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3부동산대책' 여파로 고공행진 중이던 서울 집값이 잡혔다. 8주 연속 상승폭이 줄어들고 있으며 일선 중개업소에서도 당분간 집값이 하락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현 상황에다 불안한 증시, 기준금리 인상 여부, 국토교통부와 서울시간의 불협화음 등이 더해질 경우 부동산시장이 폭락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된다.
7일 한국감정원의 주간아파트 가격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29일 기준 서울 집값은 전주에 비해 0.02% 상승하면서 8주 연속 상승폭이 줄었다.
무엇보다 정부의 투기규제 타깃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 집값은 2주 연속 하락했다. 서초구는 -0.07%, 강남구 -0.06%, 송파구는 -0.05%를 기록했다.
개발호재로 상승세를 보였던 강북 14개구도 0.04%를 기록하면서 전주보다 상승폭이 줄었다. 용산구는 그동안 급등했던 단지를 중심으로 호가가 하락하고 매물이 누적되면서 -0.02%를 기록했다. 용산구 집값이 하락한 것은 2015년 1월 둘째 주 이후 약 3년 10개월 만이다.
감정원 주택통계부 측은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단지나 개발호재 지역은 상승세를 이어갔으나 9·13대책 영향 등으로 8주 연속 상승폭이 축소됐다"고 설명했다.
KB국민은행의 부동산 플랫폼 'KB부동산 리브온'이 발표한 지난달 서울지역 주택 매매가격 전망지수는 97.2로, 9월 133.0에 비해 35.8p 하락했다. 이 수치는 올해 5월 95.9를 기록한 이후 가장 낮은 것이다.
이 지수는 부동산 중개업소의 향후 3개월 이내 집값 전망을 수치화한 것으로, 100을 기준으로 100 이상이면 상승, 100 미만이면 하락 의견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선 중개업소에서도 당분간 집값이 하락할 것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올해 지수는 양도소득세 중과가 시행된 4월 95.1로 떨어지면서 100 이하로 내려갔다가 집값이 강세로 돌아선 지난 7월 105.3을 기록한 뒤 3개월 연속 100을 웃돌았다. 하지만 9·13대책 이후 거래가 급감하고 일부 지역에서는 급매물이 나오면서 전망지수도 100 이하로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박원갑 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수석전문위원은 "전망지수 하락은 세금과 대출규제 등 전방위 압박에 금리인상 가능성까지 나오면서 매수자들이 관망세로 돌아선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당분간 매수자들의 관망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
업계 일각에서는 불안한 국내 증시,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 국토부와 서울시 간의 갈등 등으로 안정화를 넘어 폭락을 점치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코스피 지수는 13.4% 급락했다. 지난달 29일에는 전날보다 1.53% 급락한 1996.05로 마감하면서 종가 기준 22개월 만에 2000선을 하회했다.
코스닥도 같은 기간 20% 이상 하락해 600선 초반까지 떨어졌다. 한 달 새 국내 코스피와 코스닥시장의 시가총액은 260조원가량 증발했다. 코스피는 2000선이 붕괴된 이후 30일 곧바로 2000선을 회복했지만 등락을 거듭할 뿐 상승세를 보이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국내 증시의 이 같은 급락세는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나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와 비교되고 있다. 이달 코스피 하락률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0월(-23.13%) 이후 월간 기준으로 가장 높다.
이 같은 증시 불안은 부동산시장에도 악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증시는 부동산시장을 예측하는 바로미터 중 하나로 꼽히기 때문이다. 역대 코스피 지수 등락과 집값 변화를 살펴보면 시차를 두고 비슷한 궤적을 보여 왔음을 알 수 있다. 부동산이 자산 특성상 처분과 시세 반영 등에 시차가 있는 만큼 부동산시장은 주식시장에 후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실제 2007~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부동산시장은 금융시장에 이어 동반 하락하면서 수년간 침체의 늪에 허덕인 바 있다. 금융위기 당시 거침없이 치솟던 국내 증시는 2007년 말을 기점으로 하락세에 접어들어 2008년 초반 잠시 반등을 도모하다 이내 낙폭을 키우면서 급락했다.
당시 부동산시장은 2005년부터 약 4년간 상승세를 이어가며 '불패신화'를 써내려가고 있었다. 서울 등 전국 집값은 2008년 9월까지 상승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금융위기의 정점인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 파산(9월)' 사태 이후로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2008년 10월부터 약 4년간 하락장세가 이어졌고, 매수심리 위축으로 집값이 하락하면서 역전세난·하우스푸어·깡통전세 등 부동산 버블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다.
아직까지는 이번 증시 폭락이 금융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는 가능성이 높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예전부터 서울 아파트 값과 코스피 간의 상관관계가 높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사전에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정영식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국제금융팀장은 "부동산 버블 확대는 금융위기 가능성을 증대시키고 외환위기나 재정위기 인플레이션 위기보다는 은행 위기나 주식시장 붕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며 "당장 금융위기 가능성은 없지만, 글로벌 부동산시장의 동반 위축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변수는 금리인상 여부다. 한국은행은 오는 30일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결정한다. 지난달 11개월째 연 1.5%로 동결했지만 금통위원 중 금리인상을 주장한 소수의견이 2명으로 늘어난 만큼 다음 달에는 인상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고 있다.
금리인상이 바로 집값 하락으로 연결될 정도로 상관관계가 높지 않지만 그동안 서울 집값을 끌어올린 요인 중 하나가 풍부한 시중 유동성이었던 데다가 최근 경기도 부진한 만큼 금리인상에 따른 심리 위축은 불가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장재현 리얼투데이 본부장은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금리 앞자리가 기존 3%대에서 4%대로 바뀔 경우 심리적 부담감이 극대화될 것"이라며 "이런 부담감으로 집을 사기 위한 대출이 쉽지는 않을 전망"이라고 판단했다.
지난 8월 용산과 여의도 통개발 발언으로 서울 집값 상승에 불을 지핀 박원순 서울시장의 독자 행보 가능성도 간과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선거직 지방자치단체장인 박 시장의 경우 개발이익을 기대하는 유권자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고심이 '통개발' 발언으로 이어졌던 만큼 언제든 다시 개발사업을 재점화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 경우 서울 집값 잡기에 올인하고 있는 김현미 국토부 장관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처사가 되고 만다. 이들은 앞서 대표적인 집값 잡기 정책인 그린벨트 해제를 통한 수도권 주택공급부터 땅값만 10조원이 넘는 서울 삼성동 현대차그룹 사옥(글로벌비즈니스센터, GBC) 프로젝트 등 주요 부동산 정책에서 여러 차례 이견을 보인 바 있다.
지난 9일 김현미 장관이 진행한 용산공원 투어에서 김 장관의 모두발언 후 뒤늦게 참석했다가 첫 식순 뒤 행사장을 빠져나간 박 시장의 행보도 이를 잘 보여준다.
국회 한 관계자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현 부동산시장은 최근 정부정책에 힘입어 폭락도 폭등도 아닌 안정세로 가고 있는 중"이라며 "하지만 이후 적기의 기준금리 방향 결정과 서울시와의 정책공조가 이 같은 안정추세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