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펀더멘탈이 답이다韓경제 '모나리자 모호성'에 빠져… 수출·소비 등락, 경제지표 혼재정부·기관마다 진단 제각각…막연한 낙관론 속 부동산·주식시장 과열기초체력 약화로 안정성 떨어져… 사소한 여건 변동에도 국내 경기 출렁노동·연금·교육 '3대 개혁' 기본… 규제개혁·조세지원 등 종합대책 내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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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경제가 기로에 서 있다. 우리 경제의 펀더멘탈(기초여건)이 흔들리고 있는 데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초를 탄탄하게 다지지 못하면 사소한 대외 여건 변화에도 경제가 요동칠 수 있어서다. 이를 위해 전문가들은 정부가 일회성 개혁을 넘어 중장기적인 안목으로 개혁의 청사진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를 통해 민간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혁신의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책 마련의 시작은 정확한 진단에서부터다. 문제는 각종 지표가 혼재하면서 정부와 한국은행, 한국개발연구원(KDI), 민간연구원 등 대내 기관들의 경기 진단 분석과 결과가 모두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올해 1분기에 이어 2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플러스 성장을 보이고, 물가상승률은 2%대를 기록하며 부진했던 반도체 수출이 꿈틀대는 등 일부 거시경제 지표를 보면 경기 반등의 조짐이 곳곳에서 보인다.

    정부는 지난 4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올해 성장률을 1.6%에서 1.4%로 하향 조정했다. 하지만 하반기 성장률은 상반기와 비교해 2배 넘게 반등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 14일 공개한 최근경제동향(그린북) 7월호를 통해서는 "제조업을 중심으로 경기둔화가 이어지고 있지만, 수출 부진 일부 완화, 완만한 내수·경제 심리 개선세, 견조한 고용 등으로 하방 위험이 완화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KDI도 7월 경제동향을 통해 "우리 경제는 제조업 부진이 일부 완화되며 경기 저점을 지나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전망만 보면 앞으로 우리 경제는 장밋빛 미래가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낙관적으로만 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의견이 적잖다. 무역수지 개선은 수출보다는 수입액이 더 줄어든 데 따른 착시효과라는 분석이다. 하향 안정화하는 물가상승률과 달리 소비는 부진한 상황이다.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며 가계의 초과저축액은 100조 원을 넘었지만, 이것이 소비나 가계부채 상환에 쓰이지 않고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으로 옮겨갈 것으로 전망되는 등 '거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가시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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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재정부 ⓒ연합뉴스
    민간연구원인 현대경제연구원도 지난 25일 발표한 '한국 경제의 다섯가지 모나리자 모호성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한국 경제는 정부와 민간의 시각에 차이가 크고, 경제전문가와 경제연구기관 간 경기 방향성에 대한 일치된 견해가 존재하지 않고 있다"며 "문제는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면서 최근 대두되는 경제 현안에 대한 시장 내 컨센서스(일치된 의견)가 존재하지 않아 불확실성을 더욱 확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모나리자 모호성'은 지난 4월17일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코로나19 펜데믹 이후의 경제가 모나리자 같다"고 언급하면서 알려졌다. 모나리자 그림에서 여인이 미소를 짓는 것인지, 아니면 무표정하게 있는 것인지를 알 수 없는 것처럼 경제도 이와 같다고 표현한 것이다.

    보고서는 우리 경제의 모호성에 대해 △동행지수와 선행지수의 논리적 비일관성(경기 방향성 혼란) △대(對)중국·반도체 수출 침체 속 이외 수출 경기의 선전(부문별 수출 격차) △명목 지표 호조 속 실물지표의 정체(인플레이션 착시) △산업별 업황 차이로 개인별 체감 경기수준 격차 발생(경기 양극화) △경제심리 회복 수준에 못 미치는 내수 경기(심리지표와 실물지표의 괴리) 등을 언급했다.

    가령, 경기 방향성의 경우 보고서는 경기종합지수의 방향성이 일관되지 못하면서 현재의 경기 판단과 미래의 경기 전망에 대한 논리적 분석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올해 1월(98.9p)을 저점으로 개선되는 것처럼 보이나, 그 상승 시간이 짧아 현재의 한국 경제가 일시적 반등 국면에 있는지 회복 국면으로 전환된 것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반면 경기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2021년 6월 102.2p를 고점으로 2년여간 하락세를 지속하면서 경기 전환 신호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보고서는 짚었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도 상황은 비슷하다. 우리 수출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대중국 수출과 반도체 수출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올 상반기 친환경자동차 수출은 1년 전보다 40% 이상 늘어나면서 수출액만 40조 원을 달성했다. 산업별 격차가 크게 벌어지면서 발표 자료에 따라 현재의 상황이 이해하는 데 혼선이 빚어지기도 한다.

    올 1분기 성장을 든든하게 받치던 민간소비(0.6%)도 2분기 들어 -0.1%(이전 분기 대비)로 꺾였다. 지난해 7월 6.3%로 정점을 찍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올 6월에는 2.7%까지 떨어졌지만, 소비는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6월 소매판매액(경상금액)은 1년 전보다 1.8% 늘고, 물가상승분을 제거한 실질소비를 뜻하는 불변기준으로는 1.4% 증가했다. 바로 전달인 5월은 소매판매액이 0.5% 증가에 그치고 불변기준은 마이너스(-) 0.6%를 기록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는 체감상 명목 지출액은 증가했지만, 지출을 통해 구입하는 소비량(실질 지출액)은 감소하면서 삶의 질이 악화된 것으로 해석된다"고 밝혔다.

    이런 불확실성은 내수경기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소비자심리지수(CCSI)는 지난해 7월 86.3p를 저점으로 상승해 올해 7월 103.2p로 기준치인 100p를 웃돌았다. 그러나 민간소비는 2분기 들어 오히려 역성장을 하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이번 코로나 대확산 충격 이후 잠재성장률 하락 등 한국 경제의 기초체력 약화로 경제의 역동성은 물론 안정성도 낮아졌다. 대내외 여건의 사소한 변동에도 국내 경기가 민감하게 반응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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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상황에서 한은은 지난 24일 2020~2022년 가계의 초과저축액 규모가 101조~129조 원이라고 발표했다. 쌓아둔 자산이 소비로 이어지거나, 가계 대출을 상환하는 데 쓰이지 않고 금융자산으로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경제에 있어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견해다.

    가계의 초과저축액이 금리 인상과 물가 상승기에는 훌륭한 방패 역할을 하지만, 이것이 자산시장으로 옮겨가면 성장동력 없이 자산시장만 팽창하는, 알맹이 없는 성장을 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에코프로 등 이차전지 주가가 광풍 현상을 보이며 폭등하고 고가 아파트 거래량이 늘어나는 등 주식과 부동산 시장이 양극화, 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제전문가들은 아직 우리 경제가 불확실성을 넘어 거품경제로 진입했는지는 명확치 않다고 경계한다. 다만 정부와 한은이 앞으로 어떤 정책을 펼치느냐에 따라 우리 경제가 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기초체력을 쌓아 거품의 우려를 걷어내는 방향으로 나아갈 지, 버블경제로 빠져들지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이다.

    성한경 서울시립대 경제학부 교수는 "여러 지표들이 개선되고 있지만, 당장 하반기에 나아진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며 "다만 반도체 수출 등 무역수지만 안정이 된다면 괜찮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100조 원이 초과저축액과 관련해 성 교수는 "(초과저축액이) 가계부채와 상쇄된다고 봤을 때 이것이 우리 경제에 거품을 일으킬 정도로 크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정부가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을 편성하거나 금리를 인하한다면 거품경제로 갈 수 있다. 물가가 안정될 때까지는 조심해야 한다"고 물가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초과저축이 많다는 것은 실물경기가 부진하다는 의미다. 소비가 안돼서 그런 것"이라며 "우리 경제가 어려운 것은 기본적으로 구매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소비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전문가는 우리 경제의 기초체력 향상과 체질 개선을 위해 무엇보다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연금·교육 등 3대 개혁을 뛰어넘는 청사진이 나와야 한다고 제언했다. 규제개혁은 물론 조세지원 등 종합적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개혁의 경우 정부는 근로시간 유연화와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확산, 중대재해처벌법 보완,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노사 법치주의 확립 등의 노동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노동계의 거센 반대에 부딪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난 18일 통계청이 발표한 '5월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는 우리 노동시장의 일그러진 단면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33만 명 이상 늘었다. 하지만 청년층 취업자는 400만5000명으로 1년 전보다 9만9000명 감소하고 고용률은 47.6%로 0.2%p 떨어졌다. 청년고용은 고용지표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가는 중이다. 전체 고용률과 청년 고용률은 무려 15.9%p나 차이 난다.

    홍기용 인천대 경제학부 교수는 "(겉으로 보이는) 숫자상으로는 실적이 괜찮다고 하지만, 우리 경제가 성장동력 상실, 청년실업 문제, 역성장, 한·미 금리차, 소득기반 상실에 따른 내수 부진, 환율에 따른 경쟁력 저하 등 여러 문제가 있다"며 "이를 위해 노동개혁과 노동유연화가 필요하고 정부가 규제개혁을 통해 민간이 최첨단 기술을 주도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단순히 3대 개혁만 가지고는 어려움을 이겨낼 수 없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