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약사들, 처방전 발행 의무화·표준진료수가제 주장…"수의사, 인체약 처방하며 진료비 폭리"
  • #. 제 진료비 좀 봐주세요 ㅠㅠ 자궁축농증이랑 패혈증이 와서 수술했는데 거의 300만원이 나왔어요. 영수증 보니 수술할때 장갑비까지 청구돼 있는데 보통 그런가요?


    #. 애기가 초콜릿을 먹어서 병원에 입원시키고 오는 길인데 진료비가 너무 많이 나와서 보니(45만원) 기본진료비에만 야간할증이 붙은게 아니라 9가지 처치·검사마다 야간진료 할증이 20%씩 들어갔어요.


    "대놓고 호구 잡히셨네요."


    한 인터넷포털 반려인들의 카페에는 '진료비' 검색만 해도 이같은 질문과 답변의 글이 수두룩하다. 표준진료수가가 정해져 있지 않은, 온통 비급여 진료인 동물병원 진료비는 말 그대로 '부르는 게 값'. 가격대도 병원마다 천차만별이다.

  • ▲ 인터넷포털 반려인 카페에는 값비싼 동물병원 진료비로 인한 문의 글이 쏟아진다.
    ▲ 인터넷포털 반려인 카페에는 값비싼 동물병원 진료비로 인한 문의 글이 쏟아진다.


    반려인 1천만 시대. 동물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들이 동물병원의 진료비 폭탄실태를 지적하며, 합리적인 제도 개선을 위해 발벗고 나서 주목된다.


    6일 대한동물약국협회에 따르면 동물병원의 표준진료수가제의 조속한 도입과 보호자의 알권리 증진, 약제비 절감을 위해 동물약(인체약포함) 처방전발행 의무화제도 시행을 촉구하는 대국민 서명(http://anipharm.net/minwon)과 민원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708명의 시민들이 참여했으며, 서명은 동시에 농림축산식품부 실무부서로 민원 접수된다.


    동물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들이 이같은 대국민 서명운동에 나선 것은 동물병원 과잉 진료비로 인한 소비자 피해를 줄이기 위함이다.


    동물약국협회는 가깝게는 동물에게 쓰이는 인체약을 포함한 동물약 처방전 발행 의무화를, 장기적으로는 표준진료수가(의료서비스대가)제 제도화를 주장하고 있다.


    동물약국협회는 "보호자가 동물병원에서 무슨 약인지 설명도 듣지 못하고 비싼 값에 동물약을 탈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면서 "농림축산식품부는 비급여 형태인 동물병원의 진료비를 표준화해 공공성을 지키고 국민권익을 향상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체약 혼용하며 처방전 발행 의무 비켜가…수의사들의 약값 폭리

  • ▲ ⓒ임진형 약사 제공
    ▲ ⓒ임진형 약사 제공


    전국적으로 분포된 동물약국 수는 동물병원 기관 수와 비슷한 국내 4,400여곳. 이들 약국에서 판매되는 심장병 약의 한 달치 약제 원가는 3만원 정도지만 동물병원에서 진료를 받고 약을 처방 시 15만원에서 60만원까지 값은 천차만별이다. 매년, 그리고 평생 복용해야 하는 심장병 약값이 반려인들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동물병원의 이같은 약값 폭리가 가능한 이유는 동물약과 인체약 사용의 애매한 경계 때문이다. 수의사들은 동물약 대신 예외적으로 인체약을 처방할 수 있는데, 동일 성분의 동물약 제품이 있더라도 단가가 낮은 인체약을 처방하는 일이 비일비재한 현실이다.


    동물약국협회 관계자는 "외국의 경우 같은 성분의 동물약이 있으면 인체약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돼 있고, 경제적인 이유만으로 인체약을 대체해 쓰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까지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면서 "동물약 제조업체는 한두군데이지만 인체약은 수백군데인 만큼 같은 성분이어도 단가 차이가 크다"고 설명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한다. 동물약 처방시 처방전을 의무적으로 발행하도록 돼 있지만 기본적으로 인체약 처방권한은 의사에게 있는 탓에 인체약 처방전 발행의 의무가 수의사들에게 없다. 반려인들이 처방전을 요구해도, 수의사들이 처방전을 발행하지 않아버리면 그만. 그러다보니 동물병원에서 폭리를 취해도 확인할 길이 없고, 해당 의약품을 값싸게 동물약국에서 구입하려 해도 처방전이 없어 불가능하다.


    지난 8년간 동물약국을 운영해온 이 관계자는 이로 인한 수많은 동물병원 진료비 피해 사례를 접했다.


    동물약국협회 관계자는 "반려견 수술 후 항생제 처방을 하루분씩만 해주면서 매일 5만원씩 진료비를 받는 경우에서부터 원가 2만~3만원인 약을 처방해놓고 진료비를 포함해 약값까지 60만원을 받는 경우까지 봤다"면서 "어떤 동물병원에서는 심장약을 처방했는데 약이 잘 들지 않으니 견주가 병원을 바꾸겠다며 처방약을 알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수의사는 무슨 약인지 알려주지도 않고 자기네 병원에 오지도 말라고 해 견주가 울면서 우리 약국에 찾아온 일도 있었다"고 피해 사례를 들었다.


    정부조직 내에서도 인체약과 동물약의 관리감독 주체가 다르다보니 동물병원 내 인체약 의약품 관리도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농림부가 동물병원에 의약품 감사를 나가더라도 보건복지부 소관인 인체약 관리는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다는 지적이다. 수의사는 인체약 구입 시 수불대장을 비치해 의약품 구매처와 제품기한을 기입하도록 했지만 이마저도 1년간만 보존하게 돼 있다. 최근 모 종합편성채널에서 보도된 유효기한이 24년이나 지난 의약품을 동물에 투약하는 동물병원 사례가 발생했던 것도 이같은 제도 사각지대 탓이다.


    동물약국협회 관계자는  "동물약국협회를 만든 지난 2013년 이래 꾸준히 농림부와 복지부에 제도 개선을 요구했지만 좀처럼 움직임이 없다"면서 "인체약 감독 주체인 복지부에는 동물용 인체약 사용에 대해 담당하는 부서조차 없고, 동물약이 농림부 소관이라고 미루기만 한다. 농림부는 입장을 애매하게 회피하면서 부처가 협의가 되지 않는다는 식으로만 밝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한민국의 5분의 1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지만 정작 반려동물의 건강을 책임지는 부서의 이름은 가축 전염병을 관리하며 때에 따라 '살처분'을 지시하는 '방역총괄과'와 '방역관리과'"라면서 "반려동물에 대한 정부의 인식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도 농림부의 문제 인식 수준은 안일해 보인다.


    농림부 관계자는 "동물병원 인체약 수불대장 기록을 통해 충분히 관리감독되고 있다"면서 "인체약 처방전 발행권은 의사에게 있으니 법적으로 수의사가 인체약의 처방권을 발행할 권한이 없다"고만 했다.


    ◆반려동물 건강권 생각 않는 건 오히려 약사, 밥그릇 뺏지말라

  • ▲ ⓒ게티이미지뱅크
    ▲ ⓒ게티이미지뱅크

    약사들의 이같은 움직임에 수의사단체는 불편한 기색을 보이고 있다. 오히려 반려동물의 건강권을 명분으로 약사들이 수의사들의 밥그릇을 넘보고 있다고 주장한다.


    대한수의사협회 관계자는 "약사들은 동물병원이 수십배 폭리를 취한다고 주장하지만 진료비에는 의약품 처방뿐 아니라 전문가들의 진료 대가까지 포함돼 있다"면서 "법적으로 수의사가 인체약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돼 있는데 이걸 마치 편법인냥 지적하는 약사들이 오히려 동물약 시장을 넘보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사람과 동물의 생리기전이 엄연히 다르다"면서 "동물약국, 동물약사라고 하지만 약사들은 약의 전문가일 뿐 동물의 전문가가 아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