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ITC, 10일 최종판결 예정합의금 평행선… 구체적 명분 찾을 듯판결 후 60일 심의기간 본격 협상 관측
  • ▲ LG화학 배터리(좌)와 SK이노베이션 배터리. ⓒ각 사
    ▲ LG화학 배터리(좌)와 SK이노베이션 배터리. ⓒ각 사
    LG에너지솔루션(옛 LG화학 전지사업부)과 SK이노베이션의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영업비밀침해 소송에 대한 최종결정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업계에서는 양측이 소송 결과가 나온 후에야 협상에 임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양측 모두 소송 결과를 100%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소송 결과를 확인한 뒤 협상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이 높다.

    8일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 배터리 기술 도용 여부와 관련, ITC의 최종판결이 10일(현지시간) 나온다. 우리 시간으로는 11일 오전께로 예상된다.

    앞서 2019년 4월 LG에너지솔루션은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자사의 배터리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ITC와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 제소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SK이노베이션이 자사의 핵심 인력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배터리 영업비밀이 유출됐다고 주장한다.

    ITC는 지난해 2월 SK이노베이션의 조기패소 결정(예비결정)을 내렸으나, SK의 요청으로 두 달 뒤인 4월 전면 재검토 결정을 내렸다. 당시 ITC는 SK이노베이션이 증거 훼손 및 포렌식 명령 위반을 포함한 법정 모독행위 등을 했다고 판단했다.

    당초 ITC는 지난해 10월5일 최종판결을 낼 예정이었으나 10월26일, 12월10일로 두 차례 미뤄졌다가 해를 넘긴 2월10일로 재차 연기됐다.

    이를 두고도 양사는 서로 다른 해석을 내놨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코로나19로 일정이 순연된 영향이라고 봤고, SK이노베이션은 앞선 예비판결이 뒤집힐 가능성을 주장했다.

    이번 결과에 따라 양사의 명운도 결정된다.

    당장은 2019년부터 이어져온 양사 간 소송이 3년째로 접어들면서 양측 모두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수천억원대에 달하는 소송비용은 물론, 판결 결과에 따라 국내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 미치는 타격도 적지 않을 것으로 점쳐지기 때문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ITC에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모듈, 팩, 부품 등의 미국 내 전면 수입 금지를 요청했다. SK이노베이션이 패소할 경우 배터리 소재를 원칙적으로 미국에 수출할 수 없고,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가동도 제한받게 된다.

    소송비용뿐만 아니라 합의금이 수조원으로 추산되면서 업계에서는 양사가 ITC 발표 이전 합의까지 나설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양사의 합의금 차이가 심해 결과가 나올 때까지 좁혀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LG에너지솔루션은 수조원, SK이노베이션은 수천억원의 합의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양사 모두 정확한 금액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영업비밀침해를 통해 SK이노베이션이 얻었다고 가정되는 부당이득, LG에너지솔루션의 피해, 그동안 R&D비용을 모두 고려해 조 단위 합의금이 합당한 것으로 봤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17~2019년 늘어난 SK이노베이션의 글로벌 수주 규모만 40조~50조원으로 봤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영업비밀을 침해한 사실이 없는데다 정확히 '어떤' 영업이익을 '얼마나' 침해했는지 제시받지 못한 상황에서 대규모 합의금 산정이 어렵다는 입장으로 맞서온 것으로 알려졌다.

    즉 실제 영업비밀침해가 있었는지에 대한 서로 다른 판단이 양사가 제시한 합의금 격차를 벌린 셈이다. SK이노베이션은 LG에너지솔루션이 '빼앗겼다'고 주장한 인력, 합의하고자 하는 최선의 의지 등에 기반해 합의금을 산정, 제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까지 SK이노베이션의 제안이 협상 의지가 전혀 없다. 논의할만한 제안이 있기를 기대한다"면서 "현재 SK가 제시한 배상금과 배상방식은 기본적으로 영업비밀침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어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반면 SK이노베이션은 "LG가 정확히 어떤 영업비밀을 얼마만큼 침해했는지에 대해 명확한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높은 배상금을 요구한다"며 맞서고 있다. 영업비밀침해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거액의 합의금을 일방적으로 내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SK로선 악의적으로 기술을 탈취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뿐만 아니라 주주들에게 배임으로 낙인이 찍힐 가능성도 있다. 또 배터리 시장 후발주자로 아직 흑자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수조원의 합의금은 재무적으로도 부담이 크다.
  • ▲ LG화학-SK이노베이션 '배터리 소송' 일지. 자료=업계 취합. ⓒ뉴데일리경제
    ▲ LG화학-SK이노베이션 '배터리 소송' 일지. 자료=업계 취합. ⓒ뉴데일리경제
    양사의 주장이 크게 엇갈리고 있는 만큼 최종판결 전까지 극적 합의를 도모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특히 양사는 ITC 판결이 자사에게 유리하게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ITC 발표 이후 후속 대책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ITC 행정판사가 지난해 2월 SK이노베이션에 내린 주기패소 판결이 최종결정에서 그대로 인용되는 것이다.

    ITC 통계(1996~2019년)에 따르면 영업비밀침해의 경우 ITC 행정판사가 예비결정에서 침해를 인정한 모든 사건이 ITC 위원회의 최종결정으로 그대로 유지됐다.

    이 경우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비밀을 침해한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및 관련 부품에 대해 미국 수입이 전면 금지된다. 뿐만 아니라 미국 공장에서 생산하는 것도 불가능해져 조지아주에 배터리 생산시설 확대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 SK이노베이션으로선 유무형의 손실이 불가피해진다.

    포드, 폭스바겐 등 완성차 업체들로부터 수십조원의 물량을 수주한 상태인 만큼 납품 불발에 따른 천문학적 수준의 금액도 배상해야 한다. SK이노베이션의 미국 수주액은 20조원가량으로 전해졌다.

    때문에 최종판결 이후 주어지는 60일간의 심의기간이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서는 '골든타임'인 셈이다. 이 기간 SK이노베이션은 공탁금을 걸고 LG와의 합의를 시도할 수 있다.

    소송결과 발표 후 60일 이후에는 효력이 발생하는 만큼 가급적 이 기간 안에 합의해야 한다. ITC는 민사소송이기 때문에 양사가 기간 내 합의해 소송을 취하하면 소송결과를 따르지 않아도 된다.

    동시에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연방항소법원에 항소를 제기할 수 있다. 그러나 ITC의 최종판결 효력은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수입금지' 사태를 막기 위해서는 '골든타임'을 잘 활용해야 한다.

    다만 앞서 영업비밀침해 건을 두고 5곳의 기업이 ITC의 결과에 불복해 항소했으나, 패소 결정이 뒤집힌 적은 없었다.

    조기패소 판결과 관련, ITC가 SK이노베이션의 조기패소를 인정하되 지역 내 일자리 등 경제에 및 영향 등 '공익(Public)' 여부를 추가로 따져보겠다고 하거나, 아예 예비결정에 대한 '환송(Remand)' 결정이 내려지게 되면 또 다시 지루한 장기전으로 흐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소송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은 물론, 양측 모두 추가적인 투자나 전략에 있어 커다란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수입금지 여부를 별도로 결정하도록 하는 추가 조사 개시 명령이 내려질 수도 있다. 이 경우 미국 주정부나 시정부, 협력기업 등 이해관계자들이 공청회를 열고 SK 제품의 수입금지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ITC가 예비결정을 뒤집고 수정 지시를 내릴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예비결정을 내린 행정판사가 사건을 다시 조사해야 한다. 소송은 원점으로 돌아가게 되고 최종결정까지는 또 다시 6개월 도 소요될 전망이다.

    이 경우에는 수입금지 효력이 발생하지 않아 SK이노베이션은 미국 사업을 지속할 수 있다. SK에게 가장 유리한 시나리오지만, 양사의 합의 가능성은 더욱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양사는 최종판결 전후로 소송과 여론전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까지 배상액에 대한 제시안 편차가 큰 만큼 한동안 갑론을박이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글로벌 사업장, 대규모 투자 등 시장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데다 최근 들어 정세균 국무총리가 공개적으로 화해를 촉구하는 등 정치권에서도 압박을 가하고 있어 끝내 합의를 도모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 정 총리는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토론회에서 "K배터리의 미래가 앞으로 정말 크게 열릴 텐데, 작은 파이를 두고 싸우지 말고 빨리 문제를 해결하고 큰 세계 시장을 향해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을 만들었으면 한다"고 촉구한 바 있다.

    한편, 미국 현지에서는 한국 기업간 분쟁으로 미국 전기차 생산에 큰 타격이 올 수 있다면서 이를 막기 위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거부권(veto, 비토) 행사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6일 SK의 소송을 맡고 있는 현지 로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바이든 정부의 일자리 계획, 지구 온난화 대책, 미국 제조업 정책 방향성 등과 직결됐다"며 "ITC가 LG에너지솔루션의 편을 든다면 바이든은 그 결정을 뒤집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ITC 역사상 영업비밀침해에 대해 대통령의 거부권이 행사된 사례가 단 한 차례도 없었고, 바이든 당선에 따라 미국이 지식재산권 보호 기조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소송의 최종판결이 번복될 가능성이 낮다는 시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