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잿값 상승에 대출 중단 겹악재부동산 시장 불안에 미착공 비율 높아져대형사는 저축은행 '기웃'-중견사는 '연쇄 도산' 우려
  • ▲ 서울 시내 아파트와 재건축 현장. 220915 ⓒ연합뉴스
    ▲ 서울 시내 아파트와 재건축 현장. 220915 ⓒ연합뉴스
    최근 건설·부동산업계에서는 강원도가 지급보증했던 레고랜드 테마파크 대출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의 부도처리 문제로 어수선하다. 지방자치단체가 보증한 만큼 리스크 관리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는데 강원도가 지난달말까지 지급이행을 하지 않은 것이다. 이제는 지자체가 참여한 PF사업도 믿을 수 없다는 사례가 된 것이다.

    가파른 금리 인상 여파로 부동산시장이 침체하면서 부동산 PF대출의 연쇄 부실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기업의 회사채 발행 부진으로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는 등 전반적인 자금시장 신용경색 조짐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건설·부동산업계의 '돈맥경화'도 심화하는 양상이다.

    대형건설사는 10년만에 저축은행 문을 두드리고 있으며 지역 중견건설사는 벌써 부도 처리한 곳이 나타났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부동산 PF 위기설이 불거지고 있다. 부동산 PF는 건설사가 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토지를 매입하고 건물을 올린뒤 분양 수익을 내는 구조다. 개발사업의 미래가치를 보고 자금을 미리 빌려주는 것이다. 최근 몇년간 부동산 호황기가 지속하자 금융권의 부동산 PF대출도 덩달아 급증했다.

    한국은행 집계를 보면 상반기 은행권과 제2금융권의 부동산 PF대출 잔액은 112조원에 달했다. 2014년 말 38조원에 비해 세 배 가까이 늘었다. 특히 고수익을 노린 증권사를 비롯한 제2금융권도 부동산 PF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금리 상승으로 부동산 투자 조달 비용이 증가하고, 인플레이션에 따른 원자잿값 폭등으로 공사비 부담까지 겹치면서 부동산개발 수익성이 나빠졌다. 올 들어 부동산시장 침체로 주택가격이 하락하고 미분양이 늘면서 투자금 회수에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지난달 발생한 강원 춘천 레고랜드 사태가 대표적이다. 강원도가 지급보증을 약속한 레고랜드 건설 관련 ABCP가 부도 처리되면서 단기자금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강원중도개발공사가 레고랜드 건설자금을 빌리려고 부동산 PF대출을 기반으로 약 2000억원 규모의 유동화 증권을 발행했는데, 시행사인 강원중도개발공사가 채무불이행에 빠진 것이다. 이에 유동화 증권과 연관된 증권사는 물론, 개인 투자자까지 피해가 확산하고 있다.

    때문에 최근 금융감독원은 금융권에 주택금융공사(LF)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보증이 된 PF 사업외에는 민간 PF 사업은 검토하지 말라고 지도하기도 했다. 금융권이 PF대출을 완전히 막아버리면 부동산시장의 침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공공기관의 보증이 된 PF만 안정적으로 운영하라는 것이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지자체 보증의 PF 사업마저 부도 처리되는 마당에 민간 PF 사업의 리파이낸싱은 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공사비는 오르지, 분양도 안 되는 상황이어서 개발사업 자체는 최대 내후년까지도 쳐다보지 말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자 최근 충남 지역 중견건설사인 W건설이 지난달말 도래한 전자어음을 결제하지 못해 부도 처리됐다. 지난달 만기 도래한 구매자금대출금 상환이 어려워지면서 거래 은행에 지급 제시한 전자어음을 결제하지 못했다.

    W건설은 충남권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중견사였다. 지난해 매출만 전년대비 59% 증가한 1232억원을 기록했다. 올해 충남권 건설업체 시공능력평가에서는 1314억원으로 6위를 기록했다. 최근에는 서울 강남에 사무소를 개설하는 등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보였으나 돌연 부도를 맞았다.

    업계에서는 W건설의 부도가 단순히 개별기업의 경영 실패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PF대출이 꽉 막힌데다 이자·원자잿값 부담, 수주 급감 등으로 건설업 자체가 침체하면서 어떤 건설사도 '부도 공포'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우려한다. W건설처럼 자본력이 크지 않은 중견사 사이에서는 '줄도산 위기설'까지 불거지고 있다.

    대형건설사들도 제2금융권의 문을 두드리고 나섰다.

    한국은행에 의하면 상반기 기준 은행권과 제2금융권의 부동산 PF 대출잔액은 112조원에 달한다. 2014년 이후 연평균 증가율이 약 15%다. 은행권이 6조9000억원 증가했지만 제2금융권은 70조1000억원 급증했다.

    뿐만 아니라 개발사업을 기초자산으로 증권사가 발행한 유동화 증권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152조원으로 늘어난다. 한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 농협, 수협, 새마을금고 등을 포함하면 총 규모는 200조원을 웃돌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현재 PF대출의 연체율은 낮은 편이다. 하지만 시장에서 우려하는 것은 '심리 위축'이다. 금리 인상에 따른 부동산시장 침체로 심리가 위축되고 금융권 대출도 막힌 가운데 소형 건설사의 부도 우려만으로 끝나지 않고, 대형사의 사업 위축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미 대형사 중에는 미착공 비율이 높아지는 곳들이 심심찮게 보이고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저축은행의 PF대출 연체율은 상반기 기준 1.8%에 불과하다. 10년 전 PF대출 연체로 촉발된 저축은행 사태 당시의 연체율이 25%였던 것과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지만,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인 만큼 지금부터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기업평가는 PF 우발채무에서 미착공 사업이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 대형사들의 미착공 비율이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우발채무는 일정 조건이 적용되면 채무가 되는 것을 말한다. 시장이 현재보다 침체하면 이 같은 우발채무는 '진짜' 채무가 되고 건설사들이 갚아야 할 돈이 그만큼 불어난다는 의미다.

    한기평은 상반기 기준 PF 우발채무 총액에 다양한 위험가중치를 반영한 결과 신용등급 'AA급'의 미착공 비율이 98.3%, 'A급' 87.4%, 'BBB급' 82.4%라고 분석했다.

    신용등급 'AA급'인 현대건설은 서울 강서구 가양동 CJ 부지사업 등 대부분 사업이 미착공이고 'A급' 롯데건설도 마찬가지다. 한기평은 상반기 기준 17개 건설사의 PF 우발채무 규모는 모두 15조8000억원으로 2018년말 13조5000억원보다 17%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증권사가 현재 PF대출 금리를 9~10%로 책정 중인데 금리가 10%를 넘어서면 아예 리파이낸싱조차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대출이 안 되면 공사비를 조달하기 어려워 그대로 미착공 상태가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유동화시장에 유례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만큼 정책당국의 조속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