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민주당 대표 "국회가 법 만들면 정부는 따르는 게 당연"가덕도 특별법… 동남권 신공항 명시·예타 면제·사타 간소화국토부 "사타 필요"… 안전성·환경성·시공성 등 문제 수두룩표(票)퓰리즘에 경제논리는 뒷전… 野, 반대 커녕 동조 급급
-
동남권 신공항 입지평가에서 꼴찌를 했던 부산 가덕도에 혈세 28조원을 들여 신공항이 들어서게 됐다. 전 정부의 토건사업을 비판했던 문재인 정부에서 예비타당성 조사(이하 예타)와 사전타당성 조사(이하 사타) 면제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수십조 원대 토건사업을 밀어붙이는 모양새다.◇특별법 본회의 통과국회는 26일 오후 본회의를 열고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이하 가덕도법)을 상정, 의결했다. 여야는 찬성 181표, 반대 33표, 기권 15표로 해당 법안을 가결했다. 여당이 특별법을 발의한 지 92일 만이다. 전날 법사위원회 문턱을 넘은 가덕도법은 동남권 신공항의 입지를 부산 가덕도로 명시하고 신속한 사업 추진을 위해 필요한 경우 예타를 면제하고 사타도 간소화할 수 있게 했다. 환경영향평가는 면제하지 않기로 했지만, 사업이 본격화하면 큰 문제는 되지 않을 전망이다. 한정애 환경부 장관이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 시절 가덕도법을 대표발의한 데다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가덕도 신공항 건설 필요성을 피력했기 때문이다.애초 동남권 신공항 입지로 낙점됐던 김해 신공항과 관련해선 '국토교통부 장관이 가덕도 신공항의 위계와 기능이 중복되지 않게 제6차 공항 종합계획을 세운다'는 내용을 부칙에 덧붙였다.이날 가덕도법 본회의 통과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거여(巨與) 민주당뿐 아니라 야당도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경제논리보다 표(票)퓰리즘에 빠져 법안 통과에 일조하고 있어서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이날 오전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오늘 2월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가덕도법을 통과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최근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위해 사타가 필요하다는 국토부의 견해를 두고 부처·관료발 '레임덕' 징후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을 의식한 듯 "법안 심의 과정에서 정부 부처가 몇 가지 의견을 제시했지만, 국회가 법을 만들면 정부는 따르는 게 당연하다"면서 "(가덕도법에 대해) 관계 장관 등이 모두 따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덧붙였다.
-
◇국토부 "가덕도 신공항 안전사고 등 우려"국토부가 항공분야 전문가 자문을 거쳐 자체 분석한 부산시의 가덕도 신공항 건설사업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가덕도 신공항 사업비는 시나리오에 따라 최대 28조7000억원이 드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국제선·활주로 1본을 건설하는 부산시의 주장을 토대로 국내선 포함·활주로 2본 건설과 군 시설 이전까지 포함하는 경우의 추정 사업비다. 심지어 국토부는 부산시가 발표한 사업안의 사업비도 공사비 증액분 누락과 단가 오류 등으로 적게 추산됐다고 지적했다. 부산시가 추산한 사업비는 7조5000억원쯤이다. 국토부는 공항공사와 전문가들이 다시 뽑은 사업비는 12조8000억원이라고 밝혔다. 김해 신공항 건설은 예타 결과 총사업비 규모가 5조9600억원쯤으로 조사됐다. 한국항공대 김병종 교수는 "재원문제는 따질 필요가 있다"면서 "김해 신공항은 예타를 통해 비용대비편익(경제성)을 따졌지만, (가덕도 등) 다른 후보지는 그렇지 않았으므로 예타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국토부는 보고서에서 경제성뿐 아니라 안전성, 환경성, 시공성 등의 측면에서도 부산시의 건설안은 문제가 있다고 조목조목 짚었다. 중요한 안전성과 관련해선 "진해 비행장 공역 중첩, 김해공항 관제업무 복잡 등으로 항공 안전사고 위험성이 매우 증가한다"고 우려했다. 시공성 차원에서도 "가덕도는 외해에 있어 대규모 매립과 난공사는 물론 땅이 고르지 않게 침하하는 부등침하 현상 등이 우려된다"고 적었다.가덕도는 지난 2016년 프랑스 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ADPi)이 수행한 '영남권 신공항 사전타당성 검증용역'에서 김해공항 확장과 밀양 신공항에 이어 3위에 그쳤다. 다른 후보지와 비교하면 점수 차가 꽤 났다. 당시 장 마리 슈발리에 ADPi 수석엔지니어는 "가덕도는 자연적인 공항 입지로서 적합하지 않고 건설비용도 많이 든다"며 "건설 자체가 어렵고 접근성도 문제가 된다"고 설명했다.
-
◇文정부 선거철만 되면… 예타·사타 면제 남발문재인 정부는 MB(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을 적폐로 규정하는 등 대규모 토건사업을 비판했었다. 정권 초기에는 경기 부양을 위한 대규모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지양하겠다며 관련 예산을 사회복지 분야에 집중 투입했다.그러나 이런 기조는 선거철만 다가오면 흔들렸다. 2019년엔 24조원 이상의 혈세가 투입되는 대규모 토건사업을 '국가균형발전 프로젝트'라는 미명 아래 예타 면제사업으로 추진했다. 경제성이 없어 그동안 예타에서 여러 차례 미역국을 먹었던 사업들이 대거 포함되면서 이듬해 총선을 겨냥한 선심성 이벤트란 지적이 제기됐다.예타 면제 사업 중 유일한 항공분야 인프라 확충 사업인 새만금 국제공항 건설도 항공 수요를 고려치 않은 중복 투자라는 질타를 받았다. 더욱이 새만금 신공항 건설은 사업 추진을 위해 국토부나 전북도가 항공수요를 50만명이나 뻥튀기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됐었다.지난해는 집권 후반기 들어 총 160조원 규모의 한국판 뉴딜사업을 졸속으로 추진하면서 지역균형 뉴딜이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사타 면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가뜩이나 열악한 지방정부의 재정여건을 정부의 퍼주기·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 정책이 악화시킨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신영철 국책사업감시단장은 "예타나 사타는 정부나 지자체의 무분별한 선심성 사업을 사전에 방지해 혈세 낭비를 막고자 DJ 정부에서 도입했다"며 "DJ 정부를 계승한다는 문재인 정부가 MB 정부에서 제도를 무력화하려고 둔 예외조항(면제)을 200% 활용하고 있다. 자신이 적폐라고 몰아붙인 정부에서 만든 예외조항으로 예산 낭비를 부추기고 있다"고 말했다.공항은 항공 수요 예측을 잘못하면 세금만 축내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정부가 앞서 예타를 면제한 새만금 신공항의 경우도 항공업계에선 인근에 무안·청주공항이 있어 중복 투자로 제 살 깎아 먹기 경쟁이 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가까운 전남 무안공항은 입지가 좁아져 '불 꺼진' 공항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일부 항공전문가들은 가덕도 신공항이 이런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없잖다고 우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