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선거캠프, 재집권 시 IRA 폐기 시사… "화석연료 다시 확대"IRA 발효 후 對美 투자 늘려… 아태지역 전체 투자 중 4분의 1 수준IRA 폐기 시 투자 노력 백지화 우려… 기존 보조금 혜택 줄여도 타격
  • ▲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연합뉴스
    ▲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내년 대선에서 당선되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폐기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IRA 혜택을 노려 대(對)미 투자를 늘려온 한국 기업들이 술렁이고 있다. 기업들은 그동안 현 바이든 정부의 IRA 추진 기조에 맞춰 투자를 지속 확대해 왔지만, 내년 대선을 기점으로 이런 투자 노력이 백지화할 수도 있다는 새로운 불확실성을 떠안게 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3일(현지시간) 트럼프 선거캠프의 고위 관계자들 발언을 인용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에 성공할 시 IRA를 폐기할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캠프 관계자는 "(IRA에 따라 부여되는) 일부 세금공제와 관련한 비용이 지나치게 저평가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그런 지출의 많은 부분을 삭감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IRA는 '친환경 경제 성장'을 어젠다로 꼽는 바이든 정부의 대표적인 경제 정책이다. 바이든 정부는 IRA를 통해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배터리의 핵심 자재를 미국이나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를 맺은 나라에서 공급받도록 했다. 전기차 보급 확대를 통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에너지에 관한 자국 내 공급망을 강화하는 등 청정에너지 전환을 촉진하겠다는 취지였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와 정반대의 어젠다를 갖고 있다. 그는 그동안 IRA를 "미 역사상 최대 폭의 증세"라고 명명하며 바이든 정부의 경제 정책에 반감을 드러내왔다. FT가 인용한 트럼프 선거캠프의 고위 관계자 발언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당선될 시 화석연료 생산을 극대화하는 방향의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알려졌다. IRA 등 청정에너지 정책 전반을 뜯어고쳐 원유·가스 등의 생산을 다시 늘리고 화석연료 규제를 폐지한다. 청정에너지 관련 기관의 재정비 혹은 폐지도 검토하게 된다.

    지난 8월 IRA가 발효된 이후 한국 기업들은 미국에 대한 투자를 지속 확대해왔다. FT에 의하면 IRA 발효 이후 1년 동안 1억 달러(1300억 원)가 넘는 외국 기업의 대미 투자계획 가운데 한국 기업의 비중이 20건으로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유럽연합(EU) 19건, 일본 9건, 캐나다 5건, 대만 3건 순이었다. 한국은 유럽 전역의 투자 규모를 누르고 대미 투자 1위를 차지했다.

    미 백악관이 이달 16일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한국 기업이 미국에 투자한 규모는 최소 555억 달러(72조 원)에 달한다. 이는 같은 기간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에 투자한 총 2000억 달러(259조 원) 중 4분의1을 차지하는 규모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 이후 실제로 IRA 폐기에 나선다면 그동안 대미 투자에 적극 나서왔던 한국 기업들은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다만 IRA를 폐기하기 위해선 의회의 동의가 필요한 만큼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앞서 IRA는 미 의회의 초당적인 지지를 받으며 통과됐던 바 있다. 하지만 트럼프 정권 2기가 IRA의 전면 무효화까지는 실행하지 못하더라도 기존 혜택을 대폭 줄이는 방식 등으로 압박에 나설 수 있어 한국 기업들로서는 여전히 불안이 큰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