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등 "당장 피해 없지만… 중동 수주 회복 요원"전문가들 "지역 다각화 및 파이낸싱 능력 키워야"
  • ▲ GS건설이 수행한 이란 사우스파 9·10단계 현장. ⓒGS건설
    ▲ GS건설이 수행한 이란 사우스파 9·10단계 현장. ⓒGS건설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의 이란 경제제재 강화로 대림산업이 수주한 대규모 공사 계약이 해지됐다. 업계에서는 이번 계약해지가 국내 건설사들이 수주한 프로젝트에도 영향을 미칠 지 우려하고 있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대림산업은 지난 1일 이란 정유회사 이스파한과 지난해 3월 체결한 공사 수주 계약을 해지했다고 공시했다. 해지금액은 2조2000억원으로, 이는 2015년 대림산업 매출액의 23.4% 규모다.

    대림산업 관계자는 "발주처 등과 금융약정이 체결 완료되는 것이 선계약 조건이었는데,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 등 대외 여건 악화로 금융약정 기한인 전날(5월31일)까지 체결이 완료되지 않아 자동으로 무효화됐다"고 설명했다.

    대림산업이 수주한 이 공사는 이란 아스파한 지역에 가동 중인 정유시설에 추가 설비를 설치하는 프로젝트로, 대림산업은 설계·자재 구매·시공·금융조달 주선 업무를 수행할 예정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스파한~아와즈 철도사업(53억달러)과 박티아리 수력발전소 프로젝트(19억달러) 등 사업도 손을 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관계자는 "현재 국제관계 여건이 우리가 노력한다고 되는 부분이 아니고, 공사를 진행하더라도 대금을 받을 수 있다는 보장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앞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달 이란 핵협정(JCPOA, 포괄적 공동행동계획) 탈퇴를 공식 선언했다. 미 정부는 이란 경제제재 해제기간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의회에 통보하겠다는 방침으로 알려졌다.

    이란을 '기회의 땅'으로 여겼던 건설업계는 당장 일감 확보에 빨간불이 켜졌다. 2016년 1월 경제제재 해제 조치로 이란이 해외건설의 주요 전략지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지만, 미국의 핵협정 탈퇴를 선언하면서 그 기대가 꺾이는 모습이다.

    일단 업계에서는 미국과 이란 간의 관계 개선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현지에서의 사업추진이 사실상 어렵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이란지역에서 국내 건설기업들이 신규수주한 계약액은 모두 52억달러로, 연간 해외건설 전체 계약액 290억달러의 18.0%를 차지한다. 단일 국가로는 최대 규모다.

    주요 사업으로는 △사우스파12 2단계 확장공사(현대엔지니어링·현대건설) 32억달러 △이스파한 정유공장 개선공사 19억달러(대림산업) △타브리즈 정유공장 현대화 사업(SK건설) 1조7000억원 등이다. 이 사업들은 모두 지난해 3월 본계약을 마무리 지었다.

    미국 핵협정 탈퇴로 사업 지연은 불가피하지만, 이에 따른 피해는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본계약이 체결되긴 했어도 아직 착공에 들어가진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착공에 들어가려면 본계약 체결 후 금융조달 계획 확정 등 파이낸싱 클로징(Financing Closing)까지 이뤄져야 한다.

    건설산업연구원 관계자는 "국내 건설사들은 이란 측과 계약만 맺어놓고 사실상 정지 상태"라며 "제재가 약화되지 않으면 분위기 반전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앞서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한 것에 대해 미국이 2010년 '포괄적 이란 제재법'으로 대응하면서 이란에 대한 국제 사회의 경제제재가 강화됐다. 이 법은 이란과 계속 거래하는 기업들에게 미국 내 모든 자산 거래를 막는 페널티를 가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로 인해 GS건설은 2009년 이란에서 수주한 약 2조6000억원 규모 LNG 플랜트 건설공사 프로젝트 두 건이 무산된 바 있다.

    건설사들은 사업이 잠정 보류됐지만, 큰 타격은 없을 것이라는 반응이다.

    현대ENG 측은 "금융조달 여부 등에 따라 양사 합의로 종료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고, 트럼프 대통령의 핵협정 파기 이후 벤딩(보류) 상태가 됐다"며 "금융계약이 이뤄지지 않아 착공을 못했다. 투입된 게 없는 만큼 피해도 없다"고 말했다.

    SK건설 관계자는 "기본계약만 체결하고 나서 파이낸싱을 하거나 이란 정부에 승인을 받기 전 단계"라며 "현 상황이 사실상 어렵지만, 추후에 정식 계약까지 가기 위해서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계약 해지 건을 차치하더라도 건설사들의 중동 수주액이 매년 떨어지고 있어 업계에서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올해 연간 중동시장 수주액이 100억달러 밑으로 내려갈 수도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그동안 중동 지역 연간 수주액은 △2010년 472억달러 △2011년 295억달러 △2012년 368억달러 등 400억달러 안팎을 유지했다. 그러다 2015년부터 급격히 하락해 지난해까지 100억달러 수준에 머물러 있다.

    대형건설 A사 관계자는 "건설사들이 중동에서 입찰경쟁하면서 저가수주로 손실을 많이 봤던 만큼 이제는 외형 성장보다는 건설사들이 보수적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유로화 약세로 스페인·영국·이탈리아 등 유럽 국가의 중동 진출이 늘어난 데다 엔저로 인한 일본 건설업 경쟁력 증가 등으로 중동 수주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유가하락과 정정불안 등 중동발 리스크에 대응하려면 신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박형원 해건협 아시아실장은 "최근 싱가포르가 경기 부양책으로 교통 인프라 발주를 늘리고, 베트남은 주택 부동산 경기가 좋아지는 등 발주 수요가 늘고 있다"며 "무엇보다 중동에 비해 유가 영향을 덜 받는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전 세계적인 프로젝트 발주가 단순도급형보다 민관협력개발사업으로 전환됨에 따라 금융경쟁력을 강화해 시장을 다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수출입은행의 커머셜론이나 G2G 차관 지원 등에서 선진국에 비해 자금조달이 약한 것도 문제"라며 "국책은행의 자본금을 확충하고 MDB(다자개발은행) 등과 협조해 코파이낸싱(Co-Financing)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대림산업은 이번 계약 해지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1분기 기준 수주잔액은 21조원으로 지난해 1분기 28조원에 비해 24.0% 감소했다. 이는 분할 이슈로 수주잔고가 크게 감소한 현대산업개발을 제외한 시공능력평가 상위 10개 건설사 중 최대 낙폭이다. 이 기간 건설사 9곳은 수주잔액이 평균 3.95% 줄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