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H지수, 2021년 대비 '반토막'… 원금 손실 불가피금융당국, KB국민은행 등 금융업계 '전수조사' 착수'불완전 판매' 쟁점될 듯… 국민은행 판매액 가장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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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콩H지수(항셍중국기업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파생상품이 내년 상반기 3조 원대의 손실이 예상되면서 금융당국이 실태조사에 나섰다.

    금융당국은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을 판매한 은행과 증권사들이 고위험 상품이라는 점을 충분히 설명하고 판매했는지 여부 등을 집중 점검할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의 조사 결과, 금융사들의 불완전 판매 사실이 드러날 경우 소비자들의 집단소송은 물론 '제2의 라임 사태'가 불거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26일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 20일부터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삼는 ELS를 판매한 은행과 증권사에 대한 전수조사에 착수했다. 판매액이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진 KB국민은행의 경우 금감원이 이미 조사에 착수한 사실이 알려졌다.

    ELS 상품은 6개월 단위로 기초자산(주가) 가격을 평가해 조기상환 기준을 충족하면 원금과 이자를 지급한다. 만약 이를 충족하지 못하면 자동으로 연장되며 만기는 통상 3년이다. 

    국민은행이 가장 많이 판매한 '녹인(knock-in)형' 상품의 경우 가입 당시보다 절반 아래로만 떨어지지 않으면 원금+이자(수익률)가 보장되기 때문에 중위험 상품임에도 고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통상 녹인 기준선은 최초 기준가격의 50%쯤, 최종 상환 기준선은 70%쯤이다.

    가입기간 중 기초자산 가격이 '녹인 기준선'인 50% 밑으로 하락했다면, 만기 시점에서 기초자산 가격이 '최종 상환 기준선' 70%를 넘어야만 약정한 원금과 이자를 받을 수 있다. 가입 기간 중 기초자산이 50% 아래로 떨어지지 않았다면, 만기 시점에서 기초자산 가격이 '녹인 기준선'인 50%를 넘으면 원금과 이자 수령이 가능하다.

    문제는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하는 상품들의 홍콩H지수가 2021년 상반기 고점 대비 반토막난 것이다. 2021년 당시 홍콩H지수는 1만2000을 넘었다.

    가입기간 중 지수가 가입 당시보다 녹인 기준선 아래로 하락했던 것을 감안하면, 만기 시점에 최종 상환 기준선인 70% 수준까지는 회복돼야만 원금 손실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24일 기준 홍콩H지수는 6171.01에 머무르면서 원금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5대(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이 판매한 홍콩H지수 연계 ELS(ELF‧주가연계펀드 포함) 관련 상품은 8월 말 기준 14조8775억 원 규모다. 

    홍콩 H지수 관련 ELS 은행별 잔액은 KB국민은행이 7조6695억 원으로 가장 많고, 신한은행(2조3701억 원), NH농협은행(2조1310억 원), 하나은행(2조856억 원), 우리은행(408억 원)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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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인 배리어(원금손실 발생구간)에 들어간 금액은 4조9288억 원으로, 대부분이 국민은행에서 판매한 상품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녹인 구간에 들어선 ELS 물량의 85.6%인 6조 원이 대부분 내년 상반기에 만기를 맞게 되는데, 반토막난 H지수가 내년 상반기까지 이어진다면 최소 2조5000억 원에서 최대 3조 원까지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증권업계가 판매한 해당 상품의 잔액은 3조5000억 원으로 은행보다는 적지만, 내년 상반기에 만기가 도래하는 것을 감안하면 원금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H지수가 폭락한 가장 큰 이유는 중국 경제 침체가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점이다. 코로나19 확산 우려에 따른 봉쇄 정책과 대형 부동산 업체 파산 위기 등으로 인해 중국 경제 침체가 상당기간 길어지면서 H지수 연계 파생상품도 위기를 맞게 됐다.

    아직 손실이 확정되지만 않았지만, 내년 상반기 만기가 도래해 손실이 확정되면 불완전 판매 여부를 둘러싼 고객과 은행과의 공방전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금융당국 역시 전수 조사 과정에서 불완전 판매 가능성 부분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것으로 전해졌다. 리스크가 큰 ELS 상품의 가입자 대부분이 고령자라는 사실도 불완전 판매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자칫하다가는 집단소송 우려까지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반면 은행권은 라임 사태 등 여러 펀드 사태를 거치면서 불완전 판매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국민은행은 현재 ELS를 판매할 때 그 과정을 녹취하고 있다. 타 은행들도 가입상품에 대한 원금 손실 가능성을 제대로 이해했다는 부분도 고객의 확인을 받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익명 직장인 커뮤니티인 '블라인드'에 70~80대 고령인 부모님이 은행에 정기예금 가입을 문의했다가,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해당 상품을 추천받고 가입했다는 글이 올라오고 있어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증권사는 고위험 상품인 ELS 판매 경로의 80%가 '비대면 채널'인 점이, 불완전 판매 논란에 불을 붙일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