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혈족6촌·인척4촌→혈족4촌·인척3촌'재계 "배우자·직계존비속·형제자매 정도가 타당" 동일인지정제 원론적 지적도…한기정 "폐지 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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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동일인 친족 범위를 놓고 정부와 재계가 치열한 기싸움을 벌이는 모양새다. 정부는 대통령인수위원회 시절부터 기업의 모래주머니를 없애겠다며 동일인 친족 범위 완화안을 들고 나왔지만, 재계 입장에선 여전히 부족하다는 분위기다.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달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 동일인의 친족범위를 현행 혈족 6촌, 인척 4촌에서 혈족 4촌, 인척 3촌으로 축소하고 친생자가 있는 사실혼 배우자를 친족에 포함시키기로 했다.동일인 친족 범위가 중요한 이유는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완화하기 위한 규제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동일인은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로 해석되며 지배력 기준에는 동일인의 친족도 포함된다.동일인은 자신의 친족들의 주식소유 현황과 같은 지정자료를 매년 제출해야 하며 이를 제출하지 않으면 고의성이 없더라도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5000만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사실상 강제인 셈이다.하지만 우리 사회가 핵가족화되면서 동일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혈족 6촌과 인척 4촌의 자료제출을 사실상 강제하는 제도가 현 시대와는 맞지 않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에 정부는 시행령 개정을 통해 친족 범위 축소에 나섰다.하지만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공정위의 시행령 개정안에 대해 재검토해야 한다며 들고 일어났다.경총은 "동일인이 개인정보에 해당하는 주식소유 현황 등의 자료를 제출받아 그 진위까지 담보할 수 있는 친족의 범위는 사실상 직계존비속이나 형제·자매 정도"라며 "해외 주요국 경쟁법에는 우리나라와 같은 친족 기반의 대기업집단 규제가 아예 없고, 회사법(상법) 등에서 예외적으로 일정 범위의 가족을 포함하는 규제가 있기는 하나, 그 범위도 대부분 2촌 이내 혈족·인척 수준에 그친다"고 지적했다.전경련은 "공정위의 시행령 개정안이 여전히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친족 범위를 동일인의 직계 존비속 및 배우자와 그 직계존속으로 축소하고 사실혼 배우자를 포함하는 것도 삭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경련은 "사실혼 관계가 성립 여부에 대한 판단 기준은 경우에 따라 다르고 그 기준도 모호해 법원이 아닌 제3의 기관에서 판단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일각에서는 동일인 지정 제도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1960년 이후 고도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소수 기업에 자산이 크게 집중됐고, 이는 향후 자원배분 비효율성, 소비자 후생 저하 등을 야기해 경제발전을 어렵게 만든다는 지적에 따라 나온 제도가 바로 동일인 지정이다.고도의 경제성장 시기를 지난 현 시점에서 대규모 기업집단의 동일인을 지정하고, 동일인 관련자 기준을 마련해 제재대상으로 삼는 제도 자체가 시대착오적이란 지적이다.지인엽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념에 경도되고 대중정서에 의존하는 제도는 경계해야 한다"며 "제도 설계는 과학적으로 해야 하는데, 제가 실증분석을 한 바로는 현행 동일인 관련자 범위의 실효성이 없다. 공정위 시행령 개정안에 따른 실증분석 결과도 의미있게 나오지 않았다"고 설명했다.지 교수는 "재계가 주장하는 동일인 친족 범위를 배우자와 직계존비속, 형제·자매로 하자는 것은 어느 정도 과학적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이것은 평균적인 것이고, 일부 기업집단은 혈족 4촌임에도 어느 정도 유의미한 결과가 나왔기 때문에 시행령 개정안은 더 검토를 해봐야 한다. 사실혼 배우자는 사인간 문제이기 때문에 명확한 규제가 어려워 같이 검토해야 할 부분"이라고 강조했다.지 교수가 최근 자유기업원을 통해 발표한 '공정거래법상 동일인 지정제도 현황과 문제점에 대한 법경제학적 소고'에 따르면 2021년 공시대상기업집단으로 지정된 71개 기업집단 2613개 계열회사 분석 결과, 동일인은 평균 5.4%의 지분을 가지고 있으며 배우자·혈족 1촌 2.7%, 임원 2.4%, 혈족 2~4촌 1.9% 순으로 지분율이 높았다.다만 지난 16일 취임한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당장 동일인 제도 폐지 등을 검토할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 정부가 시행령 개정안보다 더 완화된 안을 들고 나오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한 위원장은 지난 19일 기자간담회에서 동일인 제도 폐지와 관련해 "대규모기업집단 규제는 기업집단의 투명성·책임성과 관련해 공정한 경쟁기반을 마련하는 차원에서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제도"라며 "대기업집단 제도의 근본을 흔들 생각은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