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막힌 하늘길 뚫고 어린이날 한국 땅 밟아
  • ▲ ⓒ세브란스병원
    ▲ ⓒ세브란스병원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하늘길마저 닫힌 5월 쇳조각을 삼켜 수술이 필요했지만, 자국에서 치료를 받지 못하던 남수단 어린아이가 세브란스병원의 초청을 받아 이집트 한국대사관의 도움으로 한국땅을 밟았다.

    이미 식도를 뚫고 나온 쇳조각은 기관지를 뚫고 대동맥궁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세계적으로도 사례를 찾기 힘든 경우였다. 

    세브란스병원은 약 2.5cm의 쇳조각을 삼킨 남수단 여아 글로리아 간디(4세)가 두 차례의 수술을 마치고 오는 30일 퇴원한다고 29일 밝혔다. 

    병원에 따르면 지난해 7월 갑자기 가슴 통증을 호소한 글로리아. 통증으로 잠도 잘 자지 못했다. 인근 병원에서 X-ray 검사한 결과 가슴에서 쇳조각이 발견됐다. 의사는 내시경으로 쇳조각을 꺼내기 어렵다며 수술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남수단에서는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이 없었다.

    경제 사정이 좋지 못한 글로리아 가족을 위해 글로리아 가족이 다니던 교회 성도들과 이웃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았다. 항공료와 수술비 12만 파운드(약 920달러)와 1,000달러를 마련한 아버지 톰베 간디씨는 글로리아를 데리고 수단으로 향했다. 

    하지만 수단의 병원에서도 수술이 힘들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수술을 해보자고 한 병원에서는 수술로 쇳조각을 꺼내려 했지만, 그마저도 실패했다. 글로리아의 오른쪽 옆구리에는 커다란 수술 자국이 남았다.

    수술과 입원비로 쓰고 남은 돈은 200달러가 전부였다. 그렇다고 치료를 포기할 수 없었다. 간디씨는 글로리아를 데리고 의료 시설이 갖춰진 이집트로 향했다. 버스로 만 이틀을 달려 도착한 이집트 병원에서도 쇳조각이 식도를 뚫고 나와 수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하지만 가지고 있는 돈이 없어 수술을 받을 수 없었다.

    ◆ 코로나19 공항 폐쇄… 45일을 기다려 한국으로

    글로리아의 소식은 여러 선교사를 통해 세브란스병원에 전달됐고, 현지에서 검사한 자료로 글로리아의 상태를 확인한 흉부외과에서는 수술을 할 수 있다고 의견을 보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을 때 한국행이 결정됐다. 세브란스병원은 공항이 폐쇄될 수도 있어 최대한 빨리 입국할 수 있도록 한국대사관에 제출해야 하는 서류를 전달했다.

    글로리아의 상태를 확인한 이집트 한국대사관에서도 비자발급을 서둘렀다. 3월 25일 한국에 도착하는 항공권도 예약했다. 그만큼 글로리아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세브란스병원과 한국대사관의 도움으로 출국날짜만 기다리던 부녀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출국 이틀 전 이집트 정부에서 공항을 폐쇄한 것이다. 한국 정부도 모든 단기 입국 비자를 취소했다.

    한 달이 넘도록 공항이 폐쇄됐다. 마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집트 한국대사관이 취소된 비자를 다시 발급하고, 한국대사관과 이집트 한인회에서 마련한 전세기에 탑승할 수 있었다. 5월 5일 어린이날. 글로리아와 간디씨는 한국땅을 밟았다.

    쇳조각이 정확히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일반 검사로는 가늠이 힘들었다. 흉부외과에서는 AI 기업 코어라인소프트의 도움을 받아 CT 결과를 3차원으로 재건하고 3D 프린팅을 시행했다. 3D 재건 및 프린팅 결과, 쇳조각은 식도를 뚫고 기관지를 밀고 들어가 대동맥궁 바로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세브란스병원 흉부외과 박성용 교수는 영상의학과와 소아호흡기알레르기과, 소아외과, 소아심장혈관외과 등 관련 과와의 협진을 통해 글로리아의 상태를 파악하고 수술 계획을 세웠다. 정확한 수술과 수술 후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가정해야 했다. 한 번의 수술로 쇳조각이 제거되고 구조물들의 손상이 완전히 복구될 가능성은 50% 미만이었다.

    박성용 교수는 좌측 개흉술을 통해 주기관지를 절개하고 대동맥을 비켜 손상된 조직에서 쇳조각을 무사히 제거했다. 쇳조각은 나사나 볼트를 조일 때 사용하는 와셔(washer)였다. 쇳조각이 식도를 뚫고 나와 주기관지의 뒷벽을 완전히 녹였고, 이로 인해 좌측 기관지 대부분이 손상됐으며 기관지 입구가 좁아져 있었다.

    수술 후 염증도 줄어들었고 호흡에도 무리가 없었다. 쇠붙이를 제거한 부위도 잘 아물었다. 그러나 식도와 기관지 사이의 누공은 오랫동안 손상된 조직이라 완전히 아물지 않아 1mm 크기로 남아있었다. 이 부위로 음식물이 기관지로 넘어가서 반복적으로 흡인이 일어나 글로리아는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박 교수와 소아외과 호인걸 교수는 쇳조각으로 녹아버린 기관지 뒷벽을 식도벽을 사용해 새로 만들어 재건했다. 남아있는 1mm 크기의 누공은 기관지 사이 근육을 사용해 다시 봉합하고, 잘려진 2cm 길이의 식도는 당겨서 어어 붙였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했다. 갑자기 분당 55회로 호흡수가 빨라지고 심박수도 160~170으로 빨랐다. 호흡곤란을 호소했다.

    김경원 소아호흡기알레르기과 교수는 “수술은 성공적이었지만 오랜 기간 쇳조각에 눌려서 녹아버린 좌측 기관지는 좁고 폐도 약해진 상태였다”며 “안정을 찾으면서 기관지와 폐도 호전되었고, 음식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을 정도로 상태가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박성용 교수는 “쇳조각을 삼키고 세브란스병원으로 올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기적이다. 글로리아가 힘든 수술을 견디고 건강을 되찾아 수술을 집도한 의사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