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특별법 제정 가능성 ↑… 직접 보조금 지급 관심첨단기업 80% "직접환급제 투자 이행 확대 도움"적기 투자 놓친 美 반도체 인텔 설립 이래 최대 위기 직면세제 지원해 온 정부… 여야 특별법 합의에 정잭기조 촉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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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투자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정치권이 반도체 직접 보조금 지원에 뜻을 같이하면서 우리 정부의 정책 기조가 달라질지 주목된다. 주요 경쟁국들이 공격적인 보조금 지급에 열을 올리는 것과 달리 우리 정부는 아직 보조금 지원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었다.
4일 국회에 따르면, 반도체특별법은 22대 국회 개원 직후부터 여야 모두에서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지난 2일 시작된 정기국회에서 제정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김태년 의원안이 단일안을, 국민의힘은 고동진 의원 등이 법안을 제출했다. 국민의힘은 정부안과 발의된 의원안을 비교해 정리한 뒤, 당정 단일안을 제출한다는 계획이다.
법안의 관건은 반도체업계가 가장 관심을 갖는 직접 보조금 지급이다. 여당안은 국가가 반도체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는 조항을 포함했지만, 야당안에는 세제 혜택만 담겨 있다.
현행 조특법상 국가전략기술 세액 공제 대상으로 지정되면 사업화 시설 투자액에 대해 대기업·중견기업은 15%, 중소기업은 25% 세액 공제를 받을 수 있다. 세액 공제 방식이 법인세 공제에만 국한돼 있어 대규모 초기 투자나 업황의 급변으로 충분한 영업이익을 담보하기 어려운 첨단산업 분야 기업들에겐 실효성이 미흡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됐다.
실제 반도체업계는 시설 투자 등을 늘리는 기업에 법인세 등을 깎아주는 세액 공제보다는 현금을 주는 직접 보조금 방식의 지원을 원하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조세특례제한법(조특법)상 국가전략기술 세액 공제를 받고 있는 첨단산업 분야 기업 10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직접환급제 도입이 기업의 자금 사정이나 투자 이행 또는 확대 등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답한 기업이 80%에 달했다.
응답 기업 10곳 가운데 4곳(38%)은 ‘현행 법인세 공제 방식’에 대해 ‘세액 공제분 실현이 즉각 이뤄지지 못해 적기 투자에 차질을 빚는 등 제도의 실효성이 미흡하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특히 ‘납부 법인세가 세액공제액보다 적어 이월했던 적이 있는지’에 대해 응답기업 50%가 ‘그렇다’고 답했다. -
일본은 2030년까지 민관 부문을 합해 642억달러(약 88조4000억원) 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반도체법을 통해 총 430억유로(약 13조원)를 투자하며 제조시설을 확대하고 있다. 인도도 내수 수요 충족을 위해 100억달러를 지원한다.
주요 경쟁국의 공격적인 투자에 맞서 우리나라도 지원 전략을 재수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이유다. 자칫 투자 적기를 놓쳐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최근 미국 반도체 업체 인텔의 경우 투자 기회를 놓친 후 56년 기업 역사상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인공지능(AI) 열풍에서 밀려나면서 입지가 축소됐고 대만 반도체 업체 TSMC에 맞서서 힘을 실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부문에서 손실이 늘었다. 인텔은 사업 분할은 물론 매각을 포함한 다양한 구조조정 옵션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 특성상 악재가 터졌을 때 주요국에 비해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측면도 있다. 실제 미국발 경기 침체 우려에 엔비디아를 비롯한 미국 반도체주가 폭락하면서 이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동반 급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건전 재정 논리로 아직까지 보조금 지원에 대해선 부정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관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최근 고동진 의원안에 담겨 있는 직접 보조금 지급과 예비타당성조사 특례, 반도체 특별회계 신설, 고용 보조금 지원 방안 등에 대해 포괄적인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진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5월 기자들과 만나 "제조 시설이 없고 새로 만들어야 하는 나라들이 인센티브를 주기 위해 투자 보조금이 있는 것"이라며 "제조 시설에 있어 세제지원은 보조금과 같은 성격이고 어느 나라보다 인센티브율이 높다"고 언급한 바 있다.
정부의 입장과 달리 반도체 산업 직접 지원에 대한 여야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보조금 직접지원도 가능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기재부는 "정부는 국내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국회의 반도체특별법 제정 취지에도 적극 공감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의 현 지원 제도, 재정 원칙, 업계 수요 및 산업 간 형평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정부가 국가전략기술 세제 지원 확대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현행 법인세 공제 방식은 성장 가속화와 글로벌 시장 선점을 위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할수록 혜택이 제한되는 아이러니가 존재한다는 게 업계의 평"이라며 "다이렉트 페이(직접 보조금) 도입을 통해 기업들이 즉각 세액 공제 효과를 누리고 이를 적시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지도록 국회와 정부가 적극 나서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유나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원은 "AI 중심으로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면서 반도체의 첨단 기술 경쟁력 확보와 생태계 구축을 위한 국가 단위의 기술 패권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면서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위주의 최고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으나, 공급망 재편 움직임과 기술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른 기회와 위기가 공존하고 있어 초격차 확보가 더욱 중요한 시점"이라고 제언했다.