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하락에 막 던지나… 법안 심사땐 위헌 지적 '말 바꾸기' 논란전문가들 "법적 안정성도 중요… 이해충돌방지법 처리가 더 급해"文대통령, 9개월만에 반부패정책협의회 주재… 근절방안 메시지 주목
  • ▲ LH 땅투기 의혹 토지.ⓒ연합뉴스
    ▲ LH 땅투기 의혹 토지.ⓒ연합뉴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땅 투기 사태와 관련해 정부의 재발방지대책 발표가 임박한 가운데 부당이익 몰수를 소급 적용하는 문제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이번 사태로 지지율이 출렁하자 여당은 이른바 '투기·부패방지 5법'을 부랴부랴 추진하면서 소급 적용에 대해 헌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반대했었다. 하지만 여론이 계속 악화하자 LH 직원들에게 친일 프레임을 씌워 소급입법을 추진하겠다며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소급 적용은 헌법에 어긋난다며 정책적으로 접근할 거면 3기 신도시 지정을 취소하는 게 맞다는 견해가 많다.

    문재인 대통령은 29일 청와대에서 부동산 부패 근절을 위한 반부패정책협의회를 주재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이 반부패정책협의회를 주재하는 것은 9개월 만이다. 문 대통령은 LH  사태와 관련해 철저한 진상규명 의지를 거듭 밝히고 부동산 부패 근절을 위한 강력한 메시지를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전날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협의회를 열고 재발 방지 대책을 사전 논의했다. 당·정·청은 이날 재산등록 대상을 모든 공직자로 확대하고, 부동산 관련 업무를 보는 공직자는 업무 관련 지역의 부동산 신규 취득을 원칙적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공직자 이해충돌방지 제도화, 시장교란행위 시 최대 5배 부당이익 환수, 농지취득심사·특별사법경찰제도 도입 등 관리강화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투기·부패방지 5법' 중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 등 3개는 지난 2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의 경우 업무 수행 중 알게 된 내부 정보를 활용해 부동산 투기에 나선 공직자에게 5년 이하 징역이나 투기로 얻은 이익의 최대 5배에 달하는 벌금을 매길 수 있게 했다. 투기 이익이 50억원 이상이면 최대 무기징역까지 형량이 늘어난다.

    공직자윤리법 개정안은 LH를 비롯해 부동산 관련 업무를 맡거나 정보를 다루는 공직유관단체 직원의 재산등록을 의무화했다. 이들 직원과 이해관계인은 업무 관련성이 있는 부동산의 취득도 제한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법 개정안은 LH 임직원과 퇴직한 지 10년이 안 된 직원이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부동산을 거래하면 투기로 얻은 이익을 모두 몰수·추징하고 5년 이하의 징역이나 이익의 3∼5배 벌금을 매길 수 있게 했다. 다만 개정 LH법은 이번 사태를 촉발한 3기 신도시 투기 연루 LH 직원에게는 소급해 적용하지 않는다는 한계가 있다.
  • ▲ 민주당.ⓒ연합뉴스
    ▲ 민주당.ⓒ연합뉴스
    당·정·청은 전날 협의회에서 이미 본회의를 통과한 이들 법안을 보완하겠다고 밝힌 셈이다. 특히 공직자의 부당이익 몰수에 대해 법 시행 이전 사례까지 거슬러서 미치게 하는 소급적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태년 민주당 대표직무대행은 "현행법으로도 공직자 부동산 투기의 부당이익을 몰수하고 있고 이미 추진 중"이라면서도 "미진한 부분이 있다고 판단되면 몰수를 위한 소급입법에 나서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고 강조했다. 일반적으로 범죄행위가 발생한 시점보다 나중에 만들어진 법률 조항을 소급 적용해 처벌하는 것은 위헌이지만,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처럼 소급적용을 인정한 입법사례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민주당이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여론의 눈치를 살피다 보니 입법을 애들 장난처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앞서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법안소위는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을 심사하는 과정에서 재산 몰수·추징 조항과 관련해 갑론을박을 벌였다. 일부 의원은 이번 사태를 촉발한 LH 직원들의 범죄 혐의가 수사를 통해 밝혀졌을 때 3기 신도시 땅을 몰수하려면 소급 적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때 소급적용 사례로 든 게 '친일재산귀속특별법'이었다.

    반면 소위원장이자 법조인 출신인 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소급 조항은 백발백중 위헌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헌법을 뛰어넘는 입법을 할 순 없는 것"이라며 "국민의 법 감정을 생각하면 소급적용하는 게 시원하겠지만,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고 반대했다. 조 의원은 친일재산귀속특별법에 대해 "일제강점기 친일 행위가 당시엔 이를 처벌하는 법이 없었지만 자연법으로 봐도 분명히 범행에 해당하고 양심의 가책이 있었을 것이기에 이후에 처벌조항이 생겼을 때 소급효가 극히 예외적으로 인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 ▲ 부동산투기 규탄 기자회견.ⓒ연합뉴스
    ▲ 부동산투기 규탄 기자회견.ⓒ연합뉴스
    전문가들도 민주당의 소급적용 발언에 적절하지 않다는 견해다. 정수연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소급적용은 (위헌 소지가 다분해) 해봤자 소용이 없을 것"이라며 "(정치권에서) 뭔가를 보여주려고, 누구를 때려잡자는 식으로 접근하는데 재발 방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이번 사태가 다 밝혀진 것도 아니다. 급한 것은 이해충돌방지법을 조속히 추진하는 것"이라며 "우리나라는 공직자가 문제가 생겼을 때 사표를 내면 끝이다. 미국은 무조건 법정에 세운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미공개된 내부정보를 이용해 투기를 벌인 것으로, 재발 방지를 위한 입법 조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굳이 순서를 따진다면 (정부는) 그동안 1주택자를 투기꾼으로 몰아온 것부터 사과해야 한다"면서 "(정책적으로) 집값을 올려 세금을 걷고 강남에 집 한 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민을 투기꾼 취급한 것부터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투기 관련자들을 엄하게 처벌하는 것은 맞지만, 소급입법까지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 "문제 된 부분은 당연히 고쳐야 하지만, 과거에 제도가 미비해서 발생한 부분에 대해 잘못했으니 옛날 것까지 죄다 (법을) 적용하겠다는 것은 법적 안정성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3기 신도시 땅 투기 혐의를 받는 LH 직원들의 재산 몰수와 관련해선 "정책적으로 3기 신도시 지정 취소가 가능할 것"이라며 "(지정이 취소되면) 토지보상 등을 통해 부당이익을 얻을 수 없게 된다"고 덧붙였다. 성 교수는 재산공개를 모든 공무원으로 확대하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다. 그는 "부동산 관련 업무를 맡은 사람들의 문제를 일반 공무원 전체로 확대하는 것은 과잉 대응"이라며 "(부동산 관련) 업무에 노출된 사람을 위주로 접근해야지 공직자 전체를 적폐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