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기재부 궁여지책단발성 효과 의문… 영국 100조 처럼 펀더멘털 없어내달 빅스텝 명분 희석… 시장반응 주목
  • 정부가 5조원 규모의 국고채 매입에 나선다. 하루만에 이정도 자금을 시장에 투입한 적은 여지껏 없던 일이다. 환율이 급등하고 채권시장이 급격한 약세를 거듭하면서 내린 특단으로 보인다.

    29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한국은행은 이날 오전 3조원 규모의 국고채 단순매입을 실시한다. 최근 금리 변동성 확대에 대응하기 위함이라고 한은은 설명했다. 매입대상은 3년물과 5년물, 10년물이다. 기획재정부도 30일 2조원 규모의 긴급 바이백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재정과 통화당국이 일시에 국고채를 사들이는 것이다.

    1년간 지속된 기준금리 인상과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 긴축폭이 가팔라지면서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지난 26일 4.55%까지 치솟았다. 이창용 한은 총재가 국회 업무보고에서 기준금리 0.5%p 인상하는 빅스텝 가능성을 시사하면서다. 그러더니 다음날인 28일에는 하루만에 0.24%p 급락한 4.30%를 기록했다. 2010년 9월 이후 12년만에 최대폭 하락이다.

    널뛰는 국채 금리는 시중은행 유동성을 위협하고 있다. 27일 KDB산업은행이 발행한 변동금리부채권 1년물은 양도성예금증서(CD) 1개월물에 0.6%p 가산금리로 결정됐다. 산은 역사상 최대 금리다. IBK기업은행이 발행한 중소기업금융채권 금리는 5.09%에 달했다. 시중은행보다 한단계 위 신용 안정성을 자랑하는 산은과 기은 자금조달 능력이 흔들리는 셈이다. 주택금융공사는 다음달 주택저당증권(MBS) 발행을 취소할 계획이다.

    외환시장도 아수라장이다. 원/달러 환율은 전날 1442원을 터치하고 1439.9원에 마감했다. 시장에서는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에 따른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1570.3원에 근접할 것으로 전망한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연준이 내년까지 긴축 시그널을 내고 있지만, 한국은 이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형성돼 있다"며 "달러 수급이 원활해지지 않으면서 환율 변동성이 커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뉴데일리DB
    ▲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뉴데일리DB
    다만 5조원 규모의 재정개입으로 채권시장 약세를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정책 당국의 안정화 의지도 중요하지만 환율 안정이 먼저'라며 "신용시장 불안도 시급하기 때문에 시장이 한번에 안정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시중은행 관계자도 "자칫 기재부의 정책 중점이 물가에서 경기로 이동했다는 해석을 낳을 수 있다"며 "이럴 경우 정점에 오른 물가가 재반등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은은 시장금리가 일시적으로 과도한 오버슈팅(급변동) 한다면 이를 완화하기 위해 국고채 매입을 실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금리 인상기에 중단기 채권에 조단위 지원을 나서는 것은 엇박자를 낼 가능성이 적지 않아 보인다. 정부부채를 중앙은행이 떠받치는 '부채의 화폐화' 논란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실제로 국고채 금리는 3년물 4.34% 5년물 4.37% 10년물 4.33% 20년물 4.21% 30년물 4.10%로 장단기 금리역전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10년을 투자하는 것보다 3년 혹은 5년물에 투자하는게 수익률이 높다. 경기침체 전조현상이다.

    이런 가운데 중단기 국채에 대한 투자는 침체를 용인한다는 시그널로 시장은 받아들일 수 있다. 예컨대 영란은행(BOE)는 정부의 대규모 감세정책으로 채권시장이 악화되자 20년물과 30년물 위주로 장기 국채 매입에 650억 파운드(약 100조)를 투입한다.

    중단기 채권이 기준금리에 영향이 크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한국은행은 당장 내달 12일 금융통화위원회 통화방향정책 결정회의를 갖는다. 이날 회의에서 빅스텝 가능성이 점쳐지는데 이번 국고채 매입이 효과를 반감시킬 수 있다. 금리를 올려 시중 통화 유동성을 흡수하면서 반대로 채권을 다시 사들이는 모순이다.

    시중은행 한 채권 운용역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이 엇갈리면 물가상승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오는 스태그플레이션 위험만 높일 수 있다"며 "영국처럼 천문학적인 재정을 투입할 여력 없이 단발성 국채 매입은 기준금리 인상 명분을 흐려 시장 혼란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