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회의 앞둔 상법 개정안, 이사·감사 자격요건 대폭 강화상위법 있는데도 시행령 개정 꼼수… 기업 옥죄기 논란 가열부족한 사외이사 인력풀 더욱 좁아질 듯… 관료 출신 장악 우려
  • 정부가 추진 중인 상법 시행령 개정안이 국무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다.

    상장사 사외이사 임기를 최장 6년으로 제한하고, 다른 계열사 사외이사로 옮겨가더라도 총 9년까지만 재직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자격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이 골자다.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공정경제 확립을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사실상 정부가 민간기업 이사회까지 들여다보며 관리·감독하겠다는 뜻이어서 재계의 반발이 거세다.

    법무부는 지난달 24일 상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상정된 시행령은 다음달 4일까지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친 뒤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를 통과하면 시행된다.

    개정안은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 취임 후 처음 발표한 법안이다. 사외이사 최대 임기를 제한하는 것 외에도 퇴직임원이 사외이사로 옮겨가지 못하는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렸다. 또 이사나 감사 후보자의 범죄경력이나 세금 체납 여부 등 개인정보를 공개해 주총에 제출하도록 법을 강화했다.
  • ▲ 지난 8일 국무회의에 참석한 조국 전 장관ⓒ연합뉴스
    ▲ 지난 8일 국무회의에 참석한 조국 전 장관ⓒ연합뉴스
    지나친 경영 간섭, 한경연 "전문성 오히려 떨어질 것"

    이 같은 정부 방침에 재계는 반발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은 "자기자본을 운영해 이익을 실현하고 주주에게 배당하는 일반기업에 금융사만큼 엄격한 자격요건을 요구하고 있다"며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기업 경영에 지나친 간섭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경연은 상법 개정안 시행령 반대의견을 지난 22일 법무부와 금융위원회에 전달했다.

    한경연은 기업에 부과되는 공시 의무와 강화되는 규제는 중요 안건을 의결하는 이사회의 전문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가뜩이나 제한된 사외이사 인력풀을 좁혀 이사회 공백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다.

    현재 금융사를 제외한 코스피·코스닥 상장사는 2천여개. 사외이사는 4천여명에 이른다.

    국회 정무위에 따르면 개정안이 시행되면 임기가 만료돼 당장 교체해야 하는 사외이사가 20%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장사 곳곳에서 대규모 이사회 공백이 예측되면서 기업들은 비상이 걸렸다. 2017년 폐지된 섀도보팅(의결권 대리행사)으로 주총 안건 부결 사태를 겪은 상황이라 정부 개정안 시행의 충격은 더욱 심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상장회사협의에 따르면 상장사가 주총에서 안건 부결 사태를 겪은 곳은 지난해 76곳에서 올해 188곳으로 크게 늘었다. 상장회사협의회는 상법 개정안이 본격 시행되는 내년에는 250곳 이상 주총에서 안건 부결이 현실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 ▲ 지난달 5일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왼쪽부터)와 조정식 정책위의장,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정경제 하위법령 개정방안 당정협의에서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 지난달 5일 더불어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왼쪽부터)와 조정식 정책위의장,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정경제 하위법령 개정방안 당정협의에서 대화하고 있다.ⓒ연합뉴스
    공직자 수준 개인정보공개… 관료 출신 사기업 장악 우려

    사외이사 임기 제한보다 더 우려되는 점은 이사나 감사 후보자의 개인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대목이다.

    개정안은 이사·감사 후보자의 세금체납부터 범죄기록까지 세부 경력사항을 공개하도록 하는데, 이는 금융사 이사회에 적용하는 규제를 민간기업까지 확대하는 것이다. 그동안은 후보자의 직업과 간단한 약력만 서술하면 됐다.

    한경연은 "결국 상장사는 후보자 개인 신상정보공개에 대한 책임과 미이행시 공시위반 처벌 부담까지 이중고에 시달려야 한다"며 "개인정보 유출에 따른 피해도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이는 공직자 후보에게 요구되는 수준의 정보공개여서 개인 기본권 침해 논란도 예상된다.

    한경연은 "개인 신상정보 보호가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는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서 기업 임원 후보자들의 개인 신상을 주주들에게 공시하도록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국민 기본권 침해에 해당할 소지가 있는 만큼 시행령이 아닌 국회에서 상위법 개정 논의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화된 사외이사 자격 규제는 결국 관료 출신 인사들이 사기업 이사회를 장악하는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상대적으로 개인정보 공개가 용이한 관료 출신들이 대거 진출할 것이라는 얘기다.

    때문에 정부가 상법 개정안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국회 정무위 한 관계자는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개정안은 조국 전 장관이 밀어붙인 시행령"이라며 "조 전 장관이 사퇴한 상황에서 국무회의까지 일사천리 통과될 지는 불확실하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