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 이후 13년 6개월 만에 1400원 돌파수출 및 달러 대금 비중 큰 업종 ‘고환율 수혜’철강·항공사는 원자재·리스 비용 커져 손실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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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달러 환율이 13년 6개월 만에 처음으로 1400원을 넘어서면서 업종별 희비가 갈리고 있다. 수출 비중이 높은 자동차·조선 등은 고환율에 따라 이익폭이 커져 호재인 반면, 원재료 수입 의존도가 높고 이를 달러로 결제하는 철강·항공 등은 부담이 커지게 됐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22일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5원50전 오른 달러당 1409원70전에 거래를 마쳤다. 원·달러 환율이 마지막으로 1400원대를 기록한 것은 지난 2009년 3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다.

    원·달러 환율의 가파른 상승세에 산업계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통상 수출 비중이 크고 판매 대금을 달러로 받는 업종은 고환율에 따른 반사이익을 거둘 수 있다. 핵심 원재료와 원유 등 수입 의존도가 높은 업종은 고환율로 인한 비용 부담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자동차·조선·제지·상사 고환율 기조에 ‘흐뭇’

    자동차 업종은 대표적인 고환율 수혜업종으로 꼽힌다. 완성차 업체들이 자국에서 차량을 생산해 해외에 수출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환율이 상승하면 이익 규모가 증가하는 구조다.

    실제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우호적인 환율효과까지 더해지면서 올해 역대급 실적을 기록했다. 현대차와 기아의 2분기 환율효과는 각각 6000억원, 5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현대차 관계자는 “올해 2분기 원달러 평균 환율은 전년 동기 대비 12.3% 증가한 1260원 수준이었다”면서 “환율효과로 수익성이 더욱 개선됐다”고 설명했다.

    최근 환율이 더 오름에 따라 하반기 자동차 업계의 실적도 더 좋을 것이란 분석이 제기된다.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현대차 매출은 1200억원, 기아차 매출은 800억원이 늘어나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조선업종도 고환율에 웃음 짓고 있다. 선박 건조대금을 달러로 받는 조선업계는 계약 당시보다 환율이 오르면 매출이 늘어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조선업 특성상 수출 의존도가 높으며, 선박 수주 계약이 적게는 수백억원에서 많게는 조 단위로도 이뤄져 소폭의 환율 상승도 큰폭의 이익폭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조선업 선박 및 해양플랜트 계약의 사실상 대부분이 달러화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고환율의 달러화 수주는 이익폭 증가로 이어진다”며 “현재 선가가 역대급 고점을 나타내고 있고, 여기에 고환율이 지속되며 업계 입장에선 호재”라고 전했다.

    제지업계 역시 달러 강세에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수출 비중이 전체 매출의 절반 달하는 제지업계는 대표적인 고환율 수혜업종으로 꼽힌다. 제지업계는 평균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약 25억원의 영업이익 개선 효과를 누린다.

    올 상반기부터 고환율 기조가 이어지면서 제지기업들은 큰 폭의 실적 개선을 이뤘다. 업계 1위 한솔제지의 올해 상반기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815억300만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109.1% 뛰었다. 같은 기간 무림페이퍼의 영업이익은 284억7000만원으로 61.5% 올랐다.

    종이의 주원료인 펄프 가격 급등 같은 원자재 리스크도 상존하고 있지만 한솔제지·무림페이퍼 등 제지기업들은 올해 1월과 5월, 9월 등 세 차례의 종이 가격 인상을 단행하며 원자재 부담을 덜어내고 있다.

    중개무역(트레이딩)을 주로 하는 종합상사도 환율 상승이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원자재를 수입해 직접 사용하는 것이 아닌 수요와 공급을 연결해주는 중간다리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다. 트레이딩은 기업 간 거래를 중개하고 약정한 일정 비율로 수수료를 얻어 수익을 낸다.

    환율이 오르면 중개하는 상품 가격이 상승하면서 트레이딩 매출 규모가 커지고 수수료 역시 거래 대금에 비례해 늘어난다. 아울러 거래는 달러로 하지만 장부에는 원화로 환산해 표시되기 때문에 매출액과 영업이익도 가시적으로 증가한다. 고환율이 리스크로 작용하지 않는 이유다.

    일례로 LX인터내셔널의 경우 올해 상반기 기준 환율 10% 상승으로 얻는 세전순이익(다른 변수 동일) 319억원에 달한다. 작년 상반기 209억원과 비교하면 52.6% 증가한 수준이다.

    ◆철강·항공업계 ‘우울’… 업종 모두 지나친 고환율은 ‘경계’

    원재료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업종은 원·달러 환율 상승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철강 분야는 고환율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 포스코, 현대제철, 동국제강 등 주요 철강 업체들은 수출 시 환율 헤지를 하고 있지만 철광석 증 주요 원자재의 수입 비용이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당초 철강업계는 하반기 글로벌 경기침체와 수요 위축으로 3~4분기 실적이 하락할 것으로 예측했다. 게다가 원자재 가격 상승을 제품가격에 온전히 반영하기 어려워 악재가 겹쳤다는 분위기다.

    고환율에 가장 걱정이 큰 곳은 항공업계다. 유류비와 항공기 리스(대여)료, 영공 통과료 등 모든 대금을 달러로 결제하는 항공사들은 환율이 오르는 만큼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환율이 10원 조정될 때마다 대한항공은 350억원, 아시아나항공은 284억원의 외화 환산 손익이 발생한다. 지난 2분기 기준 대한항공은 1940억원의 환손실을 입었으며 아시아나항공도 2747억원의 환손실을 봤다.

    항공업계는 달러 가치 변동에 대비해 헷지(위험회피) 상품 가입과 통화스왑계약 등으로 고환율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고환율로 인한 여행 수요 위축 가능성이 대두되면서 환손실과 수요 감소 이중고를 겪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최근 유가가 떨어지면서 업계에 플러스가 될 만한 호재들이 고환율로 희석됐다”며 “여행심리 위축이 우려되는 상황이나, 입국 후 PCR 면제나 일본 무비자 관광이 재개된다면 상황이 조금 더 나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고환율에 따른 업종별 희비가 뚜렷한 가운데 자동차, 조선 등 고환율 수혜 업종에서도 지나치게 높은 환율이 장기적으로 비용 부담을 부추길 수 있다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환율이 지나치게 높아질 경우 원자재 가격 상승의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철강석 등 원자재 수입가격도 동반상승하게 되므로 각종 자재 대금의 인상 효과를 가져올 수 있어 환율 변동을 모니터링하며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현재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 달러에 대한 원화 환율은 전일보다 0.1원 오른 1409.8원에 거래되고 있다. 이날 오전 9시 5분 원·달러 환율은 1405원을 기록하며 전일보다 소폭 하락했지만, 다시 상승 전환했다.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이 고강도 긴축 기조를 재확인함에 따라 달러 강세가 지속, 환율이 1422.7원까지 더 오를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