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컨슈머가 선의의 소비자 권리 막는다"제도적인 대책 필요하지만 갈등 예상
  • ▲ 청와대 국민청원 시스템 화면 캡처.
    ▲ 청와대 국민청원 시스템 화면 캡처.

    '블랙컨슈머'와 정당한 소비자 권리 사이의 충돌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식품업계의 영원한 '숙제'라 불리는 이물질 논란이 최근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경우 제조업체는 잘못이 없다고 맞서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정당한 불만 제기를 하고도 원인을 찾지 못하면 블랙컨슈머로 몰릴 수 있어 관련 대책이 시급하다.

    청와대 국민청원 시스템에는 27일 기준 '식품'으로 검색한 결과 1310건의 민원이 올라있는 상황이다. 다양한 내용이 포함돼있지만 이물질이 나왔다는 청원은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 게시글의 경우 업체명과 함께 이물질이 나온 경위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앞서 최근 남양유업은 이물질 논란이 불거지자, 공정상 이물질 혼입이 불가능하다고 반박했다. 외부기관의 조사 결과는 물론, 통상 영업기밀로 여겨져온 공정 과정을 전면 공개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했다. 결국 남양유업의 귀책사유는 밝혀지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소비자가 '자작극'을 벌였을 가능성도 제기됐다. 이른바 블랙컨슈머(일부러 기업에 불만을 제기해 이익을 얻어내는 소비자를 이르는 말)가 아니냐는 주장까지 나왔다. 하지만 소비자의 고의성을 입증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진실은 누구도 알 수 없게 된 상황이다.

    주부 윤모씨(55)는 "식품 이물질 논란이 커지면 제조사는 매번 공정상 이물질이 들어갈 수 없다고만 하는데, 그럼 소비자가 어디서 이물질이 혼입됐는지까지 맞춰서 증명해야한다는 소리냐"며 "제조사가 잘못이 없다고 발뺌하면 정당하게 문제제기를 하고도 블랙컨슈머로 몰릴 수 있는 억울한 상황이 우려된다"고 전했다.

    직장인 한모씨(29)는 "국내 대형 식품업체에서 판매하는 면제품을 샀는데 안에서 플라스틱 조각이 나왔고, 이미 뜯은 상황이긴 했지만 고객센터에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했더니 거듭 사과하고 집으로 이 업체 제품 한박스를 보내줬다"며 "맹세코 거짓말이 아니었고 정말 플라스틱이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식품업체 입장에서 뜯어진 제품에서 플라스틱이 나왔다는 소리를 마냥 믿어야 하는게 답답하긴 하겠다 싶었다"고 전했다.

    식품 이물질 논란이 발생하면 대부분의 경우 소비자들은 해당 기업 고객센터에 전화하게 된다. 식품업체 고객센터가 매일 '전쟁터'인 이유다.

    한 식품업체 고객센터에서 일한 적 있는 최모씨(30)는 "하루에도 수십건씩 제품에서 뭔가 나왔다고 하는 고객 전화가 걸려온다"며 "매뉴얼 상으로는 일단 사과하고 제품을 그대로 두면 가서 확인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안내했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 공장에서 들어갈 수가 없는 이물질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설명하면 고객이 화를 내기 때문에 일이 커지면 좋을게 없어 최대한 원하는 요구를 들어줄 수 있도록 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업계 안팎에서는 식품 이물질 논란이 블랙컨슈머와 선의의 소비자를 구분할 수 없게 만들고, 여론에 있어 상대적으로 약자인 업체 입장에서 무리한 요구라도 들어줘야 하기 때문에 제도적인 보호망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귀책사유가 밝혀지기 전에 언론이나 온라인 커뮤니티 등 파급력이 높은 매체를 통해 전달될 경우 왜곡이 쉽고 제조사의 문제로만 비춰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경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내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업체 입장에서는 이물질이 나왔다는 불만을 접수하게 되면 매번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블랙컨슈머의 경우, 어디까지 업체가 요구를 들어줘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렵고 귀책 사유를 밝히기 위한 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는 소비자에게는 아무 보상도 해줄 수 없지만 일단 여론이 집중되면 이미지 타격을 입는 것은 업체이기 때문에 일을 키우지 않는데 급급한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식품업체 관계자는 "이물질 논란이 발생하면 식품당국에서 조사를 진행하고, 문제가 발생할 경우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내리도록 하고 있지만 현재 그 시간을 기다려주지 않고 사회적으로 관심이 집중되면 일단 그 브랜드, 업체는 엄청난 이미지 하락을 겪게 된다"며 "나중에 문제가 없다고 밝혀져도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 업체의 손해는 어디서도 보상받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제도적으로 식품업체를 무분별한 이물질 논란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다만 선의의 소비자들의 권리가 축소될 수 있다는 반박 또한 맞서고 있어 이와 관련한 갈등도 예상된다.

    관련업계 관계자는 "블랙컨슈머가 많아지면서 선의의 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문제"라며 "이물질 논란이 일단 발생하면 식품업체가 가장 불리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이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를 만드는 것은 기업에 비해 약한 개인, 소비자 권리를 저해할 수 있는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우려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