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SOC예산 22% 삭감… 공공부문 매출 5분의 1 '증발'중소업체 일감 노리는 대형사… "중소업체 아사 지경"건설업 일감 부족, 일자리 확대는커녕 경제성장률 역행 우려
  • ▲ 서울시내 한 빗물저류배수시설 공사 현장. ⓒ뉴데일리경제 DB
    ▲ 서울시내 한 빗물저류배수시설 공사 현장. ⓒ뉴데일리경제 DB


    국제유가 하락 여파로 국내 건설기업들이 해외시장에서 어깨를 펴지 못 한 지 몇 해가 지났다. 그나마 '기댈 언덕'이었던 국내 주택사업도 새 정부 들어 규제 강화로 전망이 어둡기만 하다. 여기에 SOC예산 마저 크게 줄어들면서 건설업계가 '일감 절벽'에 다다랐다. 일감이 줄어들면서 새 정부가 강조하는 '일자리 확대'는커녕 이익 실현조차 힘겨워 보인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이달 초 정부는 국회에 2018년도 예산안을 제출했다. 전체 재정 규모는 올해(본예산 기준)보다 7.1% 많은 429조원이었다. 하지만 SOC예산은 올해보다 20% 삭감된 17조7000억원에 그쳤다. 2004년 이후 14년 만에 최저치이며 한 해 삭감폭(4조4000억원)으로는 역대 최대치다. 국토교통부 소관 SOC예산은 올해 19조576억원에서 내년 14조6977억원으로 22.9% 줄어들었다.

    건설업계 입장에서는 당장 공공부문 사업 매출이 5분의 1 이상 증발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5년간 178조원이 소요되는 새 정부의 정책과제 재원조달을 위해 전 부처를 대상으로 구조조정이 추진된 결과다. 기획재정부는 재고가 상당히 축적됐다고 판단한 SOC 분야에서 가장 과감하게 예산을 삭감했다.

    이에 대형건설사들이 이전에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던 소규모 종합심사낙찰제(종심제) 공사 수주에도 나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K-water가 최근 마감한 충주댐계통 공업용수도 사업 및 추가사업(종심제 공사)의 2공구와 4공구 입찰참가자격 사전심사(PQ)에 각각 36개, 22개 건설사가 참여했다.

    특히 이 공사는 400억~500억원대 소규모 공사임에도 현대건설, 대우건설, 포스코건설 등 10대 건설사 대부분이 PQ서류를 접수했다. 그동안 이들은 종심제 공사의 경우 주로 1000억원 이상 대형 공사에만 모습을 보여 왔다.

    대형건설 A사 관계자는 "내년 SOC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하반기 발주물량은 기회가 닿는 대로 참여해 수주로극 쌓아놓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대형사들의 소규모 사업 진출은 중소건설사 먹거리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공공공사 의존도가 높은 지방·중소건설업계의 체감경기 악화가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대한건설협회 조사 결과 국내 종합건설업 등록업체 전체의 지난 7월 수주액은 지난해 7월보다 33.6% 줄어든 9조7895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공공부문 수주 감소폭이 42.1%로 컸다. △도로·교량 △철도·궤도 △상하수도 △토지 조성 등 SOC부문 공사 발주가 적었던 게 가장 큰 이유로 지목된다.

    또한 건설산업연구원이 조사·발표하는 건설기업경기실사지수(CBSI) 가운데 건설공사 수주잔고 BSI 추이를 보면 중소기업의 경우 8월 41.3으로 지난달 65.2에 비해 41.3p 급감했다. 같은 기간 중견건설사도 78.6에서 73.3으로 5.3p 하락했다.

    중소건설업체 B사 대표는 "주변 건설사 중에는 올해 수주를 한 건도 못한 회사도 있고, 직원 월급도 못 줄 형편인 회사도 있다"며 "중소건설사들이 아사 직전"이라고 호소했다.

    지역별로도 저마다 '지역 홀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대구에서는 6개 SOC사업에 국비 1823억원을 신청했지만 25% 정도만 반영됐고, 경북에서도 SOC 분야에서 1조7000억원이 삭감됐다는 주장이 나온다.

    광주 역시 SOC 사업비로 4858억원을 신청했지만 20% 수준만 반영됐고, 전남은 1조9000억원을 신청한 반면 절반 수준인 9500억원만 배정받았다.

    영남권 전문건설기업 C사 대표는 "대형사업 축소와 유지·보수시장 확대 등을 예상하긴 했지만, 이 같은 속도라면 지역사회 중소건설사업을 담당하는 전문건설사들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상황이 이렇자 지난 12일 건설협회를 비롯한 국내 5개 건설 관련 단체장들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SOC예산 확대를 요구했다. 이에 앞서 협회는 국회와 정부 각 부처에 SOC 인프라 확대를 요구하는 건의서도 제출했다.

    유주현 협회 회장은 "정부의 SOC예산 삭감은 이해하기 힘든 결정"이라며 "복지와 성장을 반대 개념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균형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 적정 수준의 SOC투자가 국민 복지를 향상시킨다"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은 일자리 유발 효과가 큰 건설업이 무너지면 문재인 정부의 '일자리 창출을 통한 소득주도 성장'도 위태로워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건설업은 전통적으로 고용유발 효과가 큰 산업이다. 한국은행 분석 결과를 보면 건설업의 취업유발계수(10억원의 수요 창출시 고용인원)는 13.8명으로, 제조업(8.6명)의 1.6배에 달한다. 생산유발계수(최종 수요가 1단위 증가했을 때 각 산업부문에서 직·간접적으로 유발되는 산출액)는 2.225로, 제조업(2.110)을 웃돈다.

    때문에 실질적인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건설투자가 10% 위축되면 26만6000개 일자리가 사라진다. 2015년 기준으로 전체 건설투자 중 SOC부문 비중이 33%에 이른다. 당시 정부 SOC예산은 26조1000억원으로, 전체 건설투자의 12.6%를 차지했다. 정부가 SOC예산 20%를 삭감함으로써 건설투자가 2.5% 줄고, 6650개 일자리가 없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대형건설 D사 관계자는 "일감이 없는 쪽은 인원 구조조정 압력이 클 수밖에 없다. 해외나 토목부문 인원을 주택으로 돌려왔지만, 이런 방식도 한계 상태"라며 "토목 쪽은 지금까지도 인원을 지속적으로 줄여왔지만, 국내 SOC사업이 더 줄면 현재 수준도 유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건설사에서 SOC사업을 담당하는 인프라·토목·Civil 사업부 등의 소속 인원들이 크게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대우건설의 경우 2013년 말 토목사업본부 인원이 1238명이었지만, 올 상반기에는 693명으로 3년 반 사이 44% 감축됐다. 현대건설 역시 같은 기간 토목 인원이 1954명에서 1527명으로 감소했다.

    SOC예산 감소와 이에 따른 일자리 위축이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건설산업연구원은 SOC예산 감소로 향후 건설투자가 연 평균 약 1조1000억원씩 감소할 것으로 추정하며 그 효과로 200여만명에 달하는 건설업 종사자가 줄어들고 이는 가계소득 감소와 소비 침체로 이어져 경제성장률이 매년 0.09%p씩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SOC 공급 확대를 국민 삶의 질 제고나 미래사회 대비를 위한 투자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며 "투자 효율성을 더 높이고 국토 균형발전을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동시에 경기 안정화를 위한 일정 수준 이상의 SOC 공급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