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브랜드 단지에도 은행권 "글쎄"여신심사 강화… 중도금 대출 '난항'
  • ▲ 지난 15~16일 청약접수를 받은 '송도 호반베르디움 3차 에듀시티' 견본주택 내. ⓒ호반건설
    ▲ 지난 15~16일 청약접수를 받은 '송도 호반베르디움 3차 에듀시티' 견본주택 내. ⓒ호반건설


    #. 대우건설·현대건설·SK건설 등이 지난해 10월 선보인 강동구 고덕동 주공2단지 재건축사업 '고덕 그라시움' 아파트는 중도금 대출일자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아직까지 중도금 대출은행을 구하지 못했다. 현재 NH농협·우리은행·KEB하나은행·IBK기업은행 등과 협의하고 있지만 금액 등에 대해 합의하지 못한 상황이다.

    이 단지는 청약 당시 3만6000여명이 몰리면서 평균 22대 1이라는 높은 경쟁률로 1순위 마감했으며, 분양도 초기에 100% 완판한 지난해 최고 인기 단지 중 하나다. 그러나 총 4932가구에 달하는 초대형 대단지에 일반분양 물량만 2000가구가 넘다보니 대출액 규모도 8000억원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알려지면서 은행들도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시공사 한 관계자는 "복수의 은행들과 협의를 진행 중이지만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며 "재건축 컨소시엄 사업이라서 타사와도 협의해야 하고 여러모로 복잡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연초부터 분양시장이 중도금 대출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시행된 '8·25 가계부채 대책' 등의 여파다. 분양 후 대출은행 섭외에 몇 달씩 걸리는 것은 비일비재하고, 중도금 납부일자가 임박해서까지 대출은행을 찾지 못해 중도금 납부기일을 연기하는 곳도 속출하고 있다.

    비단 '고덕 그라시움'뿐만 아니다. 현대건설이 지난해 10월 경기 광주시에서 공급한 '힐스테이트 태전 2차' 역시 은행권과의 협의를 마치지 못하면서 당초 15일로 예정돼 있던 중도금 1차 납부시기를 미뤘다.

    이 단지는 초기계약률이 75%를 넘는 등 업계에서 '선방했다'는 평을 받는 곳일 뿐만 아니라 대형건설사가 분양한 브랜드 단지이자 1000가구가 넘는 대단지임에도 대출요청에 은행들이 손사래를 치고 있는 것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미계약 물량이 남아있다는 이유로 은행들이 중도금 대출을 거부하고 있다"며 "시중은행은커녕 제2금융권도 대출해주겠다는 곳이 없다보니 불가피하게 일정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포스코건설이 지난해 10월 이후 분양한 세종시와 대전 관저, 화성 동탄2신도시의 신규아파트 모두 중도금 대출은행을 찾지 못했다. 대림산업도 10월 선보인 'e편한세상 추동공원'과 11월 분양한 'e편한세상 서울대입구역' 아파트도 중도금 대출협의가 지연되고 있다.

    무주택 서민들이 찾는 공공주택도 예외는 아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이원욱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토교통부와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공공주택 7개 블록·총 6392가구가 중도금 대출은행을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형건설 A사 고위 관계자는 "어떤 현장의 경우 100% 분양이 끝났는데도 지방 사업장이라는 이유로, 또 어떤 곳은 본점의 집단대출 축소 지침이 내려졌다며 대출을 꺼린다"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지난달 시중은행들의 집단대출 신규 승인금액 규모(잠정)는 2조5000억원으로, 지난해 월 평균 승인금액 3조9000억원 보다 35.9% 줄어들었다. 집단대출 잔액도 2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이어갔다. 시중은행 5곳의 1월 집단대출 잔액은 108조538억원으로, 지난해 12월 2307억원이 줄어든 데 이어 1월에도 3319억원이 감소했다.

    이는 한국은행이 2016~2017년 집단대출로 인한 주택담보대출 증가 규모가 월 평균 3조~4조원이 될 것으로 예상한 것과는 크게 다른 결과다.  게다가 최근에는 주택경기가 하락세로 접어든 데다 미국이 다음 달에도 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있다는 이유로 중도금 대출에 대한 여신심사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 분위기다.

    특히 시중은행들이 가계대출과 관련 '성장'보다는 '안전'에 방점을 찍으며 집단대출을 죄기 시작하면서 건설사들의 분양 계획도 차질을 빚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금리도 오르고 있다. 시중은행의 집단대출 평균 금리는 지난해 9월 3.15%에서 올 1월 3.76%로 넉 달 사이 0.61%p 상승했다. 제2금융권 대출이자는 연 5%에 육박한다.

    중견건설 B사 관계자는 "분양물량이 많은 데 제1금융권은 잘 안 해주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협의 자체가 쉽지 않다"며 "시중은행이 어려워 2금융권과 대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경기가 하락세인 지방은 중도금 대출을 받기가 더욱 어렵다. 은행들이 중도금 대출 심사 때 초기분양률, 분양 지역 등 사업성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하자 단지별로 중도금 대출금리 격차가 커졌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중도금 대출이 막히고 이자가 급등하면 그 부담이 고스란히 분양 계약자에게 돌아간다고 지적했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 전문 연구위원은 "민간아파트뿐만 아니라 공공아파트도 은행권 대출이 안 돼 보험사나 농·수협 등 제2금융권으로 내몰리고 있으며 이럴 경우 전반적인 분양 부대비용이 올라갈 수 있어 결국 수분양자들만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잔금대출을 부담하는 이들은 대부분 신혼부부나 자영업자 등 실수요자인데, 소득 수준을 증빙해야 하니 수요가 많이 꺾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