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 건조업계에 가격·정보 제공 차별해선 안돼경쟁사로부터 취득한 영업비밀 계열사 제공도 금지3년간 시정조치 후 연장 검토… 반기마다 보고해야
  • ▲ 브리핑 하는 한기정 공정위원장 ⓒ공정위
    ▲ 브리핑 하는 한기정 공정위원장 ⓒ공정위
    많은 논란을 낳았던 한화와 대우조선해양의 기업결합이 '조건부'로 승인 났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EU)을 비롯한 해외 경쟁당국 7곳과 안방 격인 우리나라 등 모두 8개 경쟁당국에서 한화와 대우조선의 기업결합을 승인했다.

    다만 한화는 앞으로 3년간 함정 건조시장 입찰에서 경쟁업체에 탑재장비 가격이나 정보를 차별적으로 제공해선 안 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27일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한화시스템 등이 대우조선의 주식 49.3%를 취득하는 기업결합에 대해 시정조치를 부과하는 조건으로 승인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한화는 지난해 12월16일 대우조선과 신주인수계약을 맺고 같은 달 19일 공정위에 기업결합을 신고했다. 이후 해외 경쟁당국은 차례로 승인 결정을 내렸지만, 우리나라 공정위만 경쟁제한 우려로 기업결합 심사가 늦어지면서 '늑장 심사' 논란이 일기도 했다.
  • ▲ 한화-대우조선 기업결합 목적 ⓒ한화 홈페이지
    ▲ 한화-대우조선 기업결합 목적 ⓒ한화 홈페이지
    공정위는 심사기간에 한화에 4차례의 신고서 보완을 요청했으며, 수차례에 걸쳐 이해관계자와 관계기관 의견을 수렴했고, 전날 전원회의를 열어 조건부 승인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의 늑장 심사 배경에는 함정 부품시장에서 유력 사업자인 한화와 함정 시장에서 점유율이 큰 대우조선의 수직결합이 해당 시장에서 경쟁제한 효과를 낳을 거라는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공정는 한화가 생산하는 함정부품이 통신체계, 레이더장비, 전자광학장비 등 13개로 분류되며 이 중 10개 품목에서 한화의 시장점유율이 64.9~100%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대우조선은 수상함 시장에서 점유율 25.4%의 2위 사업자이며, 잠수함 시장에서는 점유율 97.8%로 압도적인 1위 사업자다.

    공정위는 한화와 대우조선의 기업결합이 이뤄질 경우 △한화가 대우조선에 차별적인 함정 부품 정보를 제공할 수 있고 △대우조선 경쟁사에는 불리한 가격을 제시할 수 있으며 △한화가 취득한 경쟁사의 영업비밀을 대우조선에 제공하는 등의 경쟁제한 우려가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방위사업청의 함정 입찰 평가기준을 보면 기술능력평가 80%, 가격평가 20%로 구분되는데, 미세한 점수 차이로 낙찰자가 선정되는 점을 고려하면 차별적인 정보 제공은 낙찰자 결정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

    예를 들어 한화가 레이더장비를 함정 건조업체들에 제공하는 과정에서 대우조선에게만 장비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준다면, 방사청은 대우조선이 함정 부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판단해 낙찰자로 선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한화가 함정 부품시장에서 유력한 사업자임을 고려하면 대우조선의 경쟁사인 현대중공업은 한화에 협조할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경쟁사들이 보유한 기술의 한계나 단점, 개발일정, 단가 정보 등이 대우조선에 흘러들어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 ⓒ연합뉴스
    ▲ ⓒ연합뉴스
    이에 따라 공정위는 △한화가 함정 부품 가격에 대해 대우조선과 그 경쟁사를 부당하게 차별해서는 안 되며 △함정 건조업체가 입찰 제안서 작성을 위해 필요한 함정 부품의 기술정보를 방사청을 통해 요청할 때 한화가 이를 부당하게 거절해서는 안 된다는 시정조치를 내렸다. 또 △입찰과정에서 한화가 현대중공업으로부터 취득한 영업비밀을 대우조선에 제공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시정조치 기간은 3년간 유지되며 시장상황에 따라 연장할 수 있다. 시정조치 이행상황은 매 반기마다 공정위에 보고해야 한다.

    공정위는 이런 시정조치 부과에 대해 "함정 입찰의 경우 국내 군수품을 우선으로 구매해야 하고, 방사청이 유일한 수요자이기 때문에 이를 통한 감시와 제재가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실시간 이를 감시하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한화가 높은 가격을 제시해 함정 건조업체가 입찰을 포기할 경우, 방사청의 감독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게 공정위 설명이다. 가격을 차별적으로 제공하는 행위에 대해 방사청이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중공업(경쟁사)이 방사청을 통해 한화에 기술정보를 요청했을 때 한화가 이를 거부하면 안 된다고 한 시정조치에 대해 한기정 공정위원장은 "함정 건조업체가 한화 측에 직접 정보 제공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까지 시정조치를 부과하면 한화의 사업수익이 곤란해질 우려가 있다는 지적에 따라 중립적인 감독기관인 방사청을 거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규모의 함정을 건조할 수 있는 업체가 사실상 현재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 두 사업자밖에 없는 상황에서 한화에 과도한 시정조치를 부과하면 역으로 경쟁을 저해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을 고려했다"며 "이번 기업결합은 방산 분야 기업결합에 대한 첫 시정조치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