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간설정위 순차배제 방식도 허점뒷북 달래기 '싸늘'
  • ▲ 지난달 7일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초안 발표.ⓒ연합뉴스
    ▲ 지난달 7일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 초안 발표.ⓒ연합뉴스
    정부가 반복되는 소모적 논쟁을 막고, 사실상 최저임금을 정부가 결정한다는 논란을 불식하고자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이원화했지만, 논란이 사그라들지는 의문이다.

    최저임금위원회를 나누면서 상대적으로 역할이 중요해진 전문가 '구간설정위원회'와 국회에 추천권을 나눠준 '결정위원회' 모두 정부의 입김이 작용할 여지가 남아 있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수준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일각에선 정부가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려 사실상 문재인 대통령의 '2020년 1만원' 대선공약을 조기 달성하자 뒤늦은 달래기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고용노동부는 27일 최저임금 결정체계 개편안을 확정, 발표했다. 현행 최저임금위원회를 전문가가 참여해 심의구간을 잡는 구간설정위원회와 노·사·공익위원이 심의구간 안에서 최저임금을 정하는 결정위원회로 이원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바뀐 결정체계에서도 정부의 입김은 여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구간설정위원회의 경우 노·사·정이 각 5명씩 총 15명을 추천하면 노사가 순서를 정해 차례대로 각 3명을 배제하는 방식을 취하기로 했다. 노사는 상대방이 추천한 전문가 중 어느 한쪽으로의 의견이 강해 불리하다고 생각하는 전문가를 배제할 수 있다. 문제는 제한된 전문가 그룹에서 노사뿐 아니라 정부도 추천권을 행사한다는 점이다. 가령 진보정권에서 정부가 친노동계 성향의 전문가를 추천하면 사용자 측으로선 순차 배제 방식을 도입해도 걸러내야 할 전문가가 사실상 노동계의 2배가 되는 셈이다.

    이는 노·사·공익위원이 각 7명씩 추천해 총 21명으로 구성하는 결정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캐스팅보트(결정표)를 쥔 공익위원의 추천권을 국회에 나눠주고, 추천의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게 국회 4명, 정부 3명으로 국회 추천 몫을 확대했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국회가 공익위원 4명을 추천해도 여야가 대결 구도에서 추천권을 나눠 갖게 될 경우 여당과 정부 추천 몫을 더하면 결국 우위를 지킬 수 있다. 표결로 최저임금을 결정하면 여전히 정부 측 의중이 결과에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일각에선 정부가 뒤늦은 달래기에 나섰다는 분석도 나온다. 소상공인업계는 지난해 16.4%에 이어 올해도 10.9%로 두 자릿수 인상률을 유지하면서 주휴수당을 포함하면 올해 실질 최저임금은 8350원이 아닌 1만20원이 됐다고 본다. 대선공약보다 1년 앞당겨 실질 최저임금이 1만원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노동부는 이날 결정체계 개편과 관련해 "우리 사회와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최저임금이 국민적 공감대를 토대로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결정될 수 있게 전문가, 이해관계자는 물론 일반 국민들 의견도 수렴했다"고 강조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정부가 그동안 사회·경제에 큰 영향을 끼칠 최저임금을 국민적 공감대 없이 덜컥 올렸다는 것을 시인한 셈이라고 질타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경영계 관계자는 "구간설정위원회가 합리적으로 심의구간을 제시하면 노사 간 초반 눈치작전이 불필요해 논의 속도는 빨라질 수 있다"면서 "다만 독립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가 새 제도 정착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