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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막바지 수주 열기가 달아오를 것 같았던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 시장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지방은 물론 건설사들이 앞다퉈 뛰어들었던 강남 재건축마저 시공사 입찰이 불발되는 등 건설사들이 정비사업 수주전 참여를 지양하는 모양새다. 정부의 재건축시장에 대한 규제로 선뜻 나서기 힘든 것으로 풀이된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서울 강남구 대치동 구마을3지구 재건축 조합이 마감한 시공사 입찰에는 롯데건설만 응찰해 유찰됐다. 이곳은 강남권에서도 교육환경이 우수한 대치동 학원가에 인접한 '알짜' 사업지로 통한다. 시공사 현장설명회 당시에는 포스코건설, GS건설, 대우건설, SK건설 등 메이저 건설사들이 참여해 눈독을 들였지만 입찰로 이어지진 않았다.
당초 조합은 연내 시공사 선정을 완료할 계획이었으나 결국 내년으로 넘기게 됐다. 조합은 오는 15일 두 번째 현장 설명회를 열고 다음달 31일 시공사 입찰을 마감할 계획이다.
지난달 입찰이 마감된 서울 강동구 천호3구역 재개발 사업도 대림산업만 응찰하면서 유찰됐다.
경기 평택시 합정주공 835번지 일대 재건축 조합도 유효경쟁 조건이 성립되지 않았다. 이곳은 평택역과 버스터미널을 도보로 이용할 수 있는 입지로, 신축가구 수가 1944가구에 달하는 대형 사업지다. 그러나 출사표를 제출한 곳은 대림산업·삼호 컨소시엄이 유일했다.
입찰이 불발되는 것은 지방도 마찬가지다. 강원 강릉시 교항주공아파트 재건축 조합은 두 번째 시공사 입찰을 진행했지만 응찰하는 건설사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조합은 수의계약을 전환해 시공사를 직접 찾을 계획이다.
경남 창원시 대원1구역 재개발 조합은 입찰을 세 번이나 반복했지만 현대건설을 제외한 나머지 경쟁사가 끝내 나타나지 않아 수의계약을 통해 시공사를 선정하기로 결정했다.
뿐만 아니라 올 들어 시공사 선정을 완료한 천호4구역, 관악구 봉천 4-1-2구역, 동작구 노량진2구역 등도 입찰한 건설사가 1곳에 그치면서 조합원 찬반 투표로 시공사를 뽑은 바 있다.
대형건설 A사 관계자는 "신규물량이 줄어드는 상황이긴 하지만 지난해처럼 출혈경쟁을 감수하면서까지 수주전을 벌일만한 사업지도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시공사 입찰이 성사되지 않을 경우 시공사 선정절차가 내년으로 밀려나는 사업지도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
건설사들의 소극적인 자세는 최근 강화된 재건축·재개발 사업 시공사 선정과 관련한 비리 제재를 강화한 것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비사업 시공사 선정과 관련한 비리에 대한 처분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 개정안은 지난달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개정안을 보면 앞으로 재건축·재개발 사업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건설업자가 금품 등을 제공할 경우 시공권이 박탈되거나 해당 시·도에서 진행되는 정비사업에서 2년간 입찰이 제한되고 공사비의 20%까지 과징금으로 부과된다.
건설사가 금품과 향응을 제공한 경우뿐만 아니라 건설사와 계약한 홍보업체가 금품 등을 살포했을 때도 건설사가 동일한 책임을 지게 된다. 앞으로는 건설사가 홍보업체에 대한 관리·감독 의무도 갖게 되는 것이다.
주택건설협회 관계자는 "상당수 건설사들이 수주 비리 혐의를 받고 있는 만큼 정부도 건설사의 불법 수주행태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에 시범케이스로 걸리지 않기 위해 경쟁을 꺼리고 있다"며 "건설사뿐만 아니라 홍보업체의 수주활동도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몸을 사리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건설사들의 수주 실적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불확실한 해외건설, 줄어든 SOC 발주 등으로 먹거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빈사 상태로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대형사들의 정비사업 수주실적이 지난해에 비해 10조원 이상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대건설은 올 들어 대치쌍용 2차 등 5815억원어치를 수주했다. 이는 4조6000억원에 달했던 지난해 수주액의 12%에 불과했다.
대우건설은 지난해 공사비 1조375억원 규모의 부산 남구 감만1구역 재개발사업을 비롯해 경기 과천주공1단지 재건축(4145억원) 등 총 9개 현장에서 2조8744억원 규모의 시공권을 따냈다. 하지만 올해는 서울 영등포구 신길10구역 등 3개 현장에서 5259억원을 수주하는데 머물렀다.
GS건설은 올해 3개 현장, 9187억원을 수주하는데 그쳤고 지난해 조 단위 수주액을 기록했던 롯데건설, HDC현대산업개발, SK건설의 경우 올해 수주액이 지난해의 50~60% 수준에 그쳤다.
대형건설 B사 관계자는 "올해 정부의 강력한 규제로 재건축시장 분위기가 급격히 악화되면서 예상했던 것보다 대폭 줄어든 상황이고 목표치에도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연말 시공사 선정을 앞둔 일부 사업지를 두고 실적을 만회하려는 건설사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