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근무제-탄력근무제' 등 다양한 모델 적용 눈길대혼란 피했지만… '인건비', '공사기간' 등 수익 보전방안 안보여
  • ▲ 경북 포항시의 한 아파트 건설공사 현장. ⓒ성재용 기자
    ▲ 경북 포항시의 한 아파트 건설공사 현장. ⓒ성재용 기자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 일주일, 건설업계는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그동안 계획대로 업무를 이행하고 있다. 일부 건설사들은 이미 새로운 기준이 시행되기 전에 미리 단축근로에 들어가는 등 내부 혼란을 줄였다.

    다만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해 향후 국내 및 해외 현장의 돌발 상황, 비용 상승에 따른 경쟁력 저하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여전하다.

    9일 업계에 따르면 건설기업들은 이미 사무직 등을 중심으로 제도 도입 이전부터 유사한 수준의 근무를 유지해왔다는 점에서 큰 변화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달부터 주당 최대 근로시간이 62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됐지만, 실제 단축의 영향을 받는 것은 휴일·연장 근무 정도다.

    출퇴근 시간이 조정된 회사도 있다. 기업들은 근로자가 업무 관련 사유로 특정일의 출근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유연근무제'를 도입, 야근을 줄이고 법정 근로시간을 지키기 위한 방안을 마련한 상태다.

    호반건설의 경우 유연근무제를 시행한다. 부서별·개인별 직무에 맞게 오전 7시30분에서 오전 9시30분까지 자율적으로 출근시간을 정하고 지정 근무시간 이후에는 자유롭게 퇴근하는 방식이다. 현장은 탄력근로시간제, 시차 출퇴근제 등 다양한 모델을 적용하기로 했다.

    조기 출근·야근 등도 줄어들었다. 일부 회사는 아예 직원들이 퇴근을 독려하기 위해 아예 사무실에 있은 PC가 자동으로 종료되는 프로그램을 설치한 곳도 있다. 반대로 일찍 출근해봤자 업무를 볼 수 없게 됐다.

    또 '연장근로 사전 신청제', '야근 신고제' 등을 도입해 야근을 자제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경우에 따라 야근이 많은 팀은 원인 분석 멘토링을 제공하는 '업무 클리닉'을 운영 중이다.

    대형건설 A사 관계자는 "퇴근시간을 오후 6시에서 30분 앞당기고, 점심시간은 기존 11시30분~12시30분에서 오후 1시까지로 늘렸다"며 "근무 종료 30분 전부터 3회 알람이 울리고 오후 5시30분이 되면 사전 연장 근무 신청이 없는 PC는 자동으로 꺼지는 시스템을 적용했다"고 말했다.

    근무시간이 단축되면서 근태 관리는 상대적으로 엄격해졌다.

    대형건설 B사 관계자는 "이달부터 출퇴근 시간을 수기로 기록하고 있다"며 "기본 근로시간 내에 잔업까지 마무리하려면 업무집중도를 높이는 수밖에 없게 됐다"고 말했다.

    일선 현장은 근무스케쥴이 조정되는 등 일부 변화가 진행 중이다.

    탄력근무제를 도입한 곳이 많다. 이 제도는 유연근로제의 일종으로 2주~3개월에 걸친 노동시간 조정으로 법정 근로시간에 맞추는 것을 말한다.

    건설현장의 경우 공시기간이나 공종 등에 따른 인력 운용이 필요하고 기후·기상 등 외부 조건에도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업무가 몰리는 바쁜 시기에 노동시간을 늘리는 대신 한가한 시간에는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을 말한다.

    대우건설은 본사의 경우 업무 특성을 감안해 탄력근무제와 시차출근제를 실시하고 국내 현장은 2주 단위 탄력근로를 통해 주당 평균 52시간을 충족하기로 했다. 법정 근로시간과 연장 근로시간을 합한 주에 48시간을 일했으면, 다음 주에 56시간을 일하는 방식이다. 해외현장도 3개월 단위 탄력근로를 시행하고 휴가 주기는 11~12주 근무 후 2주 휴가로 정했다.

    SK건설은 현장과 본사 모두 주 5일제로 업무 특성·환경 등을 고려해 탄력근무제를 도입한다. 특히 현장은 시간·요일제 교대근무를 적용해 현장별 특성에 맞춘 근무계획을 수립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여름기간이 장마철·혹서기 등으로 업종 특성상 비수기인 점에서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가동되진 않았다고 설명했다.

    중견건설 C사 관계자는 "현장소장을 중심으로 공정 상황에 따라 자율적으로 근무스케쥴을 편성해 이행하도록 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 ▲ 서울 성북구의 한 소규모 건설공사 현장. ⓒ성재용 기자
    ▲ 서울 성북구의 한 소규모 건설공사 현장. ⓒ성재용 기자

    하지만 건설업계에서는 건설업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현 제도가 적지 않은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주당 근로시간 단축으로 건설현장의 열악한 근무환경은 개선될 전망이지만, 공기가 길어질수록 출혈이 큰 건설업은 사실상 추가비용 발생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중견건설 D사 관계자는 "인건비 증가는 물론,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곳의 경우에는 계약서 기간 내 공기를 맞춰야 하는 부담이 크다"며 "수많은 공사현장에서 인건비 등은 특히 예민한 문제"라고 말했다.

    건설산업연구원은 보고서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에 따른 건설정책 과제'를 통해 건설 현장의 법정 노동시간을 단축했을 때 발생하는 대표적 문제점으로 세 가지를 꼽았다.

    건설업은 수주산업으로 선 판매 후 생산의 특징을 지니고 있어 노동시간 단축에서 발생하는 비용 상승을 판매가격에 반영하기 어렵다. 또 계절적·기상적 요인으로 노동일수의 편차가 커 위반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공사 종류와 규모가 다른 여러 회사와 계약을 맺게 되는 만큼 현장에서 노동시간이 달라지면 혼란과 효율성 저하 등도 생겨날 수 있다.

    건산연이 37개 공사 현장의 공사원가 계산서를 바탕으로 노동시간 단축 영향을 분석한 결과 주 52시간제를 시행하면 총 공사비가 평균 4.3%에서 최대 14.5%까지 늘어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접노무비는 평균 8.9%·최대 25.7%, 간접노무비는 평균 12.3%·최대 35.0% 증가했다.

    대형건설 E사 관계자는 "품질 면에서 철저한 관리감독에 필요한 인력에 빈틈이 생기면 남은 관리자의 업무가 과중되면서 안전 사각지대가 커질 우려가 있다"며 "사람을 더 뽑고 싶어도 현장 지원자가 적을 뿐더러 언제 어떤 불상사가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무리해 관리직군을 채용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중견건설 F사 관계자는 "사전 작용을 통해 혼란을 줄일 수 있었다"면서도 "해외 및 국내 건설현장에서 장마 등 날씨나 돌발변수로 인핸 24시간 근무를 해야 하는 '돌관공사' 등의 돌발변수에 대해서는 대응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늘어나는 공사비를 계약에 반영하기도 어렵다. 건설공사는 통상 먼저 계약을 하고 나중에 계약 내용을 이행하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미 계약이 체결돼 공사가 진행 중인 사업장의 경우 계약서를 고쳐 계약액을 늘리거나 공사기간을 연장하는 것이 쉽지 않다,

    해외의 경우 수주경쟁력 저하가 크게 우려된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수주경쟁력이 떨어지면 올해도 300억달러 달성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해외건설협회 관계자는 "해외수주액이 계속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주 52시간 근무 적용으로 해외건설현장의 비용과 공사기간이 늘어날 것"이라며 "중국 등과의 수주경쟁에서 밀리게 되면 결과적으로 해외건설현장에서의 일자리가 줄어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근로자들도 불만이다. 근로시간 줄어드는 만큼 수입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돈을 쓸 시간은 많아졌지만, 쓸 돈이 없다는 하소연이 이어지고 있다.

    건산연에 따르면 주 52시간 근무제 시행으로 근로자 1인당 임금은 현재보다 9~15%가량 줄어들 것으로 조사됐다. 건설사가 단축된 근로시간을 임금에 그대로 반영할 경우 수도권 관리직 근로자 일당은 현재 하루 20만원 안팎에서 17만원 안팎으로 줄어든다. 기존 임금을 그대로 보전해줄 경우에는 반대로 건설사의 인건비 부담이 9~12% 가중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기업노동조합 관계자는 "겉으로는 8시간 일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현장에는 실질적은 근로시간 단축이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근로시간 단축으로 수입이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하는 만큼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