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시공사 갈아타기', 손해배상 '폭탄' 부메랑 방배5구역·반포3주구 등 배상 판결…'유화책' 확산시공사 계약해지 부담에 반강제적 화해 분위기 조성
  • ▲ 서울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 사진=박정환 기자
    ▲ 서울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 사진=박정환 기자
    도시정비사업 조합들이 '소송 리스크'로 몸살을 앓고 있다. 무리하게 시공사를 교체했다가 소송에서 져 손해배상 폭탄을 맞는 조합이 하나둘 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시공사 손을 들어주는 법원 판결이 잇따라 나오면서 공사비 분쟁중인 조합들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현재로서는 불필요한 강대 강 대치보다는 적정선에서 타협해 실리를 취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31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한때 유행처럼 번졌던 '시공사 갈아타기'가 일선 재건축·재개발 조합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비사업 활황기 때 조합 입맛에 맞게 시공사를 교체했던 것이 '소송 부메랑'이 돼 돌아온 까닭이다.

    일례로 서울 서초구 방배5구역 재건축조합은 계약 취소된 GS건설·포스코이앤씨·롯데건설 시공사업단에 거액의 손해배상금을 물어줄 위기에 놓였다.

    방배5구역 조합은 2014년 이들 건설사를 시공사로 선정했지만, 사업 세부계획과 대출 방안을 놓고 갈등을 빚어왔다. 결국 2017년 총회를 열어 시공 계약을 해지하고 현대건설을 새 시공사로 선정했다.

    이에 시공사업단은 조합에 소송을 걸어 재건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 2077억원을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1심에선 조합이 시공사에 410억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2심에선 조합의 배상금이 50억원으로 줄었고, 이에 반발한 시공사업단이 대법원에 상고를 제기했다.

    대법원은 시공사업단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26일 대법원은 계약해제 귀책 사유가 조합에 있다고 보고 2심 손해배상액인 50억원의 근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이로써 조합이 시공사업단에 물어줘야 할 손해배상액은 50억원을 훨씬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1심 배상액인 410억원 수준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또한 서초구 반포 주공1단지 3주구 재건축조합은 HDC현대산업개발에 164억원에 달하는 손해배상액을 물어주게 됐다. 가구당 부담액은 1000만원 이상에 달한다.

    2018년 HDC현대산업개발은 해당 재건축 사업에 2회 단독입찰했고 이후 수의계약을 통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특화설계와 공사비 등을 놓고 조합과 갈등을 빚다 본계약 체결에 실패했다. 이후 조합은 HDC현대산업개발의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박탈하고 삼성물산을 새 시공사로 선정했다.
  • ▲ 서울의 한 재건축조합 시공사 선정총회 입구 전경. 사진=박정환 기자
    ▲ 서울의 한 재건축조합 시공사 선정총회 입구 전경. 사진=박정환 기자
    서울 강남권 최대 규모 리모델링 추진 단지로 주목받았던 강남구 대치동 '대치2단지'도 전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과 DL이앤씨에 약 112억원의 배상금을 물어주게 됐다. 

    최근 서울중앙지법 37민사부는 대치2단지 리모델링 조합을 대상으로 HDC현대산업개발에 45억7473만원, DL이앤씨에 66억7106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조합도 시공사를 상대로 맞소송을 냈지만 기각됐다.

    2021년 조합은 시공사가 요청사항에 대해 비협조적인 자세로 나왔고 사업비 대여 의무 등을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시공계약을 해지한 바 있다.

    이같은 소송 결과는 공사비 갈등이 지속중인 현 정비사업 시장에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 '상계주공5단지'는 공사비 인상과 고금리로 조합원 추가분담금이 5억원대에 이르자 정비계획 변경과 함께 시공사 교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단지는 37㎡ 단일평형 840가구 규모로 올해 초 GS건설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해 사업을 진행중이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3·북아현2구역 재건축은 각각 현대건설, 삼성물산·DL이앤씨와 공사비 협상을 진행중이다.

    당초 공사비 관련 확연한 입장차로 시공사 계약해지 직전까지 갔지만 극적인 합의로 사업이 재개됐다. 하지만 현재와 같은 시장 불안정성이 장기화할 경우 갈등이 언제든 재점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시장에서는 조합이 계약해지 등 강경 대응보다는 '유화책'에 나설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사업장 특성이나 계약 세부사항 등 법리적으로 따져볼 부분이 많지만 일단 계약해지 1차 책임은 조합에 있다는 것이 현재 법원의 판단"이라며 "시공사에 유리한 판례가 쌓일 경우 조합 입장에서도 섣불리 계약을 해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형건설 A사 관계자는 "과거 시공사가 브랜드 신뢰도 등을 감안해 조합에 대해 수세적인 위치에 있었다면 지금은 선제적으로 소송에 나서는 등 대응전략이 바뀌고 있다"며 "분쟁으로 인한 사업 지연이 장기화할수록 조합원 개개인의 부담이 가중돼 반강제적으로 화해 무드가 조성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