료를 공급받아 사용한 옥시레킷벤키저를 비롯해 홈플러스·롯데마트 자체브랜드(PB) 등에서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자가 나왔다는 것이다.

    검찰은 △옥시의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 △롯데PB인 와이즐렉 가습기살균제 △삼성 테스코의 홈플러스 가습기청정제 △덴마크 케톡스의 세퓨 가습기살균제 제품이 피해자들의 폐손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다만 검찰 조사 결과 SK케미칼이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정황은 현재까지 밝혀지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SK케미칼은 2003년 호주 수출 과정에서 "PHMG를 호흡기로 흡입하면 위험할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현지 정부에 제출하고 다른 제조사에는 '흡입 경고 문구'가 담긴 물질안전보건자료(MSDS·화학물질 취급설명서)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방치한 셈이다. SK케미칼 측은 이를 근거로 법적 의무를 다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강찬호 가습기살균제피해자와가족모임 대표는 "기업들이 이 원료로 흡입이 되는 제품을 만들고 옥시는 약 17년 동안 이 제품을 판매해왔는데도 이를 무시했다"며 "SK케미칼은 해당 기업으로써 응당 가져야하는 사회적·도의적인 책임을 다하지 않고 이를 방관했다"고 주장했다.

    서울중앙지검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건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은 그동안 피해자 진술, 살균제 원료에 대한 연구 자료 분석 등으로 확보한 증거물을 피의자 조사를 통해 최종 확인할 방침이다. 이번 검찰수사에선 문제의 가습기 살균제 회사들이 권장기준을 초과한 PHMG의 농도를 유지한 사실을 SK케미칼이 인지했는지 여부 등을 집중 추궁할 것으로 보인다.

    가습기 살균제 폐손상으로 정부가 현재까지 공식적으로 인정한 사망자는 146명이다. 추가 피해 신고 접수와 민간에 신고된 접수를 포함하면 전체 피해자 규모는 1500명 이상으로 추산되며 사망자 규모도 230~240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SK케미칼 관계자는 "현재 검찰 조사가 진행되고 있는 만큼 이와 관련해 그 어떤 공식 답변도 내놓을 수 없다"며 직접적인 답변을 피했다.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는 임 모(33·여)씨는 "나도 대학시절 저 살균제를 썼었는데...덜컥 겁이 난다"면서 "피해자들이 많아 너무 안타깝다. 업체들은 침묵이 아닌 진정한 사과와 보상을 해야 하며 확실한 진상규명을 통해 마땅한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