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1~4호선 절반이 노후 전동차...‘위험 상존’
  • ▲ 올해 1월6일 서울지하철 4호선 전동차 사고 소식을 보도한 뉴스. ⓒ 화면 캡처
    ▲ 올해 1월6일 서울지하철 4호선 전동차 사고 소식을 보도한 뉴스. ⓒ 화면 캡처

    하루 평균 이용객이 35만명에 이르는 국철 1호선 경인선 급행열차 구간에 내구연한이 25년을 넘는 낡은 전동차가 집중 배치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안전사고 발생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코레일이 운영하는 국철 구간 말고도, 서울과 부산지하철에도 시운전에 들어간 지 20년이 넘는 수백대의 노후 전동차가 지금도 운행되고 있어, 시민들의 불안을 자아내고 있다.

특히 정부가 2014년 철도안전법을 고치면서, 전동차 내구연한 제한 규정을 슬그머니 삭제해, 노후 전동차 운행을 부추기고 있다는 쓴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부와 코레일은, 획일적인 내구연한 규정이 철도 운영 주체에게 오히려 면죄부를 줄 수 있고, 내구연한 규정을 없애는 대신 ‘안전승인제도’를 도입해, 안전관리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차량마다 상태가 다른데도 획일적으로 수명을 정하는 것보다, 안전승인제도 아래서 차량을 더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효율적이란 설명이다. 내구연한 폐지에 동조하는 이들은 일본의 경우 차량 내구연한 제도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나, 차체(車體)는 물론 부품 일체를 국내 기술로 제작하는 일본과, 부품 및 설비 상당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의 현실을 단순 비교하는 건 무리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철도 안전 못지않게, 노후 전동차를 이용하는 승객의 편의를 고려해야 한다는 반박도 거세다. 노후 전동차의 특성상 내부 발열이 심하고, 냉방 능력이 약해, 승객들의 불편이 가중되고 있다는 것.

수명이 20년이 넘는 전동차가 다수 배치된 서울지하철 1호선과 국철 1호선 경인선, 부산지하철 1호선 등에서는, 선풍기 바람만 나오는 전동차 안에서, 쉴 새 없이 부채질을 하는 승객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몇 년 째 해법을 찾지 못한 채 되풀이되고 있는 노후 전동차 문제는, 12일 국민의당이 대변인 논평을 내면서, 다시 언론의 관심을 받고 있다.

국민의당은 논평을 통해 “경인선 급행노선에 수명이 25년 이상 된 차량이 집중 배치돼 있다”며,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국민의당 손금주 수석대변인은 “수많은 시민들이 출퇴근을 위해 이용하고 있는 경인선 급행열차는, 유독 다른 노선보다 더워 이용하는 시민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그 이유는 코레일이 경인선 급행노선에, 기동할 때마다 막대한 열을 발생시키는 노후 전동차를 집중배치 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손금주 수석대변인은, 정부가 전동차 내구연한 규정을 폐지하면서, 철도안전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손 수석대변인은 “철도안전법에서 15년으로 규정했던 전동차 내구연한은 96년 25년, 2000년 30년, 2009년에는 40년으로 확대되더니, 2014년에는 아예 법에서 삭제됐다”며, 정부가 예산 부족을 이유로, 시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전동차 내구연한 규정을 없앴다고 비판했다.

손 수석대변인은 “세월호 참사는 선박의 내구연한 기준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렸기 때문에 발생했다. 경인선 급행열차의 유별난 더위는 조만간 안전사고가 발생할 것임을 경고하고 있다”며, 철도안전법을 개정해 전동차 내구연한을 다시 지정을 할 것을 정부에 촉구했다.

국민의당이 지적한 것처럼 정부는 2012년 8월23일, 차량 내구연한 조항을 삭제한 철도안전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고, 이 법률안은 2014년 3월19일자로 국회를 통과했다.

개정 전 법률은 차량의 종류별로 내구연한을 규정하고 있었다.

이에 따르면 고속철도차량은 30년, 일반철도차량 중 객차는 25년으로 각각 정해져 있었다(개정 전 법 37조1항, 개정 전 시행규칙 70조, 동 규칙 별표 21).

개정 전 법률은, 수명을 다한 차량이 정밀진단을 통과하는 경우, 내구연한을 최대 15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개정 전 법 37조1항 후단, 같은 법 시행규칙 71조). 즉, 개정 전 철도안전법이 정한 객차의 최대 수명은 40년이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철도안전법의 입법 취지를 고려한다면, 차량의 내구연한 규정은 해가 갈수록 오히려 강화돼야 했지만, 현실은 정 반대였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최근 20년 사이, 수차례에 걸쳐 법률을 개정해, 차량 내구연한을 늘려 잡았다. 그 결과 최초 15년으로 정해져 있던 차량 내구연한은, 최대 40년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났다.

서울과 부산 등지에서 노후 전동차가 크고 작은 고장 및 사고를 일으켰지만 정부의 차량 수명 연장방침은 변하지 않았다.

전동차 수명이 연장되면서, 박물관에나 전시될 법한 낡은 전동차들은 ‘퇴역’을 미뤄야만 했다.

노후전동차 운행 실태는 전국적 현상이라는 점에서 경인선 급행노선만의 문제는 아니다. 경인선 급행구간을 달리는 전동차량은 모두 200대(20편성). 이 가운데 노후 전동차 논란을 일으킨 차량은 80대로 이들의 내구연한은 25년 가까이 됐다. 서울지하철도 사정은 비슷하다. 서울지하철 1~4호선 전동차량의 약 57%는 내구연한이 20년을 초과했다.

노후 전동차 문제를 바라보는 현장의 시선은 냉소적이다.

서울지하철 관계자 A씨는 “내구연한이란 해당 물건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유통기한’과 같은 개념이다. 식품안전을 위해 유통기한을 지켜야 하는 것처럼 차량의 내구연한도 지켜야 안전을 확보할 수 있다. 공기업 인력 감축 때문에 가뜩이나 정비인력이 줄어들고 있는데, 노후전동차 안전관리에 문제가 없다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라고 말했다.

올해 1월6일 서울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과 성신여대입구역 사이 터널에서 발생한 전동차 사고는, 출고된 지 19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교체하지 않은 ‘노후 절연판’ 때문에 일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가 난 전동차 역시 수명이 22년을 넘은 노후차량이었다.

일본은 지하철 절연판의 내구연한을 15년으로 잡고 있으나, 우리나라는 같은 부품을 19년째 그대로 사용했다. 검사에서 이상이 발견되지 않으면 내구연한에 관계없이 사용을 계속한 것이다. 서울메트로는 해당 전동차를 사고 하루 전 검사했다고 밝혔다.

이런 사정은 내구연한을 폐지해도, 철도 안전에는 문제가 없다는 정부의 해명을 무색케 한다.

철도전문가들은 “노후 전동차 교체에 필요한 막대한 예산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가 선택한 고육지책이 화를 키우고 있다”며, “대형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노후 전동차 교체 말고 다른 대안은 없다”고 조언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경인선 급행노선 노후 전동차 문제와 관련해 “올해 말까지 5편성(50차량), 내년 상반기 추가로 3편성(30차량)의 운행을 정지할 계획이다. 법령이 내구연한 규정을 삭제했지만, 전동차 내구연한을 25년으로 정해, 그 이상 운행을 하는 일은 없다”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나머지 급행노선 전동차도 2022년까지 순차적으로 교체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경인선 급행구간에 노후 전동차가 집중 배치됐다는 지적에 대해 “원래 경인선에 투입된 전동차였기 때문에 그대로 사용하는 것일 뿐, 다른 의미는 없다”고 말했다.

코레일 측은 경인선 급행구간 전동차의 냉방능력이 약하다는 민원에 대해서도 “냉방이 상대적으로 약한 칸의 설비를 보강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다. 승객들이 불편해 하지 않도록 더 관심을 기울이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