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들에게 바란다… 난임 시술 ‘소득제한’ 폐지 필수과제의료현장서 요구 많은 ‘레코벨·리피오돌’ 급여기준 확대 난자 동결 보존 제도권 진입… 공공정자은행 설치도 ‘시급’
  • ▲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 ⓒ대한산부인과의사회
    ▲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 ⓒ대한산부인과의사회
    차기 정부에서는 기존 난임 정책을 전면 재정비하고 현명한 방향성을 정립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아이를 원하는 부부를 대상으로 보장성 혜택을 집중지원하는 방식으로 ‘난임 국가책임제’ 적용이 필수과제로 떠올랐다. 

    최근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본지를 통해 대선후보들이 신중히 고민해야 공약 중 하나로 난임 정책과 관련 몇 가지 제안을 건넸다.

    저출산 문제는 우리나라가 시급히 풀어야 할 중요한 과제다. 이를 위해 실효성 있는 난임 정책은 필수적이다. 문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 문제를 두고 다양한 논의가 이뤄졌지만 오히려 역행하는 추세라는 것. 먼저 실패한 정책을 반면교사로 삼아 보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 난임 시술 ‘소득제한’ 폐지… 비급여 약제 보장범위 확대 

    김 회장은 “난임 정책은 아이를 안 낳겠다는 부부에게 낳으라고 할 게 아니라 낳고 싶다는 부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하는 것이 핵심”이라며 “난임 시술을 지원받기 위해 소득 기준이 제한이 걸려 있는데 이를 폐지하는 것이 선결과제”라고 진단했다. 

    현행 모자보건법 제 11조에 따라 정부는 난임 치료를 위한 시술비 지원을 하고 있지만 시술비를 지원받는 대상은 기준중위소득 180%(올해 기준 556만원) 이하이거나 기초생활보장수급자 및 차상위 계층이다. 

    그러나 난임 시술은 실패가 거듭되면 본인부담 비용이 수천만원대로 올라가는 등 비용 부담이 많이 발생한다. 때문에 기존 소득기준 제한으로 혜택을 받지 못하는 맞벌이 부부에게도 지원책이 발동돼야 한다는 진단이다. 

    실제 보건복지부 자료에 따르면 난임 진단자는 2019년 기준 21만375명으로 집계됐는데 난임 시술 지원을 받은 인원은 고작 4만1283명에 불과했다. 결국 정부지원을 통해 탄생한 출생아도 2017년 2만854명에서 2018년 1만3569명, 2019년 6767명으로 매해 줄어들고 있다. 

    김 회장은 “난임 극복을 위한 지원 대상을 소득과 상관없이 임신을 원하는 모든 난임 여성에게 지원을 전면 확대해야 한다”며 “안전성과 효과성이 입증된 난임 시술을 중심으로 지원 범위와 횟수를 폐지하는 것이 필수”라고 주장했다. 

    동시에 난임 관련 의학적 시술 중 여전히 비급여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으로 점진적 급여화가 추진돼야 한다는 진단이다. 

    일례로 과배란 유도에 사용되는 ‘레코벨(성분명 폴리트로핀 델타)’ 병용요법의 제한이다. 레코벨 처방시 필요한 항뮬러관호르몬(AMH) 검사는 연 1회 급여가 가능해 단독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타 약제와 병용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는 비급여다. 

    난관 조형술 조영제 ‘리피오돌’의 급여기준 확대도 중요한 부분이다. 해당 약제는 림프조영, 침샘조영, 간암의 경동맥화학색전술 시행 시에만 제도권 내 보장이 가능하지만 난임 진단 검사 중인 여성이 ‘자궁난관조영’을 받을 경우에는 약값 전액을 환자가 부담하고 있다.

    김 회장은 “국가가 저출산 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실제 난임 시술시 필요한 영역에서 발생하는 제한적 급여기준을 확대하는 등 보장성 강화 조치도 동시에 추진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난자 동결 보존 제도권 진입… 남성 불임도 책임져야 

    차기 정권에서는 현행 난임 정책에서 간과된 부분도 수면 위로 올려야 한다는 진단이다. 대표적으로 정자-난자 장기간 동결 및 보존 행위, 공공정자은행 설립과 불임 남성 지원책 등이 거론됐다. 

    김 회장은 “결혼이 늦어지더라도 임신이 안 되는 경우를 위해 정자·난자를 장기간 동결·보존하는 행위가 늘고 있지만 막대한 비용부담을 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출산율과 국가경쟁력 제고 차원에서 특히 미혼여성 난자 동결·보존을 제도권으로 진입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 출산율은 전년보다 0.08명 감소한 0.84명으로 2017년 이후 4년 연속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고 있다. 2019년 기준 첫 자녀를 출산한 모(母)의 평균 연령은 전년 대비 0.3세 높은 32.2세로 1993년 이후 매년 높아지는 추세이다. 

    김 회장은 “늦은 결혼에 출산까지 미루는 요즘 세태를 감안해 정자·난자를 장기간 동결·보존하는 데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시급하다”며 “젊을 때 냉동해 놓은 난자로 IVF(시험관아기 시술)를 하면 임신율이 높다”고 설명했다. 

    ‘공공정자은행’ 설치도 주요 과제로 꼽혔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해당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고 정자 제공자에게 금전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제공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는 “현재 난임 부부가 직접 정자를 구해야 하는 어려움이 발생하고 있고 지금 같은 규제 속에서 불법으로 정자, 난자를 거래하는 ‘블랙마켓’을 양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하루빨리 공공 정자은행을 설치해 남성 난임 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부는 매년 수십조원을 저출산 대책에 쏟아붓고 있다. 올해도 46억원이나 투입됐는데도 실효성은 떨어지는 상황”이라며 “그 막대한 예산을 출산을 원하는 사람에게 집중 지원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대선 후보들을 향해 난임 정책 개선방안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