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발표후 악용사례 고개 …혈세로 임대인 수입만 보존할 수도대통령 지시에 즉흥 정책 일사천리, "재원 얼마들지 예측 힘들어"임대사업 대형법인 오히려 이익 얻을수도… 절박한 취약계층에 혜택가야
  • ▲ 한산한 명동 거리. 1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예술극장 앞 한적한 거리에서 관광 안내 직원들이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연합뉴스
    ▲ 한산한 명동 거리. 1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 예술극장 앞 한적한 거리에서 관광 안내 직원들이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연합뉴스
    경기도 화성시 동탄신도시에서 작은 카페를 운영하는 A씨(36)는 최근 임대인으로부터 월세를 깎아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3월부터 2달간 250만원인 월세를 150만원으로 깎아줄테니 자신의 임대소득 신고는 100만원으로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장사가 안돼 폐업을 고려했던 A씨는 고마운 마음으로 승락했다.

    정부가 장려하는 착한 임대료 운동의 일환으로만 생각했던 A씨는 이를 연결해준 부동산중개사의 뒷얘기를 듣고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정부가 임대료 인하분의 절반을 부담하겠다는 정책을 추진하자 이를 악용한 임대인들의 꼼수에 당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A씨의 임대인 B씨(58)는 같은 크기(57㎡)의 상가 3채를 임대하는 임대사업자다. 월세를 100만원 깎아주고 150만원을 깎아준 것처럼 신고하면 정부에서 소득세 감면 등을 통해 50%(75만원)를 받을 수 있다. 실제로 손해 본 금액은 25만원에 불과한 셈이다.

    여기에 연간 9000만원에 달하는 임대소득이 8400만원으로 떨어지면서 소득세율 자체가 달라진다. 9000만원 소득을 올릴때는 35%의 소득세를 내야 했지만 착한 임대료 운동에 동참한 뒤에는 24%만 내면 된다. 또 소득을 기준으로 하는 건강보험료나 그외 부가세까지 포함하면 월세를 깎아주기 전과 수입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해당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정부 발표이후 B씨와 같은 문의가 많이 오고 있다"며 "선의의 마음으로 문의했던 임대인들도 실제 수입은 큰 차이가 없게 할 수 있다는 말에 임대료 인하를 많이 결정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코로나19로 워낙 경기가 불황이다 보니 상가 공실률이 계속 높아지고 있다"며 "임대인 입장에선 상가를 비워두는 것보단 임대료를 낮춰서라도 임대를 유지하는게 더 나은 결정"이라고 했다.
  •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코로나19 파급영향 최소화 등 민생경제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코로나19 파급영향 최소화 등 민생경제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정부가 코로나19에 따른 소상공인·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책으로 발표한 착한임대료 정책의 허점이 드러나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28일 발표한 '민생·경제 종합대책'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1~6월)중 자발적으로 임대료를 인하하는 임대인에게 정부가 인하분의 절반을 분담하고 추가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정부 분담은 임대인의 소득·법인세에서 세액 공제로 제공하고 임대료를 인하한 점포가 다수인 전통시장에는 노후전선 정비, 스프링쿨러 설치 등 화재안전패키지도 지원한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착한 임대인 운동은 어려울때 마다 작은 힘이라도 보태 함께 극복해 온 우리 사회의 진면목"이라며 "정부도 이런 따뜻한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도록 이런 대책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홍 부총리는 "임대료 전체 규모와 실제 인하가 얼마나 이뤄질지에 대한 통계가 없는 만큼 어느정도의 재원이 들 지는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면서도 "정부 부담액이 얼마가 되든지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덜어준다는 차원에서 일단 지원해드리기로 결정했다"고 했다.

    전주시 임대료 인하 운동을 접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진 착한임대료는 즉흥적으로 입안된 정책인 탓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먼저 B씨와 같은 임대인의 리베이트(rebate) 요구 가능성이다. 임대료 100만원을 깎아준 것처럼 꾸미고 임차인에게 50만원을 돌려받는다면 정부 보존금 50만원을 합쳐 임대인은 손실이 없고, 임차인도 50만원 이익을 얻게되는 '윈윈 전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정부만 50만원의 세수가 감소하게 된다.

    정부는 올해 법인세수 예상치를 지난해 79조3000억원에서 64조4000억원으로 무려 15조원을 낮췄다. 법인세는 전년도 기업 영업실적을 기준으로 하는데 주요 세원인 반도체 업종이 지난해 큰 불황을 겪었기 때문이다. 막무가내 세금 감면을 내세운 정책이 세수결손과 재정적자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 ▲ 착한임대료 정책은 전주 임대료 인하 소식을 접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졌다. 문 대통령이 페이스북을 통해 '전국적 확산'을 기대하는 의견을 밝힌 글.ⓒ캡쳐화면
    ▲ 착한임대료 정책은 전주 임대료 인하 소식을 접한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졌다. 문 대통령이 페이스북을 통해 '전국적 확산'을 기대하는 의견을 밝힌 글.ⓒ캡쳐화면
    B씨보다 더 큰 규모의 임대업을 하는 법인사업자들은 착한임대료를 악용하면 오히려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현행 과세기준은 연간 5억원 이상의 임대소득에는 42%의 세율을 적용하는데 임대료를 낮춰 세율을 조정하고 각종 공제항목을 포함한 세금을 회피하면 오히려 월세를 깎아주는게 이익인 상황도 가능하다.

    이 같은 현상이 발생할 경우 '임대수익=불로소득'이란 기조를 내세우고 수십차례에 걸친 부동산정책을 내놓은 정부가 세수감소를 무릅쓰면서까지 임대인의 수입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관련 부처인 기재부도 취지와 맞지 않는 재정보존이나 허위 임대료 인하 등에는 강력한 조치로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국회 기재위의 한 전문위원은 "착한 임대료 정책은 소득·법인세 세액공재를 통해 감면해주는 것으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이라며 "코로나19로 절박한 상황에 처한 실질적인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개정안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