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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회계의 모호한 규정과 해석에 대한 책임을 기업에만 전적으로 전가하게 되면, 기업 경영은 더욱 위축되고 불확실성이 가중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바이오 기업의 연구·개발(R&D)과 투자를 위축시키고 증시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를 지켜보며 한 바이오 업체 관계자가 한숨 섞인 말을 내뱉었다.
지난 14일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이하 증선위)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가 고의였다는 최종결론을 내리자, 바이오 업계의 고심도 깊어지고 있다.
그간 금융당국의 회계감리 이슈로 홍역을 치러왔던 바이오 업계는 이번 증선위 최종결론에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있다. 회계처리의 기준과 해석이 바뀔 때마다 소급 적용하게 되면 바이오 산업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즉각 증선위 결정에 회계 정당성을 입증하겠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지난 15일에는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이 전사 임직원들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이 같은 뜻을 재차 밝히면서 사태는 장기전에 돌입할 기세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측은 그간 국제회계기준인 IFRS에 따라 회계처리를 적법하게 해왔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2016년 한국공인회계사회 위탁감리 외에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까지 참석한 질의회신, 연석회의 등으로부터 공식적으로 문제없다는 판단을 이미 받은 바 있다. 다수의 회계 전문가들에게 회계처리가 적법하다는 의견도 받았다.
이는 금감원에서도 인정한 바 있다. 금감원은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관련된 참여연대의 첫 질의서에 대해 ‘한국공인회계사회의 감리결과,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다’고 답한 바 있다. 그러다 의혹 제기가 계속 이어지자 금감원은 지난 5월 직접 감리를 실시한 결과 분식회계 혐의를 찾았다고 태도를 바꿨다.
IFRS는 원칙 내에서 기업과 회계 전문가의 회계처리 판단에 대한 재량과 책임을 보장하는 회계처리 방식이다. 다양한 산업계의 특성에 따른 회계처리를 존중하기 위해 지난 2011년 국내에 전면 도입됐다.그러나 증선위의 이번 결론을 통해 금융당국이 여전히 기업·전문가의 자율적인 회계처리 판단을 존중하기보단 사후적 규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금융당국의 오락가락한 잣대에 회계법인들도 급히 업계 관계자들끼리 IFRS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자리를 마련하는 등 혼란에 빠졌다. 이번 증선위 결정으로 삼정회계법인과 안진회계법인도 징계를 받았기 때문이다. 회계사들 사이에선 IFRS 무용론까지 제기되는 마당이다.
회계 전문가인 회계사들조차 IFRS 해석을 둘러싸고 상담하고, 업계 고충을 나눌 정도면 관련 전문가가 아닌 업계관계자들의 혼란은 말할 것도 없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같은 대기업에서 내로라하는 회계법인을 모아 내놓은 결론까지 철퇴를 맞는다면 바이오벤처 등 소규모 바이오 업체에선 회계 리스크에 집중하느라 R&D투자에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자 일각에선 정권에 따라 금융당국의 잣대가 달라지는 것이냐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금융당국 책임론도 대두하는 모양새다.
바이오 산업은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최근 고용 한파 속에서도 꾸준히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제약·바이오업계는 최근 10년간 매년 평균 2.7%씩 고용을 늘려왔다. 이는 제조업 평균인 1.3%의 2배에 이른다.
현재 많은 바이오 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점유하기 위해 총성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자칫하면 대한민국의 신성장동력인 바이오산업이 글로벌 무대에 진출하려는 시점에 앞서 날개가 꺾이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