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업체들, 동시다발적 임상 진행 '불가능'비슷한 사례 담긴 다수 논문 있어야 유리한 구조카피 품목이 통과 수월… 신개념 탑재 시 외려 불이익
  • ▲ 의료기술의 의료현장 진입 절차. ⓒ한국보건의료연구원
    ▲ 의료기술의 의료현장 진입 절차. ⓒ한국보건의료연구원
    의료 현장에 진일보된 의료기기를 활용하려면 신의료기술 통과가 관건인데 평가 과정에서 우연적 요인이 중요한 지표로 작동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다수의 논문이 존재한다면 유리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참신한 개념을 탑재했더라도 실패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12일 의료계와 산업계 관계자 등에 따르면 한국보건의료연구원(네카, NECA)이 담당하는 신의료기술평가에 비합리적 기준이 적용돼 바이오헬스 육성책 등 시대의 흐름을 역행하고 있다.

    쟁점은 네카는 '체계적 문헌고찰(기존 연구자료를 포괄적으로 수집해 결론을 내리는 연구)' 방법으로 신청기술을 평가하는데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RCT)으로 수행된 논문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국적기업과 같이 천문학적 재원을 투입할 수 있는 구조라면 이같은 준비과정을 거칠 수 있지만 국내 기업의 경우는 동시다발적 대규모 임상을 진행할 여력이 없다. 결국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하기 위해 기발표된 논문이 많이 있기를 바라야 한다.

    의료기기업체 관계자는 "네카는 새로운 의료기기가 실제 현장에서 쓰이기도 전에 종합적 데이터를 요구하고 있다"며 "신청기업이 스스로 관련 문제를 풀기가 어려우니 해외에서라도 비슷한 기술을 활용한 연구와 임상이 진행됐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례로 루트로닉사의 안과용 레이저수술기 'R·GEN'은 세계 최초 기술이 될 수 있었으나 신의료기술평가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호주에서 동등한 제품을 제조하는 업체가 판매를 시작했다. 

    큐렉소의 'CUVIS-SPINE' 역시 고난도 척추 수술시 활용도 높은 기술이지만 국내에서 통과를 못했고 미국FDA서 품목허가를 받아 미국에서 먼저 판매됐다. 국내 제품이 외국 제품을 대체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절차의 한계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기준으로 인해 카피 제품이 유리하게 평가받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개념을 탑재해도 데이터 부족으로 좌절하는 반면 이미 다른 기업의 아이디어를 따라해도 논문만 있다면 평가과정이 수월하다는 것은 큰 문제"라며 "이는 혁신 의지를 가로막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임상 현장에서도 불만이 가중되고 있다.

    서울 소재 중소병원 원장은 "식품의약품안전처 허가로도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된 것이라고 볼 수 있어서 신의료기술을 거치지 않고 먼저 충분한 데이터를 쌓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며 "외국이 아닌 국내 환자에게 의료서비스를 먼저 제공할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