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백 3.5초, 585마력 성능 체감해외관 EV6와 비슷,주행감 차이는 커안정적인 차체제어로 초보자도 운전가능
  • ▲ 시승한 EV6 GT 외관 ⓒ정원일 기자
    ▲ 시승한 EV6 GT 외관 ⓒ정원일 기자
    전기차의 등장으로 수입차 브랜드의 영역으로 여겨져 온 고성능 자동차 시장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기아의 고성능 전기차 ‘EV6 GT’도 출시 당시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스포츠카와 비견되는 성능으로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최근 충남 태안군에 있는 현대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에서 EV6 GT를 타고 3시간 가량 트랙과 주변 도로를 달렸다. EV6 GT는 국산차 역사상 가장 빠른 차량이다. 585마력(430kW)에 최대 토크 75.5kgf·m(740Nm)도 ‘마의 4초’를 깨고 제로백 3.5초를 달성했다.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았던 ‘고성능’과 ‘친환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첫인상은 익숙하게 다가왔다. 도로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기아의 히트작 ‘EV6’와 외관 차이가 거의 없어서다. 눈에 띄는 차이점은 기존 모델 대비 조금 더 커진 21인치 휠과 제동력이 강화된 네온컬러 캘리퍼 정도다. 하지만 가속페달을 밟는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아예 다른 차량으로 느껴졌다.

    공도에서 저속주행을 할 땐 넘치는 힘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고속 구간에서는 2.1톤에 달하는 공차 중량에도 불구하고 가속페달을 밟는 만큼 직관적으로 속도감이 더해지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통상 시속 100km 이상의 고속구간에서는 페달을 밟더라도 저속에서 고속 구간으로 이동할 때보다는 가속이 둔감해진다. 그러나 EV6 GT는 고속구간에서도 가속페달이 저속일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반응했다. 시속 140km까지 속도를 높여봤지만, 힘이 달린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할 정도였다. 이에 대해 기아 관계자는 “고성능 모델에 걸맞게 가속감을 느낄 수 있도록 페달감을 튜닝하기 위해 고심했다"고 설명했다.
  • ▲ 버킷시트와 D컷 스티어링 휠 등 GT모델만의 스포티함이 강조된 내부 ⓒ정원일 기자
    ▲ 버킷시트와 D컷 스티어링 휠 등 GT모델만의 스포티함이 강조된 내부 ⓒ정원일 기자
    서킷에서는 제로백 성능을 검증하는 시간을 가졌다. 인스트럭터의 신호에 맞춰 '풀악셀'을 밟아 시속 100km까지의 도달 시간을 측정하는 방식이었는데 페달을 밟자마자 몸이 뒤로 젖혀지면서 마치 비행기가 이륙할 때와 같은 가속감이 느껴졌다. 

    제로백 테스트는 노멀, 스포츠 그리고 GT모드에 걸쳐 세번 진행했는데, 노멀모드에서는 4.2초, 스포츠 모드에서는 3.8초, GT모드에서는 3.6초가 나와 주행모드별 가속력이 달라지는 것을 직접 체감할 수 있었다. 특히 GT모드의 경우 스티어링 휠에 부착된 형광색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별다른 조작 없이 서킷에 최적화된 주행모드로 각종 제어장치와 모터의 세팅이 맞춰지는데, 가속감에 있어서 노멀모드와 확연한 차이가 느껴졌다.

    마른 노면과 젖은 노면에서의 주행도 진행했다. 개인적으로는 고속으로 코너를 돌 때 차량의 진가가 느껴졌다. 미끄러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속도로 코너 구간을 통과할 때도 차체 안정성이 매우 높다는 느낌을 받아서다. 속도를 더 올리자 살짝 바퀴가 미끄러지기도 했지만, 곧바로 자세를 바로잡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튀어 나가려는 몸은 GT모델에 탑재되는 버킷시트가 안정적으로 잡아줬다.

    인스트럭터는 “폭발적인 성능을 발휘해도 VSM(차체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차체자세제어장치와 스티어링을 통합 제어하는 기능)과 e-LSD(곡선 구간에서 좌우 바퀴를 능동 제어하는 기능) 등을 통해 뛰어난 안정성을 발휘하기 때문에 초보자도 얼마든지 운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스트럭터와 동행한 고속 주회로에서도 안정성이 돋보였다. 해당 코스에서는 시속 260km까지 속도를 올려 성능을 여과 없이 체험할 수 있었다. 출발하고 불과 수 초 만에 시속 200km를 돌파했음에도 차량이 흔들리거나, 소음이 심하다는 느낌을 거의 받지 못했다.
  • ▲ 인스트럭터가 드리프트를 시연하고 있다 ⓒ정원일 기자
    ▲ 인스트럭터가 드리프트를 시연하고 있다 ⓒ정원일 기자
    드리프트도 체험할 수 있었다. EV6 GT는 따로 설정 버튼은 없지만 ‘드리프트 모드’를 지원한다. 일종의 히든 모드다. 지시에 따라 GT모드에서 ESC를 끄고 패들시프트를 3초간 당기니 화면에 드리프트 모드가 활성화됐다는 문구가 나타났다.

    드리프트 모드에서는 넘치는 성능을 안정적으로 제어하기 위한 장치들이 거의 전부 해제된다. 또한 후륜 모터에 최대 구동력을 배분해 '오버스티어'를 유도한다. 실제로 젖은 노면에서 원을 그리다 가속페달을 강하게 밟자 제어장치 개입 없이 곧바로 굉음을 내며 차량 뒷바퀴가 미끄러졌다. 주행에 있어 운전자의 개입 정도가 훨씬 높아지는 셈이다. 일반도로에서 사용한다면 아찔한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량의 성능을 극한까지 경험해보니 일상에서 EV6 GT의 폭발적인 성능을 온전히 발휘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오히려 전력 효율에 있어서는 일반 모델보다 떨어진다는 아쉬운 부분도 있다. 그러나 대중성이나 상품성을 논하기에 앞서 고성능과 안정성을 확보한 완성도 높은 차량이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EV6 GT의 가격은 7200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