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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예산안 법정 처리시한이 일주일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여전히 기한 내 처리 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누리과정 예산 편성방식과 법인세·소득세율 인상 등에서 여야가 적지 않은 견해차를 드러내며 평행선을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최순실 씨 사태 등으로 야당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면서 정부의 부담이 더 커지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는 지금까지 예산안 처리 과정이 무리 없이 진행됐다며 안도하면서도 자칫 법정 처리시한을 넘겨 경기 불씨를 꺼뜨리지는 않을까 속을 앓는 분위기다.
◇ 감액심의 마무리…'최순실 예산' 대폭 삭감
정부는 어려워진 경제여건을 감안, 재정의 적극적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사상 최대 규모인 400조7천억원의 내년 예산안을 편성해 지난 9월 2일 국회에 제출했다.
복지예산이 처음으로 130조원에 달하고 일자리 예산이 10% 이상 늘어나는 등 사회분야 예산을 대폭 확대했다.
반면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2년 연속 삭감되고 연구·개발(R&D) 예산도 소폭 증가에 그치는 등 경제 분야 예산은 확대보다는 효율화에 초점을 맞췄다.
매년 진통을 겪었던 예산안 심사는 올해의 경우 '국정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 씨 사태가 터지면서 초반부터 험로가 예고됐다.
특히 예산안 심사 초반인 지난달 26∼28일 종합정책질의가 이른바 '최순실 청문회'로 변질돼 운영되면서 내년 '슈퍼예산'에 대한 졸속심사 우려가 커졌다.
그러나 지난 7일부터 진행된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예산안조정소위는 별다른 파행 없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최순실 씨의 국정 관여 의혹이 하나둘씩 확인되면서 이른바 '최순실 예산'에 대한 감액도 여야 충돌 없이 심사가 진행됐다.
지난 16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문화체육관광부 예산 중 1천748억5천500만원을 '최순실 예산'으로 판단해 삭감했고, 18일 열린 예산안조정소위는 문화창조융합벨트 예산 877억5천만원을 교문위 의견대로 감액했다.
예산안조정소위는 지난 7일부터 시작된 부처별 예산안에 대한 감액심사를 대부분 마치고 지난 22일 증액 심사에 착수했다.
기재부 예산실 관계자는 24일 "예결위 소위에서 감액심의 진도가 조금 더디긴 했지만 대부분 큰 무리 없이 잘 마무리됐다"면서 "일부 이견이 있었던 예산의 감액 문제와 본격적인 증액 심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 누리과정·세법개정은 '불씨'
문제는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소득세·법인세 인상 여부 등을 놓고 여야가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점이다.
야당은 누리과정에 중앙정부 재정을 더 투입할 것을 줄기차게 요구해왔고, 정부와 여당은 해당 예산을 지방교육청이 부담해야 한다며 맞서왔다.
이에 정치권은 2015년도 예산안에는 5천억원, 2016년도 예산안에는 3천억원을 각각 예비비로 지원하는 선에서 갈등을 봉합했다.
그러나 올해는 타협점을 찾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와 여당은 '지방교육정책지원 특별회계'를 신설해 교육세수 국세분 5조2천억원 전액을 편성하는 내용으로 내년도 예산안을 짰다.
그동안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들어가던 교육세를 별도로 떼 누리과정과 초등돌봄교실, 방과후학교 등 정해진 용도로만 사용하자는 것이다.
사용 목적이 정해져 있는 특별회계에 누리과정 예산을 집어넣어 재원 확보나 편성 여부에 대한 불필요한 논란을 차단한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
반면 야당은 정부가 누리과정용 특별회계를 만드는 것이 예산에 칸막이를 없애겠다는 애초 정부 기조와 맞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또 어린이집 누리과정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공약이며,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합치는 '유보통합'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인 만큼 법률상 보건복지부 관할인 누리과정의 책임을 지방교육청에 떠넘겨선 안 된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야당에서는 특별회계 전액을 삭감해 보통 교부금으로 반영하고,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일반회계로 편성하자는 주장이 나온다.
최근에는 지방재정교부율을 최소 2%포인트 인상해 필요한 재원을 확보하자는 요구도 있지만, 정부는 이 경우 학생 수가 계속 줄어들고 있는 만큼 향후 '예산 쏠림현상' 우려가 있다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예산부수법안으로 처리되는 세법개정안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도 논란거리다.
야당은 재정 건전성과 조세 형평성 측면에서 법인세·소득세 증세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소득수준이 높은 법인과 개인에게 더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한다는 방침도 공식화한 상태다.
반면 여당은 올해 세수가 충분히 걷히는 상황 등을 고려하면 고소득자에게만 세 부담을 더 지울 수 없다며 반대 입장을 펴고 있다.
여야가 합의하지 못할 경우 정세균 국회의장이 야당의 세법개정안을 예산부수법안으로 지정해 본회의에 넘길 것으로 예상되면서, 막판으로 갈수록 예산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 간 힘겨루기가 팽팽하게 전개되리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밖에 야당이 주장하는 고교 무상교육, 공무원 등 인력 확대, '새마을 공적개발원조(ODA)' 사업 감액, 공무원 업무추진비·홍보비 감액 등도 향후 쟁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 준예산 사태도 배제 못 해…새해 벽두부터 경기 꺼질라
여야가 이견을 좁히지 못하면 예산안 처리는 결국 법정 처리시한인 12월 2일을 넘길 수 있다.
지난 2년간 국회는 예산안의 법정 처리시한을 지켰다.
국회선진화법 도입으로 예산안 법정 처리시한인 12월 2일이 되면 정부 원안이 자동으로 본회의에 부의돼 여당에 의해 통과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대야소 국면에서는 야당이 예산안에 의견을 조금이라도 반영하려면 법정 처리시한 전에 정부·여당과 합의하는 게 이득이었다.
그러나 여소야대 국면이 된 20대 국회에서는 법정 처리시한을 넘겨 정부 안이 국회에 부의 되더라도 야당이 표결로 부결시킬 수 있다. 야당으로서는 법정 처리시한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이 다소 줄어든 셈이다.
예산안이 12월 2일을 넘기면 집행은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다.
예산안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금 배정 계획을 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중앙정부 예산 배정이 늦어지면 지방으로 갈 재원도 지연 배분돼 지방의회의 예산 편성도 덩달아 차질을 빚게 된다.
최악의 경우 여야가 끝내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새해를 맞으면 전 회계연도에 준해 예산을 집행하는 준예산 사태가 빚어질 수도 있다. 헌정 사상 준예산을 편성한 사례는 아직 없다.
소비, 투자는 물론 수출까지 부진하고 미국의 금리 인상,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협상 등 한국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정부의 돈마저 제때 풀리지 않으면 새해 벽두부터 경기 불씨가 꺼질 수 있다.
기재부 관계자는 "여야를 막론하고 예산안만큼은 혼란스럽지 않게 하자고 해 이제까지 큰 파열음 없이 처리해 왔지만 문제는 (22일부터 시작된) 예산안 증액 과정"이라며 "법인세, 누리과정 등 더 큰 쟁점이 많다"고 말했다.
이어 "예산안이 올해 안으로 처리될 수 있다, 없다는 것은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