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시장 놓고 미중일 각축전… 소프트웨어-물량-기술 뒤쳐져
  • ▲ 글로벌 엘리베이터 시장은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무한 경쟁으로 접어들고 있다. ⓒ 현대엘리베이터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 글로벌 엘리베이터 시장은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무한 경쟁으로 접어들고 있다. ⓒ 현대엘리베이터 지속가능경영 보고서

‘매출 1조7588억 원’, ‘영업이익 1821억’, ‘10년 연속 국내 승강기 업계 1위’…. 

현대엘리베이터(이하 현대E/L)의 지난해 실적이다. 세계 3대 승강기 시장인 국내에서는 선두를 지키고 있지만, 세계 시장 10위안에 턱걸이로 든 현대E/L의 ‘반전 성적표’는 ‘우물 안 1등’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비록 한국이 중국과 미국, 일본 다음의 시장이지만 중국과 비교해볼때 수십 배 이상 작기 때문이다. 

장병우 현대엘리베이터 사장의 언론인터뷰에서는 다급함마저 느껴진다. 장 사장은 ‘세계 9위임에도 국내 1위라는 사실은 가장 큰 위험요인’이라는 다소 강한 어조로 해외 시장 진출 의지를 밝혔다. 장 사장의 이 같은 발언은 그간 업계 일각에서 제기되던 “현대E/L이 내수에 안주했다”는 비판을 인지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회사의 ‘지속가능경영 보고서(Sustainability Report 2016)’에서도 이 같은 점은 더욱 두드러진다. 보고서는 향후 회사의 핵심이념을 ‘Think Global, Act Local'(Glocal)’으로 정하며 해외법인 설립 추진 의지를 재차 강조했다.  

현재 글로벌 신규 엘리베이터 시장은 연간 100만대 수준이다. 이중 중국시장은 60% 이상이다. 초고속 엘리베이터의 상위 10개 브랜드 중 절반은 중국에 진출해 있다. 오티스 등 전 세계 엘리베이터 시장 선두기업들은 일찌감치 중국에 진출해 시장 점유율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정리하면 중국시장을 잡느냐가 곧 글로벌 엘리베이터 시장에서의 성공을 좌우한단 얘기다. 

현대E/L이 해외법인을 통한 글로벌 시장 진출을 본격화한 시기는 지난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합작법인인 ‘상해현재던제제조유한공사’를 시작으로 현대엘리베이터 필리핀 서비스 설립(1993), 브라질 법인(2013), 말레이시아 법인(2013), 터키 합작법인(2016) 등을 순차적으로 세웠다. 

현재 회사는 해외법인 8곳과 51개의 사무소를 운영 중이다. 문제는 중국시장 대응이  타 경쟁사들과 비교해 현저히 작은 규모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E/L이 중국 현지 판매를 시작한 건 2011년이다. 상해공장에서 7300대 제조 규모의 공장을 설립해 운용중이나 해외 경쟁 업체와 비교하면 턱없이 작다. 

전통적으로 뛰어난 기술력으로 정평이 난 미쓰비시와 히타치 등 일본 기업의 강세도 여전하다. 고객 편의에 최적화된 엘리베이터와 정교한 기술력으로 무장한 일본 기업들은 최근의 초고속 경쟁에서도 선전하고 있다. 

현대E/L도 시속 75.6킬로미터의 신 모델을 연구하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초고속 엘리베이터 시장에 대한 회의론이 대두되고 있어 ‘헛고생’이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초고속의 경우 되레 승객의 불편이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계속 발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근래 들어 글로벌 시장에서 보급형 승강기 시장이 포화됨에 따라 경쟁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인공지능(AI) 기술을 적용한 엘리베이터가 속속 등장하는 것은 더 이상 승강기 시장이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 경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오티스가 최근 내놓은 ‘오티스 컴파스플러스 목적층 선행등록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이렇듯 막강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물량으로 승부하는 중국 기업과 일본의 견고한 초고속 기술, 소프트웨어로 무장한 미국 기업들의 각축전 속에 엘리베이터 시장은 한치 앞을 알 수 없는 무한 경쟁으로 접어들고 있다. ‘전 세계 빅7 기업’으로의 성장 목표를 세워둔 현대E/L의 글로벌 전략에도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 같은 상황은 규모면에서 불리한 현대E/L 입장에서는 기회일 수도 있다. 새로운 제품 개발을 통해 경쟁 우위에 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로벌 경쟁사들 역시 엘리베이터 시장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만큼 얼마나 차별성과 경쟁력을 가진 제품을 내놓느냐가 관건이다. 

현대E/L 관계자는 "회사가 이미 세계적인 수준의 기술력을 보유, 글로벌 기업과 동등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며 "일각에서 제기되는 ‘덩치에 비해 내수에만 집중한다’는 비판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또 "100년 이상 된 상위 기업들과의 단순 비교는 불합리하며, 후발 주자인만큼 내수시장에서 내실을 닦았을 뿐"이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