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공사비인상·악성미분양 '트리플악재'…'돈줄 씨말랐다'전년比 부채율 개선된 곳 대우·SK에코·HDC현산·서희 '4개사' 나머지 10곳 부채율 증가·유지중…200% 넘어선 곳만 '5개사'신세계건설, 부채율 470%…479%인 태영건설과 고작 9% 차
  • ▲ 서울의 한 재개발공사 현장. 사진=박정환 기자
    ▲ 서울의 한 재개발공사 현장. 사진=박정환 기자
    "현장에서 체감하는건 13년전 금융위기 때보다 더하다."(중견건설사 관계자)

    건설업계가 '생사기로'에 섰다. 태영건설의 워크아웃신청 여파로 건설경기가 더욱 위축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고금리와 공사비인상, 악성미분양 등 '트리플악재' 탓에 돈줄마저 말라가고 있다.

    향후 전망도 안갯속이다. 경기침체와 미분양적체로 시작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가 건설사 자금난과 재무건전성 악화, 그로 인한 신규사업 축소 및 건설경기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는 까닭이다.

    시장에선 "건설판 둠 루프(Doom Loop)가 올 것"이란 우려까지 나온다.

    '둠 루프'는 '파멸의 고리'라는 의미로 부정적 행동이나 요인이 다른분야로 번져 전반적 시장상황이 악화되는 것을 말한다. 

    실제 업계 재무제표를 들여다보면 1군, 중견 건설사 할 것 없이 부채·유동비율이 악화돼 시장침체 조짐이 드러났다. 

    상위 20개건설사중 타부문 실적이 함께 잡히는 삼성물산 건설부문과 한화 건설부문, 그리고 분기보고서를 공시하지 않는 호반건설·대방건설·중흥토건·제일건설을 제외한 14개건설사 재무제표를 분석해 보니 전년대비 재무건전성이 나아진 곳은 단 4개사뿐이었다. 

    자세히 살펴보면 14개사 가운데 작년 3분기 기준 부채비율이 전년대비 개선된 곳은 △대우건설(200%→177%) △SK에코플랜트(263%→210%) △HDC현대산업개발(145%→130%) △서희건설(108%→80.3%)이었다.

    나머지 10곳은 모두 부채비율이 증가하거나 유지하는데 그쳤다.

    이중 △GS건설(214%→250%) △롯데건설(171%→233%) △태영건설(441%→479%) △계룡건설(225%→225%) △코오롱글로벌(278%→287%) 등은 부채비율이 부실수준인 200%를 넘어섰다. 특히 태영건설은 500%에 육박하는 부채비율을 보여 사실상 자본잠식 상태임을 짐작해볼 수 있다.

    단기간 현금동원력을 의미하는 유동비율 지표도 대부분 낮아졌다.

    14개 건설사중 △현대건설(187%→186%) △현대엔지니어링(185%→164%) △GS건설(120%→110%) △DL이앤씨(174%→156%) △포스코이앤씨(141%→127%) △롯데건설(130%→121%) △SK에코플랜트(101%→93.4%) △HDC현대산업개발(170%→161%) △DL건설(253%→216%) △계룡건설(132%→129%)이 전년동기 대비 유동비율이 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유동비율이 떨어졌더라도 '우량' 수준인 150%이상을 유지한 곳은 곳간이 넉넉하다고 볼 수 있고 이에 충족하는 기업은 △현대건설 △대우건설 △현대엔지니어링 △DL이앤씨 △HDC현대산업개발 △DL건설 △서희건설 7곳에 불과했다.

    이와 별도로 태영건설 다음 '타깃'으로 거론되는 시평순위 32위인 신세계건설 재무제표를 보면 작년 3분기 기준 부채비율은 470%로 전년동기 256%보다 무려 214%p나 뛴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기간 유동비율은 65.0%에서 81.2%로 소폭 상승했지만 안정권 기준인 100%엔 한참 못미쳤다.

    보통 유동비율이 100%이하면 유동성 리스크가 큰 것으로 판단한다. 쉽게 풀어 갚아야 할 '빚(부채)'은 산더미인데 이를 해결할 '총알(현금)'이 태부족 상태란 얘기다. 결국 업계에 떠돌고 있는 신세계건설 '위기설'이 마냥 뜬소문만은 아니라는 게 입증된 셈이다. 
  • ▲ 서울의 한 재개발공사 현장. 사진=박정환 기자
    이같은 재무구조 악화는 준공후미분양, 속칭 '악성미분양'에서 촉발됐다.

    국토교통부 주택통계를 보면 작년 11월 기준 악성미분양은 1만465가구로 전월대비 2.4% 늘었다. 1년전 7110가구와 비교하면 47%나 급증했다. 2021년 12월이후 11개월연속 상승세를 기록중이다.

    특히 전체 악성미분양 물량중 비수도권 지방물량이 8376가구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지방사업장이 많은 건설사일수록 미분양 리스크에 직접적으로 노출되는 구조다.

    미분양은 건설사 PF부실과 유동성 리스크로 직결된다. 이는 PF사업 구조적 특성을 따져보면 알 수 있다.

    부동산 PF대출은 시행사가 아파트 등을 지을때 신용도나 물적담보가 아닌 미래 사업성을 담보로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리는 것이다.

    크게 '브릿지론'과 '본PF'로 나뉜다. 우선 사업초기 토지매입 등에 필요한 자금을 만기 1년내 브릿지론으로 조달한다. 이후 인허가가 완료되면 본PF를 통해 브릿지론을 상환한 뒤 시공 비용을 확보하게 된다.

    시행사는 대부분 규모가 작고 신용도가 떨어져 단독으로는 충분한 자금조달이 어렵다. 이에 규모가 훨씬 크고 신용도가 높은 건설사가 PF 연대보증을 선다.

    '완판'이 일상이었던 시장활황기엔 아파트만 올리면 돈이 됐기 때문에 건설사들은 연대보증이나 책임준공 등 조건을 내걸면서까지 너도나도 PF사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2022년 말부터 시작된 부동산경기 위축으로 악성미분양 사업지가 속출했고 시행사들은 대출상환이 어려워졌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공사가 중단되거나 아예 착공조차 하지 못한 사업지가 늘면서 시공사들이 그 손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됐는데 이를 'PF 우발채무'라고 한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작년 8월말 기준 유효등급 보유 21개 건설사의 부동산 PF 우발채무는 22조8000억원으로 전년 6월말보다 29% 늘었다.

    PF부실이 가시화하자 건설사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PF부실로 인한 유동성 리스크 대응을 위해 단기차입금을 늘리고 회사채를 발행해 현금곳간을 채웠다.

    급하게 늘린 단기차입금과 회사채는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다. 이들 부채는 상환기간이 짧고 금리마저 높은 탓에 건설사들의 재무구조에 적잖은 부담을 주고 있다.

    당장 오는 2월말 현대건설·롯데건설·SK에코플랜트·한화 등 주요 건설사 회사채 1조4200억원 만기가 도래한다.

    건설업계 관계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진짜 위기는 이제부터"라는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대형건설 A사 관계자는 "부동산 호황기 PF를 일으켜 개발사업에 나선 중소·중견사들은 올해 상반기부터 본격적인 보릿고개에 직면할 수 있다"며 "줄도산이 현실화해 건설경기 전반이 침체되면 분양시장도 더욱 얼어붙게 되고 이 경우 대형사들도 안심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 기준금리 인상전까지 과도하게 사업을 확대하거나 리스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기업들은 경영상 난관에 부딪힐 것"이라며 "특히 중소사들은 대형사와 달리 사업성이 떨어지는 지방사업장이 많아 유동성 위기에 더 취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