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소비자물가 0.3% 하락… 국제유가 급락·공공서비스 물가 영향통계청 "공급측 요인 일시적 현상"… 근원물가는 외환위기 이후 최저미·중 갈등 격화로 원유시장 유동성 커져… 인플레 하방 압력 가능성
  • ▲ 주유소.ⓒ연합뉴스
    ▲ 주유소.ⓒ연합뉴스
    중국발 코로나19(우한폐렴) 확산과 국제유가 하락으로 말미암아 지난달 소비자물가가 8개월만에 다시 마이너스(-)로 내려 앉았다. 이번 마이너스 물가는 수요부족에 따른 하락이라기보다 공급측 요인으로 말미암은 현상이어서 디플레이션(수요부진으로 인한 경기침체)은 아니라는게 통계청 분석이다. 안형준 통계청 경제동향통계심의관은 "마이너스 물가 기간이 한달밖에 되지 않아 디플레이션으로 판단하기는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지난해도 9월(-0.4%)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물가를 찍은후 10월(0.0%)로 반등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안심하긴 이르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근원물가가 지난 2월 이후 추세적 하락 흐름을 보이는데다 미·중 갈등 격화로 국제유가가 하락하면 앞으로 인플레이션에 하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2일 통계청이 내놓은 5월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104.71(2015년=100 기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3% 내렸다. 지난해 9월 -0.4%로 사상 처음 마이너스 물가를 기록한 이후 8개월만에 다시 0%대가 무너졌다.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1%를 밑돌다 올들어 석달 연속 1%대 상승을 보였지만 지난 4월 다시 0%대로 주춤하다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품목성질별로 살펴보면 농·축·수산물(3.1%)과 전기·수도·가스(1.3%), 서비스(0.1%)는 지난해보다 상승했다. 반면 공업제품(-2.0%)이 하락을 주도했다.

    농·축·수산물은 배추(102.1%)와 고구마(16.4%), 돼지고기(12.2%) 등의 상승 폭이 컸다. 마늘(-23.2%), 고춧가루(-13.5%), 쌀(-2.7%)은 가격이 내렸다.

    공업제품은 석유류 하락이 눈에 띄었다. 경유(-23.0%), 휘발유(-17.2%)가 내렸다. 자동차용 액화석유가스(LPG)(-14.4%)와 등유(-16.3%)도 하락했다. 국제유가 하락이 반영됐다는 게 통계청 설명이다. 정부의 승용차 개별소비세 인하로 다목적승용차(-2.4%) 가격도 하락했다.

    여자겉옷(2.9%)과 한방약(5.0%), 소파(8.9%), 햄·베이컨(5.6%) 등은 지난해보다 올랐다.

    전기·수도·가스는 도시가스(3.6%), 지역난방비(3.3%)는 오르고 상수도료(-1.4%)는 내렸다.

    서비스 부문은 상승률이 0.1%에 그쳤다. 공공서비스(-1.9%)는 내리고 개인서비스(0.9%)는 올랐다. 집세는 0.1% 올랐다.

    공공서비스는 시내버스료(4.9%)와 외래진료비(2.4%)는 오른 반면 고등학교납입금(-66.2%)과 휴대전화료(-1.4%)가 내렸다.

    개인서비스는 휴양시설이용료(22.0%)와 보험서비스료(8.1%)가 올랐지만, 학교급식비(-63.0%)와 병원검사료(-10.1%), 가전제품렌탈비(-8.4%), 해외단체여행비(-7.7%)가 줄었다. 코로나19 사태로 해외단체여행이 줄고, 유례없는 개학 연기로 급식비가 줄어드는 상황이 이어졌다. 지출목적별로 봐도 교통(-6.9%)에 이어 오락·문화(-1.6%)와 교육(-2.8%)이 큰 폭으로 하락했다.

    서비스 물가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외식 물가는 0.6% 오르는 데 그쳤다.
  • ▲ 5월 소비자물가.ⓒ연합뉴스
    ▲ 5월 소비자물가.ⓒ연합뉴스
    계절 요인이나 일시적인 충격에 따른 물가변동분을 제외하고 장기적인 추세를 파악하려고 작성한 '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지수'(근원물가)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5% 상승했다. 앞선 달과 비교해서도 0.2% 올랐다. 지난 3월 넉 달 만에 하락(-0.1%)으로 돌아선 이후 두 달 만에 반등했다.

    OECD 기준 근원물가인 '식료품 및 에너지제외지수'는 지난해보다 0.1% 올랐다. 두 달 연속 0.1%를 나타냈다. 지난해 11월 0.5%, 12월 0.6%, 올 1월 0.8%로 상승 폭이 커지다 2월(0.5%) 이후 둔화하고 있다. 0.1% 상승률은 외환위기 때인 1999년 12월(0.1%) 이후 최저 수준이다.

    체감물가를 파악하려고 지출 비중이 크고 자주 사는 141개 품목을 토대로 작성한 생활물가지수는 지난해보다 0.7% 하락했다. 식품(2.0%)은 상승한 반면 식품 이외(-2.2%)는 하락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경우가 많아진 탓으로 보인다.

    신선식품지수는 1년 전보다 3.4% 상승했다. 생선·해산물 등 신선어개(8.9%)와 신선채소(9.8%)는 올랐고, 신선과실(-5.4%)은 내렸다.

    지역별 등락률을 보면 제자리걸음 한 서울·인천을 제외하고 광주(-0.2%), 강원·충남·충북·전남·경남(-0.3%), 부산·울산·경기(-0.4%), 대전(-0.5%), 전북(-0.7%), 제주(-0.8%), 대구(-0.9%), 경북(-1.0%)은 모두 내렸다.

    통계청은 이번 마이너스 물가가 일시적인 현상이라며 디플레이션 가능성에는 선을 그었다. 하지만 대외적 여건이 좋지만은 않다는 의견도 나온다.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달 내놓은 경제동향 5월호에서 국제유가 하락이 디플레이션을 촉발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앞으로 유가가 오르고 세계경제가 활력을 되찾느냐가 디플레이션 여부를 결정할 가늠자가 될 거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최근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제정으로 미·중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국제유가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제기된다는 점이다. 국제유가가 각국의 경제활동 재개 움직임으로 오르고는 있지만, 러시아를 포함한 23개 산유국 모임(OPEC+)이 감산에 미온적인 태도로 연초와 비교하면 아직 낮은 가격을 보이고 있어 불확실성이 여전하다는 분석이다. 지난 1일(현지 시각)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7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0.1%(0.05달러) 내린 35.4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