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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철강사들이 생산하는 후판은 글로벌 제품입니다. 세계 시장에서 팔리는 상품이라는 말이죠. 여기에 국내 기준을 들이대고 공급과잉이라고 판단해서는 안되는거죠."
철강업계에 30년 이상 종사한 한 관계자는 최근 정부가 내린 후판 공급과잉에 대해 이같이 주장했다. 후판 설비감축 등 구조조정에 대해 업계가 반발한 이유가 이 한마디로 설명되는 듯 했다.
그의 말을 간단한 예를 들어 해석하면 이렇다.
만약 A라는 제품이 있는데 수출을 할 수도 없고 수입도 안된다. 하지만 국내 소비는 100으로 정해져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A를 국내에서 연간 100 이상 생산한다면 공급과잉이 맞다. 수출도 할 수 없고 수입도 안되는 내수로만 소비해야 되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설비를 줄이거나 해서 공급과잉을 억제하는게 맞다. 그러나 후판은 수출입 모두 가능한 제품이기 때문에 이 기준을 들이댈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달 30일 '제5차 산업경쟁력 강화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5대 핵심전략'을 발표했다. 여기에 후판은 조선 등 수요산업이 더디게 회복될 전망이므로, 업계 스스로 감축방안을 마련하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현재 후판 생산능력이 1459만톤이라면서 적정 수준으로 조정하라는 구체적인 내용도 언급됐다.
업계 관계자들이 가장 혼란을 느끼는 대목은 '적정 수준'이라는 단어다. 국내 소비량 기준으로 수입 물량을 전부 제외한다면 현재 후판 생산량은 공급과잉이 아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의 지난해 후판 총 생산량은 982만톤으로 집계됐다. 동기간 국내 명목소비량은 1032만톤으로 생산이 오히려 50만톤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후판 수입 물량을 포함시킨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지난해 후판 수입은 약 277만톤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철강재 전체 수입이 2205만톤을 기록했는데 10% 이상 되는 물량이 후판인 것이다.
후판 업계는 저가 수입산과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노후 설비 폐쇄, 생산량 조정 등 자구적인 노력을 펼쳐왔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후판 수입량이 연간 250만톤을 넘어서는게 현실인데 정부 방안에 따라 후판 설비를 줄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 자리는 수입산이 차지할 것은 보나마나 뻔한 일이다. 후판 업계는 이러한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설비 감축에 앞서 생산량을 조절하고 있다.
후판업계 관계자는 "후판 공급과잉을 국내 문제로만 보면 안된다"며 "업황에 따라 철강사들이 자의적으로 생산량을 줄이고 있는데도 수입이 넘쳐나는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후판 공급과잉을 논하려면 수입에 대한 대책을 내놓는게 우선 순위다. 그렇지 않다면 설비 감축보다는 수출 지원 등 정부 기준의 공급과잉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내놔야 한다.
이번 후판 구조조정 방안에 여러가지 아쉬움이 남는다는 업계 관계자들의 반응이 이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