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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국내 산업계가 시름하고 있는 가운데 니트릴 장갑의 소재인 NB라텍스를 생산하는 금호석유화학이 때 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여기에 중국발 과잉공급이 코로나19 여파로 주춤해지면서 페놀유도체를 생산하는 금호피앤비화학까지 생산라인을 풀가동하고 있다.
지난해 괄목할만한 재무성과를 거뒀던 만큼 영업성적과의 시너지로 어닝 서프라이즈를 넘어 비약적 실적 개선, 즉 '퀀텀점프' 가능성을 점치는 목소리도 나온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금호석유화학은 니트릴 장갑으로 알려진 라텍스 장갑을 주력 합성고무 제품으로 생산한다. 얇고 가볍지만, 쉽게 파손되지 않아 최근 조리용 및 산업용 장갑으로도 활용되고 있으며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감염 차단을 위해 의료용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사용이 급증했다.
키움증권 보고서를 보면 코로나19 확산으로 NB라텍스의 수요 증가 및 증설 효과로 판매량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금호석유화학을 비롯한 메이저 NB라텍스 업체들의 증설에도 글로벌 수급 상황은 타이트하게 유지되고 있다. 반면 올해는 메이저 NB라텍스 업체의 추가적인 증설 계획은 없는 상태다.세계 1위 니트릴 장갑업체인 Top Glove는 최근 전체 생산능력의 두 배에 달하는 물량을 주문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Sri-Trang도 2월부터 장갑 플랜트를 풀가동하고 있고, 적어도 8월까지는 이 같인 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금호석유화학의 NB라텍스 2월 누계 수출량도 약 12만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55% 이상 증가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회사는 글로벌 NB라텍스 시장에서 35%의 점유율로 1위에 랭크됐다.
앞서 금호석유화학은 고수익 제품 확대를 위해 2016년 스티렌부타디엔 고무(SBR) 생산라인 일부를 높은 수요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NB라텍스 제품 생산라인으로 전환했고 지난해 설비를 추가 증설하면서 업황 대응 능력을 높였다. 울산에 위치한 NB라텍스 생산능력은 2018년 40만t에서 지난해 말 58만t으로 늘어났다.
나아가 라텍스 장갑이 매년 10% 이상 수요가 상승할 것으로 전망하면서 증설 확대를 계획했고, 의료용 장갑뿐만 아니라 산업용 NB라텍스 소재 판매를 확대하는 등 제품다변화도 고려하고 있다.
원종현 한국신용평가 실장은 "설비 전환 및 증설을 통해 과잉공급 상태인 SBR 비중을 축소하고 마진이 높은 라텍스 비중을 확대하면서 수익구조를 개선했다"며 "코로나19 확산으로 수요가 크게 확대되고 있는 NB라텍스가 합성고무 부문 실적을 견인할 것으로 전망되는 점 등을 고려할 때 향후에도 실적은 양호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하나금융투자는 금호석유화학 합성고무 부문의 영업이익이 지난해 1분기 492억원에서 올해 527억원으로 7.11%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매출도 4773억원에서 5160억원으로 8.10% 늘어 영업이익률(10.2%)이 전년(10.3%) 수준으로 회복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함께 원가 절감에 따른 수혜도 누리고 있다. 합성고무와 합성수지의 주요 제품인 SBR과 ABS(아크릴로니트릴부타디엔스티렌, 고부가 합성수지), 폴리스티렌(PS) 등은 가격이 내려갔지만, 원재료로 쓰이는 부타디엔(BD), SM(스티렌모너머) 가격이 함께 급락하면서 수익 방어 역할을 하고 있다.
황규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합성수지의 스프레드는 t당 400달러로, 314달러였던 전분기보다 개선된 상태"라며 "원료인 BD와 SM가격이 약세를 보인 상황에서 발전소 부문 전기 판매가격도 내려가 이익이 안정적인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
주력제품인 △BPA(비스페놀A) △아세톤 △에폭시 등 페놀유도체 부문도 부진에서 벗어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코로나19 확산으로 잇따라 관련 공장 가동을 중단하면서 반사이익이 기대된다.
페놀유도체는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으로 쓰이는 폴리카보네이트(PC)의 원재료로 쓰인다. 이는 다시 자동차나 가전제품 외장재 등으로 쓰이는데, 업황 부진으로 침체기를 겪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하반기 BPA 해외수입분에 반덤핑 과세 부과 조치를 내렸다. 페놀 업체들의 증설이 이어지면서 과잉공급이 심화한 가운데 이 같은 결정은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졌다.
이에 금호석유화학은지난해 4분기부터 일부 라인 중단해왔지만, 스프레드 회복을 바탕으로 2월부터 전 라인을 풀가동 중이다.
금호석유화학 관계자는 "최근 페놀유도체 부문의 가동률을 끌어올려 생산이 확대됐고, 현재 증설 중인 작업이 끝나면 65만t까지 생산량이 확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장밋빛 미래에 힘을 더하고 있는 것은 최근 몇 년간 꾸준히 개선된 재무성과다. 탄탄한 재무구조를 바탕으로 향후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시기임에도 안정적 투자 기회 모색과 이에 따른 신규 수익원 창출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퀀텀점프 가능성도 이 때문이다.
2017~2018년 열병합발전 설비와 연결 자회사 금호피앤비화학의 큐멘, 페놀, 아세톤 설비 관련 대규모 투자가 마무리돼 자금소요가 감소한데다 2017년 이후 업황 개선 및 설비 증설 효과 가시화에 힘입어 영업창출현금이 크게 확대되면서 재무안정성이 개선됐다.
사업보고서 분석 결과 지난해 연결 기준 금호석유화학의 부채비율은 72.5%로 △LG화학 △롯데케미칼 △SK종합화학 △한화토탈 △한화솔루션 등 석유화학 6개사 평균 85.7%를 하회했다. 2016년 이후 부채가 2조8182억원에서 1조9084억원으로 9000억원 이상 감소하면서 3년 연속 부채비율을 낮췄다.
차입금의존도(35.4%) 역시 6개사 평균(43.0%)보다 낮았다. 의존도는 관련 통계가 공개되기 시작한 2013년(결산 기준, 106%) 이후 6년 연속 감소하면서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 기간 줄어든 차입금은 모두 7257억원이다.
특히 부채비율과 차입금의존도는 6개사 가운데 전년대비 개선 폭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났다. 6개사의 부채비율은 9.91%p 높아진 가운데 금호석유화학(-24.0%p)과 롯데케미칼(-10.9%p)만 낮아졌다. 의존도는 평균 6.27%p 악화됐는데, 금호석유화학(-15.1%p)과 롯데케미칼(-4.45%p)이 유이한 하락세를 기록했다.
재무안정성을 가늠하는 유동성 지표도 개선됐다. 유동비율은 98.8%로 평균 141%에는 못 미치지만, 자체적으로는 2016년 이후 감소한 유동부채 영향으로 2012년(103%)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전년대비 변동률도 롯데케미칼(57.9%p)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22.2%p다.
단기차입금 비중(50.4%)이 직전 3년(2016~2018년) 평균 64.2%에 비해 크게 낮아지면서 단기 유동성 리스크를 낮췄다.원종현 실장은 "향후 여수 합성고무 생산설비, 금호피앤비화학의 BPA 증설 등 투자 부담이 있으나, 업황을 고려해 총 2000억원 규모의 BPA설비 완공예정일을 2021년 말에서 2023년으로 변경하는 등 투자시기를 조정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향후 영업현금흐름을 통해 제반 자금소요를 원활히 충당하면서 개선된 재무안정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