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회사 한덕화학 지분 인수… '사전작업' 가능성'선택과 집중' 해외 휴면자회사 등 비주력 사업 정리양호한 재무구조 속 공모채 발행… 인수자금 마련 분석도
  • ▲ 롯데케미칼 울산1공장. ⓒ연합뉴스
    ▲ 롯데케미칼 울산1공장. ⓒ연합뉴스

    롯데케미칼의 롯데정밀화학 흡수합병설이 또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산 저가 제품들의 공세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공장가동률 저하 등으로 업황이 침체된 만큼 스페셜티 제품군 강화에 집중하면서다.

    특히 해외 휴면자회사 청산 등 비주력 사업군을 정리하고 있는데다 탄탄한 재무구조에도 불구하고 공모채 시장에 나서는 등의 움직임이 포착되면서 합병을 위한 사전작업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정밀화학은 롯데케미칼이 지분 31.1%를 보유한 자회사다. 고분자 합성 화학제품 '셀룰로스' 등 소재 계열의 고부가 제품을 생산하면서 영업이익률이 10%를 웃도는 실적을 꾸준히 내고 있다.

    롯데케미칼의 롯데정밀화학 흡수합병은 고부가 제품 중심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강화하겠다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전략과 방향성이 일치한다는 점에서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지난달 롯데정밀화학의 한덕화학 보유 지분 전량인 50%를 인수하자 흡수합병 가능성이 다시 불거졌다.

    한덕화학은 롯데정밀화학과 일본 도쿠야마의 합작사로, 반도체나 액정표시장치(LCD) 등 집적회로를 만들 때 쓰이는 현상액을 생산하며 해마다 20% 안팎의 영업이익률을 기록했다.

    화학업계 한 관계자는 "한덕화학 지분 인수로 고부가 제품 포트폴리오를 내재화했을 뿐만 아니라 롯데정밀화학의 지분구조를 간소화했다"며 "이는 향후 롯데정밀화학까지 흡수합병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일 수 있다"고 말했다.

    신동빈 회장의 롯데그룹 화학 부문 강화 전략은 단순히 고부가 제품 포트폴리오를 늘리는 것을 넘어 롯데케미칼 내에서 고부가 제품 사업구조를 수직계열화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롯데그룹의 화학사업은 롯데케미칼이 순수 화학사업에 집중하면서 고부가 제품을 생산하는 자회사들에 원료로 쓰이는 화학제품을 공급하는 체제로 운영돼 왔다.

    신 회장은 원료 공급 절차를 간소화하고 의사결정속도를 높여 업황 변화에 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것뿐만 아니라 기존 사업들 간의 시너지까지 염두에 두는 등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는 전략을 추진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롯데케미칼이 1월 지분 100%를 보유한 자회사 롯데첨단소재를 흡수합병한 뒤 두 회사의 중복사업이었던 폴리카보네이트(PC)를 첨단소재사업 부문(옛 롯데첨단소재)으로 단일화하는 포트폴리오 조정을 단행했다는 점에서 잘 나타난다.

    효과는 실적으로 입증됐다. 롯데케미칼은 올해 1분기 화학업황의 침체와 대산공장 화재사고까지 겹쳐 860억원 규모의 연결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31분기 만에 기록한 영업손실이었다.

    그러나 '어닝쇼크' 속에서도 첨단소재사업 부문은 410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지난해 1분기보다 30.6% 증가한 수준이다.

    단일회사로 화학사업을 계열화하는 작업을 통해 성과를 봤다는 점에서 롯데정밀화학 흡수합병에도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시선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 ▲ 롯데케미칼 여수공장. ⓒ롯데케미칼
    ▲ 롯데케미칼 여수공장. ⓒ롯데케미칼

    다른 한편으로는 해외 '휴면'자회사 청산 등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고 있다. '선택과 집중' 차원으로 해석된다.

    이달 초 롯데케미칼의 말레이시아 자회사 롯데케미칼 타이탄 홀딩스(LCT)는 인도네시아 증권거래소에 자회사 SWLF(South Wealth Finance Limited)를 청산한다고 공시했다.

    SWLF는 2001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투자 지주사로 설립됐다. 원래 말레이시아 석유화학사인 타이탄케미칼의 소유였으나, 2010년 롯데케미칼이 인수하면서 이 회사도 함께 편입됐다.

    롯데케미칼 측은 "인수할 때부터 휴면 회사로 아무 기능을 하지 않았다"며 "법인 간소화 차원에서 청산을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LCT는 앞서 싱가포르 법인도 청산한 바 있다. 불필요한 법인을 정리하고 주력 사업에 역량을 집중시키겠다는 전략으로 비춰진다.

    국내에서는 대표적인 과잉공급 제품인 고순도 테레프탈산(PTA) 사업을 정리하고 해당 설비를 재정비해 고부가가치 사업에 활용하기로 했다.

    PTA는 합성섬유 및 페트병의 중간원료로, 국내에서는 한화종합화학이 최대 생산량을 보유하고 있다. 한 때 수출 비중이 높은 품목이었으나, 최대 수입국인 중국이 자급률을 높이면서 가격이 크게 하락했다.

    최근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PTA의 원료가 되는 파라자일렌(PX) 생산라인 일부를 가중 중단하기도 했으나, 연간 60만t가량을 생산하던 PTA의 완전한 생산 중단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신 지난해부터 500억원가량을 투자해 추진해 왔던 고순도 이소프탈산(PIA)의 설비전환을 진행한다. 글로벌 1위 수준의 PIA 생산량을 더욱 높여 사업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PTA공장 가동 중단에 따른 공백은 한화종합화학으로부터 PTA 45만t 규모의 제품을 공급받기로 협약했다.

    협약을 통해 한화종합화학은 운휴 중이던 일부 설비를 재가동할 수 있게 됐다. 양사 모두 효율적인 생산라인 운영으로 수익성 향상이 기대되는 만큼 상호 '윈윈'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안나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롯데케미칼은 순수 화학사들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며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는 만큼 앞으로 움직임이 가장 기대되는 회사"라고 평가했다.

  • ▲ 롯데케미칼 미국 루이지애나공장. ⓒ롯데케미칼
    ▲ 롯데케미칼 미국 루이지애나공장. ⓒ롯데케미칼

    자본 측면에서도 흡수합병 가능성이 점쳐진다. 롯데케미칼은 21일 2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발행을 위해 수요예측에 나선다. 발행일은 28일이다. 수요예측 결과에 따라 최대 3000억원까지 증액 발행할 수도 있다.

    자금조달시장에서는 회사채 흥행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2013년 이후 매년 공모채를 발행하면서 매번 흥행에 성공해왔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3000억원 모집에 1조원 이상이 몰리기도 했다.

    표면적인 발행 목적은 7월 만기도래하는 회사채를 차환하기 위한 것인데, 이 금액이 1000억원에 불과해 자금의 용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롯데케미칼이 이미 탄탄한 재무구조를 갖추고 있는 만큼 M&A를 위한 자금 마련 차원이 아니냐는 것이다.

    분기보고서 분석 결과 1분기 기준 유동비율은 248%로, 우수한 수준을 보이고 있으며 최근 5년 기준으로 범위를 넓혀도 200% 이상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했다. 부채비율(43.4%)과 차입금의존도(21.3%)는 2017년 이후 자본 확충과 부채 감축 기조 하에 3년 연속 감소세를 이어가는 등 매우 건전하다.

    송미경 나이스신용평가 실장은 "다각화된 사업 포트폴리오와 경쟁 지위를 바탕으로 석유화학산업의 변동성 및 투자 부담에 대응하면서 매우 우수한 현금창출력을 시현하고 있는 가운데 원활한 현금흐름을 바탕으로 매우 우수한 재무구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인도네시아 NCC 신설 투자 계획, 합작사 설립 등 2023년까지 연간 1조5000억원 안팎의 투자가 계획돼 향후에도 투자 부담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보유 유동성을 기반으로 우수한 재무적 대응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송미경 실장은 "최근 불리한 산업 환경 및 대산공장 화재 발생에 따른 가동 중단 등의 영향으로 단기적인 실적 저하가 예상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생산능력 측면에서 경쟁 지위 등을 바탕으로 우수한 실적을 시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차입 부담을 안정적인 수준에서 관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롯데케미칼 측에서도 흡수합병 가능성을 부인하지는 않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경영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시점에 대한 내부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케미칼 관계자는 "롯데정밀화학 흡수합병도 가능성이 열려있는 사업전략 중 하나"라면서도 "현재는 롯데첨단소재와의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시급한 만큼 흡수합병을 당장 추진하진 않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롯데케미칼은 2분기 잠정실적을 8월7일 발표할 예정이다.

    증권가에서는 2분기에 매출액 2조7896억원, 영업이익 759억원의 영업성적을 거둘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2분기에 비해 매출액(4조346억원)은 30.8%, 영업이익(3461억원)은 78.0% 줄어든 수준이다.

    3월 발생한 화재사고로 대산공장 일부 라인의 가동이 중단되면서 기회비용이 발생하고 있는데다 아로마틱 부문의 경우 수익성 악화로 파키스탄 법인의 공장 가동이 멈춰 적자가 이어질 것이라는 분석이 대체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