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산세 속 파업 ‘부담감’… 마라톤협상 이어가다 극적 타결보건의료 전반을 아우르는 합의문, 처우 개선부터 공공의료까지건정심 통해 간호사 1인당 환자수 법제화 등 추진
  • ▲ 좌측부터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과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이 2일 새벽 노정교섭을 타결한 뒤 합의문을 들고 있다. ⓒ보건복지부
    ▲ 좌측부터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과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이 2일 새벽 노정교섭을 타결한 뒤 합의문을 들고 있다. ⓒ보건복지부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보건복지부와의 마라톤협상 끝에 총파업을 철회했다. 이에 따라 전국 의료기관은 비상 가동체계 전환 없이 업무를 진행한다. 코로나19 확산세로 빨간불 켜진 의료체계에 기름을 붓는 ‘대란’은 가까스로 막았다. 

    동시에 남은 숙제도 많아졌다. 파업을 막은 대신에 보건의료 인력 처우 개선과 공공의료 확충이라는 굵직한 정책적 변화가 시작돼야 한다. 노정교섭 합의문에는 단기간에 처리되기 어려운 내용이 많아 정책설계 과정에서 논란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 코로나 시국 속 파업 부담감… ‘극적 타결’ 결론 

    보건복지부와 보건의료노조는 2일 오전 7시로 예정된 총파업을 5시간 남겨둔 새벽 2시경 극적으로 협상을 타결했다.

    양측은 당초 1일 밤 9시에 협상결과를 발표하기로 했지만 오후 11시로 미뤄졌고, 다시 2일 오전 2시로 연기될 정도로 치열한 접전이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 4차 대유행 시기에 파업에 돌입하는 것은 양측 모두 부담이 컸고, 길고 긴 협의 끝에 합의문을 만들었다. 지난 5월부터 총 13차례나 진행된 노정교섭이 극적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막판까지 협의를 이어간 과제는 ▲코로나19 치료병원 인력 기준 마련 및 생명안전수당 제도화 ▲전국 70개 중진료권마다 공공병원 확충 ▲간호사 대비 환자 비율 법제화 ▲교육전담간호사 지원제도 확대 ▲야간 간호료 지원 확대 등이다.

    이날 권덕철 복지부장관은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환자의 안전을 보호해야 한다는 공통의 목표와 인식이 있었기에 대화와 소통을 통한 합의안 마련이 가능했다”며 “복지부 역시 오늘 합의된 사항을 관계 부처, 국회 등과 성실하게 협의해나겠다”고 말했다.

    나순자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1년 8개월째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 환자 치료와 돌봄에 희생·헌신해 온 보건의료노동자가 보다 나은 근무환경에서 환자를 돌볼 수 있도록 근무환경 개선, 노동권익 향상과 처우개선 과제를 심도있게 협의했다”고 밝혔다. 

    ◆ 보건의료 전반이 담긴 합의문… 처우 개선부터 공공병원 확충까지 

    진통 끝에 만들어진 합의문에는 ‘공공의료 강화, 감염병 대응체계 구축. 인력 확충 및 처우 개선’ 등 보건의료체계 근간을 아우르는 내용이 담겼다. 

    먼저 가장 큰 쟁점이었던 간호인력 처우 개선을 위해 현재 간호등급 차등제를 ‘간호사 1인당 실제 환자 수(ratios) 기준’으로 상향 개편하기로 했다. 개편 방안은 내년에 마련해 2023년 시행하되 구체적 시행시기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를 통해 최종 확정하기로 했다.

    야간간호료 및 야간전담간호사관리료 역시 건정심을 통해 내년부터 모든 의료기관에 대해 적용하기로 했다. 또 교대근무제를 비롯한 간호사 근무환경 조성 관련 시범사업을 마련해 내년 3월 이전 시행한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내년 상반기 중 참여를 희망하는 300병상 이상 급성기 병원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2026년 이전에 시행할 계획이다. 

    코로나19 등 감염병 상황에서 환자를 돌보는 보건의료인력에게 지급하는 지원금인 '생명안전수당'(감염관리수당)을 내년부터 국고로 지원토록 제도화한다.

    합의문에 근거해 복지부는 코로나19 중증도별 근무 간호사 배치 기준을 이달까지 마련하고, 세부 실행방안도 내달까지 별도로 마련하기로 했다. 신종감염병에 대응한 병상자원 관리체계 구축을 위해 의료인력 기준에 대한 정책연구도 추진한다.

    공공병원 확충도 이뤄진다. 오는 2025년까지 70여개 중진료권 마다 1개 이상의 책임의료기관을 지정해 운영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현행 예비타당성 조사를 개선하고 신청 요건을 갖춘 경우 이 조사를 면제받을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도 합의문에 담겼다.

    70개 중진료권 가운데 20개 지역에서 공공의료기관이 부족한 상황인데 지역주민의 강한 요청이 있는 울산, 광주, 인천, 대구, 동부산, 제천 등의 경우 해당 지방자치단체 및 재정당국과 논의해 공공병원 설립을 추진한다.

    2024년까지 권역 감염병 전문병원 4곳을 설립해 운영하고 2026년까지 중앙감염병전문병원 완공 등에 노력한다는 내용도 합의문에 포함됐다. 

    복지부는 재정이 열악한 지방자치단체가 지방의료원을 설립할 수 있도록 부담완화 방안도 올해 마련한다. 공공병원 확충과 관련해 논의가 필요한 사안은 보건의료노조가 참여하는 ‘공공의료 확충 및 강화 추진 협의체(가칭)’를 구성해 다루기로 했다.

    보건의료노조 관계자는 “만성적인 인력 부족과 열악한 근무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새로운 전환점이 이 마련됐다”며 “파업을 준비했던 조합원들은 의료현장에서 코로나19 극복과 함께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료대란을 노린 파업이 아니라 방역 붕괴와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세상에서 가장 절박한 파업”이었다며 “오늘 합의사항이 충실히 이행되도록 정부가 책임있는 역할을 다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