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째 영리병원 설립 ‘뜨거운 감자’… 시민단체 ‘강력 반발’ 제주도 개설 허가 취소 ‘부당’, 3개월 내 운영 어려운 ‘정당한 사유’ 인정디아나서울 인수로 녹지국제병원 사실상 1호 영리병원 ‘불가능’
  • ▲ 옛 녹지국제병원 건물. ⓒ연합뉴스
    ▲ 옛 녹지국제병원 건물. ⓒ연합뉴스
    국내 첫 영리병원으로 추진됐던 녹지국제병원과 관련 제주도의 ‘개설 허가 취소’가 부당하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면서 후폭풍이 거세다. 과거 노무현 정부로부터 시작된 영리병원 설립 논란은 18년째 뜨거운 감자다.

    현재 녹지국제병원은 국내 업체가 인수하며 비영리 체계로 전환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사실상 영리병원 가능성은 극히 낮은 상태다. 그런데도 시민사회단체의 반발이 거센 이유는 재판부가 영리병원 설립의 물꼬를 터줬다는 우려 때문이다.

    ◆ 개설 허가 ‘3개월’ 쟁점, 녹지국제에 손 들어준 대법원

    대법원 특별1부는 지난 13일 녹지제주헬스케어타운 유한회사(녹지국제)가 제주특별자치도를 상대로 제기한 외국의료기관 개설허가취소처분 취소 소송에 대해 제주도의 상고에 대해 심리불속행 기각을 결정했다. 

    심리불속행 기각은 상고이유에 관한 주장이 타당한 사유를 포함하지 않으면 본안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쟁점은 의료법 제64조(개설 허가 취소 등)의 근거를 둔 개설 허가 취소가 정당한지 여부로 좁혀진다. 해당 법에는 ‘개설 신고나 개설 허가를 한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정당한 사유 없이 업무를 시작하지 아니한 때 개설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고 명시됐다.

    앞서 녹지국제는 2018년 12월 개설 허가를 받고도 기간 내(2019년 3월4일까지) 개원을 하지 않았고 이에 제주도는 청문절차를 거쳐 개설 허가를 전격 취소했다. 

    1심 재판부는 제주도의 허가 취소가 위법이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2심 재판부는 “원고가 이 사건 개설 허가를 받은 날부터 3개월 이내에 병원을 개원해 업무를 시작하지 못한 것에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판단했다. 

    ‘내국인 진료금지’ 허가조건 등 붙으면서 사업계획 변경이 불가피한 시기였다는 점이 받아들여졌다. 대법원 역시 동일한 결정을 내렸고 최종적으로 녹지국제에 손을 들어준 것이다. 

    ◆ 1호 영리병원 재추진 사실상 ‘불가능’ 

    녹지국제병원이 영리병원으로 운영될 가능성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국내 업체인 디아나서울이 약 80%의 지분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제주특별법 의료기관 개설 특례에 따르면, 부동산에 대한 외국인 투자 비율이 50% 이상이어야 개설이 가능하다. 현재 디아나서울이 그 이상을 갖게 된 상황으로 만약 녹지국제가 다시 영리병원을 추진하기 어려운 구조다.

    풀어야 할 숙제도 있다. 제주도 의료법인 설립 지침에 따르면 의료기관을 설치할 대지와 건물 100%를 법인 소유로 확보해야 하므로 최종적으론 지분을 나눠 갖지는 못한다. 

    녹지국제가 지분 20%를 의료법인에 출연하는 등 과정을 거쳐 디아나서울이 지분 100%를 확보하는 것이 쟁점이다. 해당 회사 측도 “이러한 목표를 위해 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디아나서울은 최신 암치료기 도입과 치료, 난임치료, 세포치료 등 AI가 접목된 첨단 스마트병원으로 운영할 계획이며 근 시일내 법인을 다시 설립한 뒤 올해 상반기 안에는 병원을 개원한다는 계획이다.

    ◆ 시민단체의 격렬한 반대, 정치적 책임론까지 

    1호 영리병원으로 녹지국제병원이 설립될 가능성은 보이지 않지만 보건의료단체연합, 참여연대, 무상의료운동본부 등 보건의료 시민단체 차원에서 반발이 거세다. 

    이들은 대법원의 판결이 추후 영리병원 설립과 관련한 근거로 작용할 것이라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대법원이 제주 녹지국제병원 설립 허가를 취소해 달라는 국민적 요구를 짓밟고 심리조차 하지 않는 오만한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의 시대착오적이고 퇴행적 행태를 다시 한번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대법원의 결정도 영리병원 반대라는 정권의 단호한 의지가 있었다면 쉽사리 내려질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는 녹지국제병원 설립을 방조했을 뿐 아니라 의료영리화를 추진했다”고 말했다. 

    특히 원희룡 당시 제주도지사를 향한 비판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2018년 12월 5일 녹지국제병원을 조건부 허가했다는 원죄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 대유행과 이어질 감염병 사태에 대한 대처를 위해서는 공공의료의 확충이 필수 불가결하다. 그런데 영리병원은 또 다른 영리병원을 낳으며 공공의료를 약화할 게 뻔하다”고 강조했다.

    영리병원 반대 측은 진료 자체가 수익에 얽매일 수밖에 없어 의료비 지출 증가는 물론 건강보험 체계가 무너지고 의료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 길고 긴 영리병원 설립 논란 현재진행형 

    지난 2005년 외국인에 한해 영리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한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제주특별법)’ 제정안이 의결됐고 이후 2012년 인천, 부산·진해, 광양만권, 황해, 새만금·군산, 대구·경북, 충북, 동해안 등 경제자유구역 8곳으로 확대됐다. 

    2013년에는 중국 의료법인 CSC그룹이 싼얼병원 설립 계획서를 제주도에 제출했으나 이후 설립자가 경제사범으로 몰리면서 자연스럽게 무산됐다. 이어 녹지국제가 녹지국제병원 설립을 추진하면서 장기간에 걸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시기에 공공의료의 가치가 중요해지면서 영리병원의 ‘영’자만 나와도 거센 반발이 일어나고 있다. 때문에 기존에 영리병원을 찬성하던 학자들도 수면 아래에 숨은 모양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일반 산업군처럼 의료 역시 투자나 자본 조달이 높아지면 서비스 품질이 올라갈 것”이라며 “특히 제주의 경우 의료관광 활성화를 통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내국인 진료에 제한을 둔 채 몇 병상 되지도 않는 영리병원이 운영된다고 건강보험 체계를 흔든다는 것은 어불성성이다. 건강보험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이득을 취하는 방법에 대해 논의해야 할 시기”라고 밝혔다. 

    한편, 제주도가 녹지국제병원 개설을 허가할 때 내건 ‘내국인 진료 제한’ 조건이 적법한 지 여부를 따지는 재판도 곧 시작된다. 제주지방법원은 오는 3월 8일 녹지국제가 제주도지사를 상대로 제기한 ‘외국 의료기관 개설 허가 조건 취소 청구 소송’의 4차 공판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