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세 이상 사무직 대상정유업 침체에 코로나19 여파까지 '겹악재'
  • ▲ 에쓰오일. ⓒ연합뉴스
    ▲ 에쓰오일. ⓒ연합뉴스

    에쓰오일이 1976년 창사 이래 첫 희망퇴직을 검토한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에쓰오일은 최근 부장급 직원들을 대상으로 '신인사제도(New HR) 설명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에쓰오일은 효율적인 인력관리를 위해 회사 평가방법과 보상체계를 바꿀 계획을 밝혔다.

    이 설명회가 주목받은 것은 설명회 말미에 꺼낸 명예퇴직 얘기 때문이었다. 에쓰오일 측은 인력효율화의 한 방편으로 명예퇴직을 검토 중이라는 사실을 참석자들에게 공개했다.

    에쓰오일은 △50~54세의 경우 60개월에 해당하는 금액을 지급하고 △55~56세에 50개월 △57세에 40개월 △58세에 20개월 치의 기본급 지급을 검토 중이다. 자녀 학자금도 일시금으로 5000만원 한도 내에서 지급할 계획도 밝혔다. 에쓰오일 내 부장급 직원은 100여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에쓰오일은 지난 18일 차장급 이하 일반사원을 대상으로도 인사설명회를 열었지만, 희망퇴직과 관련된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에쓰오일 관계자는 "회사가 희망퇴직을 검토 중인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명예퇴직 설명회가 아니었고, 인사제도와 관련한 설명회였다. 시기와 범위, 방법 등 확정된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정유업계에서는 에쓰오일의 희망퇴직 검토를 충격적인 소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높은 연봉과 사실상 정년이 보장되는 인사구조에 대졸 취업자들 사이에서 에쓰오일은 '꿈의 직장'으로 꼽혀왔기 때문이다.

    지난해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시가총액 상위 100개 기업 중 사업보고서를 공시하는 80개사를 분석한 결과 에쓰오일의 직원 평균급여는 1억3700만원(2018년 기준)으로 가장 높았다. 뿐만 아니라 1년 영업이익이 2238억달러에 달하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석유회사 아람코가 최대주주다.

    에쓰오일의 희망퇴직 검토는 지난해 정유사 수익의 핵심지표인 정제마진이 급락하면서 실적이 악화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에쓰오일은 지난해 연결 기준 영업이익 4492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대비 29.8% 감소한 수치다. 정제마진 악화 여파로 정유4사 모두 실적이 부진한 가운데 가장 낮은 실적을 기록했다. 매출 대부분을 차지하는 정유사업 부문에서는 253억원의 적자를 내기도 했다.

    정유업계에서는 최근 중국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중국 내 수요와 항공유 수요가 줄어 실적이 더 악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게다가 최근 석유화학 분야에 5조원가량의 대규모 투자를 단행, 타격이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한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인한 중국의 경기 침체는 석유제품 수요 감소로 이어진다"며 "정유 및 석유화학 업체들의 실적이 급감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50대 직원이 많은 에쓰오일의 인력구조도 원인이 됐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에쓰오일의 평균 근속연수는 17년으로, 국내 정유 4사 중 SK에너지(20.8년) 다음으로 길다. GS칼텍스의 평균 근속연수는 14.5년, 현대오일뱅크는 13.8년이다.

    지난해 후세인 알 카나티 CEO가 취임한 뒤 안정성보다는 수익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회사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에쓰오일은 지난해 말부터 일부 부서를 통폐합하고 팀장급 자리를 줄이는 조직개편을 단행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고참 팀장들이 보직을 내려놓기도 해 사내 분위기가 뒤숭숭한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에서는 코로나19 악재가 본격적인 국내 기업 구조조정의 시발탄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 롯데쇼핑도 전체 오프라인 매장의 약 30% 수준인 200여개를 정리하겠다고 밝혔다. 이마트는 59개 점포를 폐점하는 한편, 인력 재편을 진행 중이다.

    두산중공업은 다음달 4일까지 2주간 기술직·사무직을 포함한 만 45세(1975년生) 이상 직원 2000여명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는다. LG유플러스도 최근 명예직 시행안을 만들어 노조와 협의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에쓰오일은 1997년 IMF 당시 퇴직희망자 200여명을 분류해 구조조정을 진행하다 무산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