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원전석탄화력 계획폐기…진행사업도 중단위기건설기업 수주난·사회적 비용 발생 후폭풍 '우려'일선 중소업체 "사업 접으란 얘기냐" 불만
-
-
-
-
▲ 고리원전 3호기(좌)와 4호기 전경.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의 '40년 후 원전 제로 국가' 목표에 건설업계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줄어든 공공공사 발주에 원자력발전과 화력발전의 발주 중단 가능성이 커지면서 먹거리 부족은 물론, 일선 협력업체에서는 줄도산 우려까지 터져 나오고 있다.
15일 문 대통령 정책소개 사이트인 '문재인 1번가'를 살펴보면 '탈 원전, 탈 석탄' 에너지정책이 최다 지지를 받고 있다. 석탄화력발전소를 규제하는 '미세먼지 없는 푸른 대한민국' 공약은 다섯 번째로 많은 '좋아요'를 받았다. 문 대통령의 1번 공약인 일자리 공약(12위)보다 높은 순위다. 특히나 에너지 사업의 경우 중장기 과제인 만큼 다른 공약들보다 우선 추진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앞서 문 대통령은 지난달 발표한 '6대 에너지 정책'에서 석탄화력발전소와 원전의 신규 건설을 전면 중단하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의 설비 가동률을 일정 수준(60%) 이상 유지하겠다고 약속했다. LNG발전소의 가동률은 지난해 38.8%였다.
이와 함께 적극적인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도 발표했다. 그는 태양광·해상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적극 투자해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 전력량을 전체 전력 발전량의 20%까지 높아지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석탄화력발전소는 최근 미세먼지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비중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문 대통령 역시 "석탄화력발전은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다. 국제 온실가스 감축에도 역행하는 일"이라며 신규 건설을 전면 중단하고 건설 중인 발전소라도 공정률이 10% 미만인 경우 건설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노후 석탄화력발전 10기는 조기에 폐쇄될 전망이며 충남 서천·당진, 강원 강릉·고성 등에 들어설 9기 등은 폐지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원전 비중도 축소가 예상된다. 문 대통령은 "더 이상 국민의 생명을 확률에 거는 에너지 도박 정책을 중단할 것"이라며 원전 중심의 발전 정책을 폐기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을 백지화하고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을 금지하기로 했다. 이에 월성1호기가 폐쇄되고 신고리 5·6호기 공사도 중단될 전망이다.
이 같은 공약이 정책으로 실현되면 건설업계에 미칠 악영향이 적지 않을 전망이다.
원전은 신고리 5·6호기와 신한울 3·4호기, 천지 1·2호기 등 8기가 취소 대상이다. 석탄발전소는 삼척포스파워 1·2호기와 당진에코파워 1·2호기 등 미착공한 6기, 고성하이 1·2호기 등 공정률이 10%에 못 미치는 3기 등이 중단 대상이다.
지난해 6월 착공한 신고리 5·6호기에는 지금까지 약 1조4000억원이 투입됐다. 이는 총 사업비 8조6000억원의 16% 수준이다. 주설비공사는 삼성물산 컨소시엄(삼성물산·두산중공업·한화건설)이 맡고 있다. 낙찰가격은 1조1775억원으로, 업체별 지분율은 삼성물산이 51%(약 6000억원), 두산중공업 39%(약 4600억원), 한화건설 10%(약 1200억원) 등이다.
현재 공정률은 27%에 이르지만, 발주처인 한국수력원자력의 공사 취소시 건설사들이 지분에 따른 공사대금을 지급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는 각 건설사의 실적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투입한 비용 수조원은 물론, 해당 건설기업과 정부간 소송 등 사회적 비용 발생도 우려된다.
뿐만 아니라 수주잔고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두산중공업은 신고리 5·6호기의 주설비공사과 더불어 주기기 공급을 통해 2조8000억원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 또 신한울 3·4호기의 유력 수주업체로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두 사업 모두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올해 신규수주 목표액인 10조6000억원 달성에도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발전소 건설 사업의 경우 대규모 발주액을 통해 공사를 수주한 건설기업에 높은 수익성을 안겨줬다. '탈 석탄, 탈 원전' 공약이 실현될 경우 건설기업 입장에서는 수익성 있는 사업 부문이 떨어져 나가는 셈인 만큼 사업 포트폴리오 구성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대형건설 A사 관계자는 "원자력·석탄화력발전소를 제외하고 남은 발전소 사업으로는 LNG발전이 남았다. 하지만 원자력이나 화력발전에 비해 수익성이 낮은 편"이라며 "폐기물, 에너지, 화학 등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건설사들의 사업역량 강화가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형건설 B사 관계자는 "아직 공약이 구체화되지 않은 만큼 지켜보고 있는 상황"이라며 "현재 진행 중인 현장에 대한 중단은 쉽지 않아 보이지만, 우려가 큰 것 역시 사실인 만큼 장기적으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신재생 발전 분야 수주전략 등을 고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최근 '탈핵에너지전환 국회의원 모임'은 한국전력의 영국 원전 건설사업 수주를 겨냥해 "영국 원전사업 참여를 중단하라"는 주장까지 하고 나섰다. 이에 발전시설 생산업체들의 하소연이 높아지고 있다.
한전은 현재 UAE 원전 수출에 이어 8년 만에 해외진출을 계획 중이다. 영국 북서부 무어사이드 지역에 총 3.8GW 규모의 원전 3기를 짓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뉴제너레이션 컨소가 주도하고 있는데, 지분 60%를 가진 일본 도시바가 최근 원전 사업에서 수조원대 손실을 떠안으면서 지분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이후 한전이 유력한 인수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탈핵에너지전환 국회의원 모임'에서는 "새 정부 에너지 정책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라며 사업 참여 중단을 요구했다.
이에 일선 원전 관련 중소업체들은 해외 원전 프로젝트마저 제한한다면 사실상 사업을 접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500개가 넘는 국내 관련 업체들은 그동안 정부의 원전 확대 정책에 맞춰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부품을 국산화하는 데 노력해 왔고, 그에 대한 자부심도 갖고 있다"며 "신규 원전 건설 중단에 해외 수출길까지 막힐 경우 관련 업체들의 줄도산과 함께 수만명의 종사자가 길바닥에 나앉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에너지 업계 일각에서는 '탈 석탄, 탈 원전' 정책의 실현 가능성에 현실적 어려움에 직면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발전 효율성 등 기술적 문제와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사회적 합의 등이 해결이 쉽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다.
일단 석탄 및 원전발전을 급하게 줄일 경우 전력수급에 위기를 부를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전문가들도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동의하지만, 구체적인 '에너지믹스'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특히 에너지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 현실에서 갑작스럽게 원전과 석탄화력발전의 비중을 높이는 것은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신재생에너지의 경우 시설이나 설비에 비해 발전량이 화력발전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다. 특히 풍력과 조력은 환경 문제로 지역민과 지역환경단체에서 반대가 거세고, 태양광발전은 아직 대규모로 설치하는 데에 기술적 한계가 있다.
또한 석탄 및 원전발전과 신재생에너지 사이에는 발전단가가 큰 만큼 전기요금 인상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안전과 환경 문제 때문에 원전과 석탄화력을 단계적으로 없애고 친환경 발전을 강화해야 한다는 에너지 정책의 큰 틀에 대해서는 공감을 한다"면서도 "그러나 발생할 수 있는 수급문제, 전기요금 인상 등을 해결할 방안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우리 국민들이 안전과 환경에 대한 문제를 받아들이고 비싼 전기요금을 지불할 의사가 있는지 여부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와 합의부터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